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캠프가 대선 국면에서 최배근 교수에게 제안했던 진짜 역할은 단순한 경제 멘토가 아니라, 조선 건국의 설계자였던 '삼봉 정도전'의 역할이었다.
정치권에서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풍문과 왜곡 속에서, 당시 대선 캠프의 핵심 이너서클이 어떻게 짜였고 어떤 철학으로 사람을 검증했는지는 늘 베일에 싸여 있었다. 특히 성남 시절부터 따라붙었던 이른바 경기동부연합 논란이나 최측근인 정진상 실장의 실체, 그리고 캠프 브레인이었던 이한주 교수의 내방 비화는 권력의 형성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권력을 쥐기 위해 어떤 인재를 원했고 그들에게 무엇을 약속했는지, 30대 직장인이자 시민의 눈으로 그 막전막후를 복기해 본다.
경기동부연합에 대한 오해와 실체적 거리
지역 풀뿌리 운동과 얽힌 인연의 기원
정치권과 보수 언론이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수없이 들이밀었던 단골 프레임 중 하나가 바로 경기동부연합과의 유착설이었다. 성남, 하남, 용인 등 경기 동부권을 거점으로 삼았던 이 세력의 그림자가 캠프 안팎에 어른거린다는 소문은 꽤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당시 이재명 캠프의 핵심 멤버들을 하나둘 확인해 가던 과정에서 가장 먼저 검증대에 올랐던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실제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목포 출신으로 과거 민주당에서 활동하며 동교동계와 교류하던 인물의 궤적이 등장한다. 그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미납한 세금과 관련해 한국 최초로 납세자 소송을 제기하면서 언론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주민들의 혈세가 낭비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소송을 이어가고, 민들레학교를 설립해 지역 운동을 전개하던 사람이었다. 급기야 아파트 개발 과정에서 벌어진 토착 비리를 겨냥해 경기도 최초로 감사원 주민감사 청구를 성사시켰고, 무려 200억 원 규모의 비리를 밝혀내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인구 13만 명 남짓하던 작은 도시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지역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처럼 지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치며 인지도를 쌓아가자, 하남시에서는 아이를 키우며 살림하던 평범한 주부들을 무소속 시의원으로 출마시켜 실제 당선까지 일궈내는 생활 정치의 실험이 벌어졌다.
생활 정치는 결국 그 지역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도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의 결과였다. 그러나 대중적 신망이 두터워지자 주변 회원들 사이에서 현실 정치에 직접 나서 달라는 강력한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지표상 무소속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간판만 달아도 무조건 당선된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당사자는 현실 정치에 뜻이 없다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바로 그 주변에서 현실 정치를 권유했던 인물들 일부가 경기동부연합 출신이었다.
이재명 지사와 경기동부연합의 분명한 경계선
경기동부연합이 성남을 핵심 거점으로 삼아 활동했기 때문에, 성남시장에서 출발해 경기도정을 이끌었던 이재명 지사와 물리적·인적 접점이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성남 지역의 풀뿌리 시민운동 판에서 오랫동안 부대꼈던 만큼, 캠프 구성 과정에서 이들의 그림자를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던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캠프 내부의 역학 구도를 정밀하게 들여다본 결과는 세간의 악의적인 프레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재명 지사는 경기동부연합과 철저하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선을 긋고 있었다. 자신의 고유한 철학과 비전을 국가 운영의 기틀로 삼고자 했을 뿐, 특정 정파나 이념 집단의 도그마에 휘둘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내부 검증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보수 진영과 윤석열 씨 세력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색깔론은 지역 운동의 복잡한 맥락을 거세한 악의적 딱지붙이기에 불과했다. 자신들의 경제 철학과 도정 철학을 온전히 펼치기 위해 특정 분파의 정치적 지분 요구를 배제하고 실용적인 국정 설계를 밀고 나간 뚝심은, 이재명 정부가 탄생하기까지 매우 중요한 내적 결단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 색깔론 뒤에 숨은 실용의 잣대
성남 시절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경기동부연합 유착설은 결국 진보 진영 내부를 갈라치기 위한 정략적 프레임이었다.
이재명은 특정 이념 집단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철저하게 실용주의 노선 위에서 거리를 조절해 온 정치인이었다.
캠프의 설계자 정진상 실장과의 담판
"문재인의 양정철 그 이상"이라는 무게감
이재명 캠프에 발을 들이며 가장 먼저 마주해야 했던 핵심 인물은 다름 아닌 정진상 실장이었다. 당시 정치권에서 정진상이라는 이름 석 자는 이재명의 모든 복심을 대리하는 상징과도 같았다.
소개를 주선하던 이들조차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문재인의 양정철 정도를 하는 사람이다", 아니 "문재인의 양정철 그 이상이라는 거야. 이 정진상이라는 사람이.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면 소개해"라며 만남이 성사되었다.
성남 시절부터 이재명과 동고동락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이었기에, 그와의 대면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향후 캠프의 노선과 국가적 방향성을 가늠하는 본질적인 시험대였다. 대화는 겉도는 탐색전이 아니라 뼈를 때리는 정책 철학의 교환으로 이어졌다.
정진상이라는 창구를 통해 전달된 생각들은 곧장 이재명 지사에게 직통으로 보고되었고, 권력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통로가 열렸다.
권력의 문고리를 쥐고 호가호위하는 측근들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특히 윤석열 씨 시절 비선 논란과 권력 사유화로 국정이 농단되던 꼴을 떠올려 보라.
하지만 당시 정진상 실장이 보여준 태도는 사리사욕을 챙기는 정치 자영업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진짜 국가의 틀을 짤 수 있는 학자인지, 어떤 철학이 이재명의 실용 노선과 화학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충직한 참모의 전형이었다.
1년간의 교류와 정책적 공감대의 형성
정진상 실장과의 첫 교류 이후, 두 번째 만남에서 이재명 지사와 마주 앉았을 때 던져진 화두는 명확했다. "당신 정권을 잡으면 반드시 해야 할 과제들에 대해서 제가 교육 혁명부터 쭉 다시 설명합니다." 국가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단순한 선거 승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낡은 판을 엎고 새로운 뼈대를 세우는 작업이어야 했다.
단 한 번의 식사 자리나 사진 찍기용 영입으로 끝나는 얄팍한 정치가 아니었다. 무려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진상 실장, 그리고 이재명 지사와 깊은 대화와 만남을 이어가며 서로의 뇌파를 맞추는 지루하고도 치열한 과정이 전개되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가 무엇인지, 불평등과 양극화의 수렁에 빠진 대한민국 경제를 어떻게 구조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문답이 오갔다.
이 1년의 시간은 서로가 서로를 검증하는 시간이었다.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이 진짜 개혁을 감당할 그릇인지, 그리고 참모로 나서는 학자가 사심 없이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겉핥기식 이미지 정치에 매몰되어 인재를 소모품처럼 쓰다 버리는 여타 캠프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깊이였다.
'삼봉 정도전'의 역할 제안과 사익의 거절
조선 건국의 설계자, 국가 청사진을 요구받다
1년여에 걸친 숙의 끝에 이재명 캠프 측에서 건넨 최종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내가 당신들하고 정치 만약에 한다면은 뭘 해야 되느냐, 어떤 역할을 기대하느냐"라는 질문에 캠프가 내놓은 답은 바로 '삼봉 정도전의 역할'이었다.
고려라는 썩은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의 법제와 철학, 도시와 경제의 기틀을 모두 세웠던 삼봉의 자리를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단순히 유세장에 얼굴을 비추거나 경제 정책 몇 줄을 감수해 주는 자문역이 아니었다. 이재명 정부가 탄생했을 때 대한민국이 나아갈 국가적 청사진 전체를 총괄 기획해 달라는 거대한 부탁이었다.
"내가 경제학자지만 한국 사회의 가장 필요한 부분은 교육 혁명이다"라며, 입시 지옥과 줄 세우기로 병든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그 어떤 경제 정책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일관된 주장에 캠프가 전적으로 공감했기에 가능한 제안이었다.
캠프 핵심 인사들은 "우리가 삼봉을 보필하듯 뒤를 든든하게 받치겠다"며 진정성을 호소했다. 대한민국을 대전환할 청사진을 완전히 이해하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결코 한배를 탈 수 없다는 원칙주의적 태도에, 이재명 캠프는 최고의 예우와 권한으로 화답한 셈이다.
💡 삼봉 제안에 담긴 핵심 가치
- 단순한 선거용 참모가 아닌, 새 시대 국가 비전을 총괄 기획하는 설계자 요구
- 단기 경기부양책을 넘어 교육 혁명 등 사회 근본 구조를 바꾸는 대전환 공감대
- 사적 이익과 자리를 탐하지 않고 공적 대의에 헌신하는 진정한 결합 모색
경기도정 프로젝트와 3급 공무원 특채 제안의 전말
국가 청사진의 실행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캠프 측에서는 당시 이재명 지사가 이끌고 있던 경기도정 차원에서부터 가능한 과제들을 즉각 실행해 보자고 제안했다. 경기도 산하 기관의 굵직한 프로젝트 사업들을 연결해 정책적 구상을 현장에서 검증해 보자는 매우 실질적인 로드맵이었다.
심지어 학술 연구와 강의로 바쁜 일정을 배려하겠다는 명목으로 아주 구체적인 제안까지 건네왔다. 제자 중 유능한 인재 한 명을 추천해 주면 경기도 공무원 신분(대략 3급 상당)으로 즉각 채용하여 손발을 맞출 수 있도록 전폭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3급 부이사관급 자리는 관가에서 수십 년을 굴러도 오르기 힘든 고위직이다. 정책 드라이브를 걸기 위한 파격적인 배려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제안들은 단칼에 거절당했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측근이나 제자를 공직에 꽂아 넣는 순간 사적인 개입이라는 오해를 사게 되고, 이는 곧 정치인 이재명에게 치명적인 정치적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냉철한 판단 때문이었다.
사적 이익을 단 1그램도 섞지 않겠다는 이 결벽에 가까운 태도야말로, 후일 이재명 정부의 도덕적 정통성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주춧돌이 되었다.
이한주 교수의 내방과 자리를 탐하지 않는 정치
정책 브레인의 방문과 "원하는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성남 시절부터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 멘토이자 좌장 역할을 해왔던 인물이 바로 당시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한주 교수다. 이한주 교수는 이재명 지사의 국정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동반자이자 캠프의 싱크탱크를 이끌던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이한주 교수가 직접 찾아와 전한 메시지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이재명 지사의 확고한 신뢰를 전하며 "지사님이 교수님께서 원하는 자리를 만들어 줄 거라고. 없으면 제안하는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모시라고 했다"는 말을 가감 없이 건넸다.
국가 경영을 위해 꼭 필요한 인재라면 정부 조직을 개편해서라도 합당한 권한과 자리를 부여하겠다는 파격적인 러브콜이었다.
선거철만 되면 온갖 폴리페서들이 권력의 떡고물을 바라고 줄을 서는 것이 여의도의 천태만상이다. 장관 자리 하나, 공공기관장 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 양심을 팔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엉터리 공약을 찍어내는 학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런 풍토 속에서 "원하는 자리를 새로 만들어서라도 모시겠다"는 제안은 그야말로 정치적 백지수표나 다름없었다.
권력의 지분이 아닌 시대의 과제에 집중하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권력에 굶주린 이들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는 것이었다.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할 일은 지금도 하고 있고, 이 지사를 위해서 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번 생각해 보자." 벼슬자리를 전리품처럼 챙기려는 욕심을 완전히 비워낸 자만이 할 수 있는 단호한 화답이었다.
공직이라는 자리는 권세를 누리는 왕관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멍에여야 한다. 자리를 탐하는 순간 학자로서의 직필(直筆)은 무너지고,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길로 빠져들기 마련이다.
자리를 약속받아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국민의 삶을 바꿀 정책의 실현 가능성만을 두고 고민하겠다는 태도는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결기였다.
결국 이재명 캠프의 인재 영입은 자리를 나눠먹는 야합의 과정이 아니었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우기 위해 삼봉의 혜안을 빌리고자 했던 절박한 지도자와, 사리사욕을 철저히 배제한 채 시대적 소명만을 응시했던 지식인의 팽팽하고도 건강한 긴장 관계 속에서 오늘날 이재명 정부의 정책적 뼈대가 완성된 것이다.
💭 개인적인 생각
취업난과 살인적인 물가, 끝 모를 부동산 폭등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30대를 지나온 입장에서 정치권의 권력 다툼은 늘 피로하고 역겨운 광경이었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문성도 없는 낙하산 인사들이 공공기관과 내각 요직을 전리품처럼 꿰차고 앉아 나라를 거덜 내는 꼴을 윤석열 씨 시절에 똑똑히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런 난맥상을 보며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가, 이재명 캠프의 삼봉 제안 비화를 들으며 비로소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 제자에게 3급 자리를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사적 개입"이라며 단칼에 쳐내고, 없는 자리라도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에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맞받아치는 학자의 태도는 신선함을 넘어 경외감마저 자아낸다.
자리를 탐하지 않는 자만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정한 교육 혁명과 불평등 해소를 외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다 이루지 못했던 검찰 개혁과 사회적 대전환의 과제를 이제 이재명 정부가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갈 수 있는 밑천은, 바로 이런 사심 없는 참모들과의 치열한 교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는다.
❓ 자주 묻는 질문
Q. 이재명 캠프와 경기동부연합은 실제로 어떤 관계였습니까?
과거 성남과 하남 지역 시민사회 활동 과정에서 경기동부연합 출신 인사들과의 물리적 접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내부 검증 결과 이재명 지사는 이들과 철저하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독자적이고 실용적인 노선을 걸어왔음이 확인되었다.
Q. 캠프 측에서 최배근 교수에게 제안한 '삼봉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나요?
조선 건국의 기틀을 짰던 삼봉 정도전처럼, 단순한 경제 자문을 넘어 교육 혁명을 비롯한 이재명 정부의 국정 전반에 걸친 국가적 청사진과 비전을 총괄 기획해 달라는 핵심 설계자의 역할이었다.
Q. 공직 채용 제안을 거절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경기도 3급 공무원 특채나 산하기관 프로젝트 연계 등은 정책 추진을 돕기 위한 파격적 배려였으나, 측근을 기용하는 순간 사적 이익 추구라는 오해를 사게 되어 정치인 이재명에게 도덕적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모두 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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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누구와 손을 잡고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흉기가 될 수도, 세상을 바꾸는 보검이 될 수도 있다. 사사로운 지분을 챙기지 않고 오직 시대의 과제를 풀기 위해 정도전의 길을 고민했던 참모들과, 그들을 삼봉으로 대우하며 국가의 판을 새로 짜려 했던 정치인의 만남.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재명 정부의 거침없는 개혁 드라이브는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결국 정치가 남겨야 할 것은 한 줌의 권세가 아니라 시민의 삶을 바꾼 청사진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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