도심 속 단조로운 사각 건물들 사이에서 완전히 다른 에너지를 뿜어내는 공간은 어떻게 탄생할까? 건축가 임형남, 노은주가 설계한 주택을 통해 공간 설계 원리와 디자인 철학이 거주자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본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주택 설계의 기본 원리
평범한 공간 속에 숨겨진 특별한 동심원
건축가 임형남과 노은주가 설계한 이 건물은 언뜻 보면 일반적인 상가 주택의 형태를 띠고 있다. 1, 2층은 상업 공간으로서의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효율적인 동선을 갖춘 평범한 구조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건물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공간의 넓이나 용도에만 있지 않다. 설계자는 공간이 지나치게 단조로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원(Circle)'이라는 기하학적 형태를 과감하게 집어넣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동심원 구조는 건물의 4층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단순한 직선의 지루함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공간에 곡선을 배치하는 행위는 단순히 미적인 선택을 넘어, 고착화된 주거 형태에 변화를 주려는 시도다.
특히 건물 중심부에 위치한 이른바 '햇빛 우물'은 설계의 핵심 요소다. 곡선 벽 안쪽에는 침실과 드레스룸이 배치되어 있는데, 벽의 굽은 선을 따라 방을 배치함으로써 거주자에게 단조롭지 않은 입체적인 공간감을 제공한다.
방이 사각형의 박스 안에 갇혀 있는 것과 곡선 벽을 따라 유연하게 펼쳐지는 것은 심리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건축가들이 "공간이 너무 단조로워 원을 집어넣었다"고 설명한 지점은, 현대 도시 주택이 갖는 획일적인 구조에 대한 강력한 반기이자 대안적 설계의 증거다.
결과적으로 이 주택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각형의 틀 안에 비정형의 유연함을 숨기고 있다. 거실로 기능하는 햇빛 우물을 중심으로 반원 형태의 침실 2개가 배치된 모습은, 공간의 효율성과 건축적 재미를 동시에 잡은 영리한 설계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라는 '네모난 감옥'에서 벗어나 건축가가 고민한 곡선의 미학은, 공간이 인간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정형 공간이 가져오는 일상의 변화
복도가 휘어져 있고 모든 방이 비정형인 이 공간은 거주자에게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네모난 방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공간을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시선이 닿는 곳마다 변화가 생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만나는 곡면의 문과 휘어진 복도는 단순히 디자인적인 요소가 아니라,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자연스럽게 구분 짓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모든 시도가 완벽한 실용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15번 사진에 등장하는 그물 침대처럼 주인의 취향이 강력하게 반영된 요소는 건축가조차도 "실제로는 잘 안 쓸 것 같다"는 솔직한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조차 건축의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건축가가 제안한 곡선이라는 언어가 거주자의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는 점이다. "직선 공간보다는 곡선 공간이 중간중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비단 설계자뿐만 아니라, 삭막한 사무실과 주거 환경에 지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갈증이다.
건축가들은 이 공간을 단순히 현재의 용도로만 제한하지 않는다. 추후 빵집 사업이 확장될 경우 3, 4층을 상업 공간으로 전환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런 '유연성'이야말로 좋은 건축의 조건이다. 재미있는 공간은 사람들이 모이게 만들고, 그 모임은 다시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선순환을 만든다.
비정형 공간이 주는 낯선 재미가 향후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공간 자체가 가진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 건축 설계의 숨은 의도
도심지의 주택은 사방이 막혀 있어 구조적 변화를 주기 어렵다. 건축가는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는 대신 내부에서 어떻게 변화를 줄지에 집중했다.
햇빛 우물과 곡선 벽은 외부와 단절된 도심 주택 내부로 빛과 개방감을 끌어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다.

공간의 위계와 사용자 경험의 재구성
위아래의 시선이 교차하는 수직적 구조
2층 빵집 공간과 위층 주거 공간을 연결하는 방식에서도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14번 사진을 보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데, 이는 아래층에서는 위가 보이지 않지만 위층에서는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형태다. 이러한 시선의 비대칭성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면서도 공간의 연결감을 극대화하는 탁월한 전략이다.
건축은 단순히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시선'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4층 거실 겸 놀이터로 올라가면 이 건물의 정점이 나타난다. 평상이 놓여 있어 필요에 따라 침실로도 활용 가능한 이 공간은, 천장에 뚫린 4개의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채광으로 완성된다.
21번 사진에서 보여주는 그물 침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이 집이 가진 수직적 재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도심 속 꽉 막힌 벽들 사이에 숨겨진 이런 천창과 놀이 공간은 거주자에게 휴식 이상의 정서적 풍요를 제공한다.
이러한 수직적 설계는 좁은 도심 부지에서 공간의 밀도를 높이는 동시에 답답함을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많은 주택 설계가 수평적인 평면에만 집중할 때, 건축가 임형남과 노은주는 수직적인 연결과 시선의 흐름을 이용해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집이라는 공간의 본질, 즉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건축의 생물학적 천이, 도시를 바꾸는 힘
겉모습은 평범한 사각형 건물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이 주택은 도시 안에서 생물학적 '천이(succession)'의 개념을 실천하고 있다. 숲이 우거지기 전 농사를 관둔 땅에 잡초가 자라고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이 집은 주변의 노후화된 건물들 사이에서 변화의 씨앗이 된다. 주변 집들이 이 건물을 보고 자극을 받아 스스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건축이 가진 사회적 책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실제로 건축가는 주변 건물들도 언젠가는 모두 바뀔 것이라며, 자신의 설계가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길 바란다. 이는 단순히 새 건물을 올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도시 재생이란 거창한 구호 아래 시행되는 관 주도의 개발보다, 이렇게 감각적인 개인 건축물 하나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더 지속 가능하고 유기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주거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이러한 건축적 철학을 담은 공간들이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공간에서 살고 싶어 하지만, 정작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한 용기는 부족하다. 단순히 실용성만 따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곡선을 도입하고 햇빛 우물을 만드는 행위는 도전이다.
하지만 이 주택이 증명하듯, 그 도전은 거주자의 삶을 바꿀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까지 물들인다. 이것이야말로 건축가가 가져야 할 진정한 비전이자, 도심 주택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다.
🔥 사각 박스형 주거 문화를 비판한다
대한민국의 도심을 채우고 있는 획일적인 사각형 아파트와 빌라들은 거주자의 개성을 말살하고 공간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왜 우리는 당연하게 네모난 방만을 고집해야 하는가? 더 나은 주거 환경을 꿈꾼다면 우리는 건축가의 철학이 담긴 비정형 공간에 주목해야 한다.
건축은 거주자의 삶을 규정하는 틀이다. 이 틀이 단조로우면 우리의 삶도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다.
경사지를 활용한 새로운 사무 공간의 탄생
지형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의 지혜
건축가들의 설계 범위는 주택에만 머물지 않는다. 경사가 심한 땅에 세워진 사무실 건물은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지하가 연결되도록 설계되었다.
보통의 건축주라면 경사지를 평평하게 깎아내기 바쁠 테지만, 이들은 지형의 높낮이를 오히려 설계의 중심 요소로 활용했다. 이는 비용 절감은 물론 자연과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가장 우아한 방식이다.
특히 놀라운 점은 주차장 배치다. 보통 지하에 주차장을 넣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1층에 주차장 8대를 배치하여 오히려 상업 공간을 확보하는 역발상을 보여준다.
이는 지상 공간의 가치를 높이고 주차 편의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경사지가 가진 불리함을 공간 구성의 독특함으로 치환하는 것, 이것이 바로 건축가의 실력이다.

지하 2층 공간은 당초 사진작가의 스튜디오로 기획되었으나, 현재는 주인의 꿈이 담긴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복층 형태의 회의실 겸 휴게 공간은, 애초의 용도를 넘어 현재 거주자와 이용자들의 꿈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이곳에서 공연이나 방송을 진행하고 싶다는 진행자의 바람처럼, 공간은 주인의 사용 의도에 따라 언제든 확장될 준비를 마친 상태다.
꿈을 담는 공간, 그 이상의 가치
경사지 사무실 건물의 설계는 건축이 단순한 건물 짓기를 넘어, 주인의 삶과 꿈을 담는 과정임을 증명한다. 지하 공간이 사진작가 스튜디오에서 현재의 다목적 휴게실로 변모한 과정은 공간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주인의 변화에 맞춰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용도에 따라 변화를 주며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재미있는 공간을 설계하는 것은 건축가가 지향해야 할 또 다른 목표다.
결국 주택이든 사무실이든 좋은 건축은 '사용자'를 향한다. 벽 하나를 세우고 창문을 어디에 낼지 고민하는 그 짧은 순간의 결정들이, 실제 생활 공간으로 옮겨졌을 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우리는 이 사례들을 통해 배운다.
더 이상 사각형의 틀에 갇히지 말고, 우리 각자의 삶에 맞는 공간을 설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사례를 보며 다시 한번 느낀 점은, 공간이 가진 잠재력은 건축가의 상상력과 주인의 애정 어린 관심이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빵집이 성공하면 3, 4층을 상업 공간으로 바꿀지도 모른다는 건축가의 말처럼, 집은 완성된 상태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거주자와 함께 늙어가고 변화하며 성장하는 생물이어야 한다.
💭 에디터의 단상
우리 세대는 아파트라는 표준화된 공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라왔다. 천편일률적인 평면도와 정해진 가구 배치, 벽지 색상까지 누가 설계했는지도 모르는 규격화된 삶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건축가들이 보여준 곡선과 천창, 햇빛 우물은 충격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은 바로 이 네모난 공간의 한계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건축가의 설계 철학을 엿보며 내가 진짜 원하는 공간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머무는 공간이 나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단순히 넓은 집, 비싼 아파트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낼 수 있는 '진짜 집'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 비록 당장 내 집을 짓지 못하더라도, 내 방에 곡선 하나, 조명 하나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보고 싶다.
공간은 사람을 닮아간다고 하지 않는가. 건축가들의 고민이 담긴 이 사례들을 보며, 오늘 내 공간을 다시 한번 찬찬히 둘러보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취재 노트를 넘어 나에게 큰 숙제를 던져준 셈이다.
❓ 자주 묻는 질문
Q. 사각형 방이 아닌 비정형 공간에 거주하면 불편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공간마다 변화를 주는 곡선 벽과 비정형 구조는 오히려 단조로운 일상에서 새로운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건축가는 공간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거주자의 정서적 만족을 우선시하여 설계했다.
Q. 왜 1층에 상업 공간 대신 주차장을 배치했나?
경사지라는 지형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상업 공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이를 통해 지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주차 편의성과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Q. '햇빛 우물'이라는 공간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가?
중앙에 위치한 곡선 벽 내부 공간으로, 외부와 차단된 도심 주택 내부로 자연 채광을 끌어들이고 주거 공간에 개방감을 주는 핵심 설계 요소다. 이를 중심으로 침실과 거실이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입체적인 공간감을 형성한다.
건축가의 고민이 담긴 집은 그 자체로 주변에 변화를 일으키는 에너지가 된다. 오늘 당신의 공간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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