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깊어질 무렵, 차를 몰고 제주 바닷가 근처를 지나다 보면 문득 마주치게 되는 풍경이 있다. 찬란하게 부서지는 붉은 노을 아래,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 숨겨진 서늘한 역사적 상처 말이다.
자동차 창문을 열고 스며드는 선선한 공기를 느끼며 평화로운 사색에 잠기다가도, 문득 이 땅의 정치권이 여전히 과거의 폭력과 학살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떠올리면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제주 4·3 유적지 바닷가에 서서 당시 무고한 주민들을 끌고 와 총살했던 국가 폭력의 현장을 되짚어보노라면, 이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비극을 아직도 왜곡하고 깎아내리려는 세력들의 뻔뻔한 태도가 얼마나 참담한지 온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법원이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북한 김일성의 제주 4·3 지령설'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를 대라고 거듭 요구했음에도, 여전히 낡은 색깔론을 반복하는 모습은 우리 현대사가 청산되지 못한 과오 위에서 얼마나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사의 상처를 보듬기는커녕 정파적 이익을 위해 끄어다 쓰는 이 무도한 정치적 공세는, 비단 제주 4·3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국정감사라는 이름의 거대한 쇼 속에서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제주 4·3의 상처와 트럼프의 끝나지 않는 노벨평화상 집착
역사의 왜곡을 반복하는 정치권과 제주 4·3 유적지의 비극
제주도 중산간으로 도망쳤던 주민들까지 기어이 끌어내어 토벌하고 학살했던 자행들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으로 남겨져 있지 않다. 그 아픔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피해자와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으며,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끊임없이 난도질당하고 있다.
태영호 전 의원이 2023년 국민의힘 최고위원 선거 당시 뱉어냈던 "4·3은 명백히 김씨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는 발언은 그 대표적인 흉기였다. 이에 대해 제주지방법원은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을 뒷받침할 북한 측의 실질적인 교육 및 홍보 자료나 객관적인 근거를 대라고 요구했지만, 피고 측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공식 진상조사 결과를 부정하고 북한에서 떠돌던 주장들을 앞세우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수많은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확립한 역사적 진실을 가볍게 짓밟고, 김일성 신년사 같은 억지 증거를 가져와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태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략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러한 역사 왜곡은 4·3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폭력이자, 독재 정권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역사적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수많은 시민사회가 끈질기게 요구해 온 특별법 개정안의 핵심 역시 '소요사태'라는 낡은 표현을 걷어내고, 희생자의 범위를 넓히며, 나아가 악의적인 역사 왜곡 행위에 대해 실효성 있는 형사처벌 근거를 마련하는 데 있다.
군사재판 회부자들에 대한 직권재심이 이어지고 수천 명이 무죄 판결을 받으며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적 사각지대는 넓고 깊다. 보상금 신청 기한이 다가오고 억울하게 덧씌워진 빨갱이 낙인을 지우려 눈물 흘리는 유족들이 존재함에도, 정치권의 일각에서는 이를 '표현의 자유'라는 핑계 뒤에 숨어 혐오와 왜곡을 유포하기에 바쁘다.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존엄을 짓밟고 역사를 날조할 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법원이 명확히 지적했듯, 근거 없는 억측으로 희생자들의 죽음을 정당화하고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법적·사회적 심판이 내려져야 마땅하다.
결국 우리가 제주 4·3 유적지를 찾고 그 아픔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 제주 바다의 풍경 뒤편에서 침묵하던 영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오늘날 벌어지는 정치적 퇴행의 실체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재와 학살의 역사를 정당화하려는 세력들이 여전히 제도권 안에서 활개 치고, 색깔론을 무기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행태는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중대한 위협이다.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제주 4·3은 과거의 박물관 속 전시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싸워야 할 민주주의의 최전선이다.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순간, 우리 사회는 다시 비극의 터널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도널드 트럼프의 기이한 집착과 상징 권력의 허상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도널드 트럼프의 기이한 언행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권력과 타이틀에 찌든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황폐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트럼프는 최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나비 필레이 전 유엔 인권고등대표가 선정되자 격분하며 자신이 여덟 개의 전쟁을 끝냈으니 상을 여덟 개 받아야 했다고 핏기를 세웠다.
자신이 들어본 적도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에게 상이 돌아갔다며 노벨위원회와 국제사회를 향해 거칠게 비난을 퍼붓는 그의 모습은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라기보다 어린아이의 떼쓰기에 가깝다. 경제적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미국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노벨평화상이라는 상징 권력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의 역사와 전통이 가진 태생적 근본 없음, 즉 '길디드 데이지'라 불리는 도금 시대의 경박한 부자들처럼 겉만 번지르르할 뿐 내면의 품격과 역사적 뿌리가 부재하다는 깊은 열등감의 발로다.
🔥 근본 없는 열등감이 만들어낸 상징 권력의 괴물
트럼프가 보여주는 일련의 집착은 단순히 개인이 유난을 떠는 해프닝이 아니다. 그것은 부와 권력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영혼의 허기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메우려는 현대 자본주의 최고 권력자의 추한 치부다.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국가 시스템을 흔들어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는 태도는 전형적인 '나쁜 미국인'의 초상이다.
왕이나 귀족이 될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작위와 같은 권력을 억지로라도 쥐어짜내려는 이 허영심은, 결국 그가 이끄는 정치가 얼마나 저열하고 파괴적인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트럼프 같은 인물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이나 인권의 가치를 비웃으며 오직 자신의 타이틀과 업적 과시에만 집착하는 현상은, 오늘날 글로벌 정치 질서가 얼마나 취약하고 야만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FIFA 평화상처럼 정치적 의미가 덜한 곳에서 스스로 상을 만들거나 억지로 명예를 취하려던 전력들이 증명하듯, 그는 내용의 가치보다 포장지의 화려함에만 눈이 먼 인물이다. 미국 역사 속에서 주기적으로 고개를 드는 위대한 개츠비식의 허영과 경박함이 21세기 백악관의 주인의식을 통해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셈이다.
이 허기진 권력욕 앞에서 국제법과 인권의 수호라는 인류의 오랜 성취는 그저 방해물에 불과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를 향해 단순한 웃음을 넘어 깊은 경계와 냉소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결국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집착 사태는 현대 민주주의와 권력 구조가 마주한 근본적인 병리 현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돈과 권력을 다 가졌으면서도 인정욕구에 허덕이는 최고 권력자가 시스템을 사유화하고 국제 질서를 조롱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평범한 민중의 몫으로 돌아온다.
타이틀 하나 더 얻겠다고 지구촌 곳곳의 평화를 위협하고 국제법을 짓밟는 행태는 더 이상 개인의 기행으로 치부될 수 없다. 내면의 공허함을 권력의 크기로 덮으려는 이 가련하고도 위험한 도박꾼의 말로가 어디를 향할지,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나비 필레이의 수상과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국제사회의 냉정한 연먹이기
유엔 인권고등대표 출신 나비 필레이의 노벨평화상 수상 의미
이러한 트럼프의 광기 어린 집착에 찬물을 끼얹듯, 20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명단에 오른 나비 필레이 전 유엔 인권고등대표의 이름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역사적 심판이자 통쾌한 '연먹이기'였다. 나비 필레이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내린 체포영장을 '국제법상 범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당하게 규정하고 방어해 온 인물이다.
그녀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적으로 미국 내 계좌 동결 조치 등 ICC를 향한 보복성 제재를 가하며 분노를 터뜨렸다. 힘으로 세계를 짓누르려 하는 패권국의 대통령이라도 국제사회의 보편적 정의와 인권의 가치 앞에서 민심을 잃고 고립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전년도의 다소 미온적이었던 수상에 비하면, 이번 수상은 노벨위원회가 대놓고 트럼프와 그 동조 세력의 얼굴에 정면으로 주먹을 날린 것과 다름없었다.
📊 국제법과 패권의 충돌이 남긴 명확한 징후
나비 필레이의 수상은 국제형사재판소가 지닌 연약한 현실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국제법적 이상 사이의 긴장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법과 정의는 종종 강대국의 입김에 무력하게 꺾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를 지키려는 목소리의 무게는 더욱 무겁다.
역사적으로 국제법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순간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통해 인류의 파괴자들을 법정에 세웠던 때였다. 물론 그 과정에 전승국의 승자의 Justice라는 한계가 없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국제 질서가 무자비한 힘의 논리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법의 지배에 따라 운영될 수 있다는 거대한 이정표를 남겼다.
나비 필레이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바로 그 뉘른베르크의 정신, 즉 국제법을 대놓고 유린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하는 짓이 얼마나 반역사적이고 범죄적인지 똑똑히 보라"고 일침을 가하는 도덕적 선언이었다.
트럼프와 같이 국제 협정을 탈퇴하고 재판소를 제재하며 자기 마음대로 세계를 주무르려는 자들에게 이 상은 가장 따끔한 회초리이자 절대 지워지지 않을 오점이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스 이스라엘의 광기 어린 반응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외무부는 나비 필레이가 ICC 수사관으로서 하마스의 학살 등 반인륜적 범죄를 정점으로 규정한 것을 두고 "21세기 최대의 거짓말에 상을 주었으니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지옥에서 환호할 것"이라며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쏟아부었다.
국제형사재판소에 의해 체포영장이 청구되어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체포될 위험을 안고 있는 이스라엘 지도부 입장에서는, 나비 필레이의 존재 자체가 자신들의 잔혹한 범죄를 고발하는 가장 뼈아픈 실체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가려진 그늘 뒤에서 이스라엘 역시 국제사회의 인권 기준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셈이다.
결국 언젠가는 트럼프 자신조차도 불법적인 전쟁과 타국 침략의 책임을 물어 국제형사재판소의 법정에 세워질 날이 올지 모른다. 국제법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지금 당장은 미국의 막강한 힘 앞에 취약해 보일지라도, 나비 필레이와 같은 원칙주의자들의 끈질긴 저항과 국제사회의 연대가 존재하는 한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국경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양심을 지키려는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언젠가 힘이 법을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를 끝내고 진정한 평화의 질서를 복원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게 된다. 나비 필레이의 품에 안긴 노벨평화상은 단순한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무도한 권력에 맞서는 전 세계 모든 양심들의 승리다.
국정감사의 실종과 권력 오남용 피해자들의 눈물
증인 채택의 파행과 권력 오남용 피해자들의 소외
시선을 다시 국내로 돌려,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국정감사의 풍경을 마주하면 한숨부터 터져 나온다. 언론의 플래시를 받는 것은 언제나 정치적 득실을 계산하며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바쁜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말뿐이고, 권력 기관의 부당한 오남용으로 인해 생때같은 삶의 터전을 잃고 눈물 흘리는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지워져 있다.
최근 축구협회가 쿠팡플레이에만 해외 유명 클럽 내한 경기의 우선권을 몰아주면서, 수백억 원을 투자해 다른 클럽을 초청하려던 무고한 중소 업체 대표가 국정감사장에 나와 피눈물 나는 호소를 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 자리에서 이들은 억울함을 토하며 증언했지만, 여야 정치인들은 이들의 절박한 호소에는 눈을 감은 채 서로를 향한 정쟁의 칼끝을 겨누기에 바빴다.
💡 국정감사 본연의 가치를 되찾기 위한 제언
-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증인 채택 관행을 뿌리 뽑고 여야 합의의 제도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 권력 기관과 거대 자본의 횡포에 희생된 일반 피해자들이 직접 발언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 입법권자들이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고 자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회 운영 규칙의 전면적 개편이 시급하다.
국정감사가 이토록 무력하고 무능한 '맹탕 쇼'로 전락한 근본적인 원인은 증인 채택 과정을 둘러싼 구태의연한 밀실 야합에 있다. 여야가 조금만 이해관계가 갈리면 핵심 증인들은 다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자리에서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하다가 끝나는 일이 반복된다.
국회가 가진 막강한 권한과 입법권은 국민의 삶을 지키고 부당한 권력의 폭주를 통제하라고 부여된 것인데, 이들은 그 권력을 오로지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호기 위한 정쟁의 무기로만 소모하고 있다.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집행하는 입법권자들이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이 지경에 이르면, 결국 국민들은 국회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다. 몇만 표 받아 당선되었다는 특권의식에 취해 국민의 눈물을 외면하는 정치는 이미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적 파행 속에서 방통위의 2인 체제 위법성을 지적받고도 적반하장격으로 역질문을 던지며 회의를 파행으로 이끈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의 행태는, 현 정부와 권력 기관이 법치와 민주주의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다.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다수의 판결로 이미 불법성이 확인된 2인 체제에 대해 스스로 물러나기는커녕 뻔뻔스럽게 질의를 강행하고, 민주당 의원들의 제척 안건 의결 과정에서 보인 뻔뻔함은 공직자의 기본 자질조차 의심케 한다.
김태규 위원장 등 거취가 불분명한 인사들이 국회라는 공적 공간에서 서슴없이 거짓과 망언을 내뱉을 수 있는 이유 역시, 이들을 비호하는 낡은 정치 카르텔과 허술한 제도적 처벌 조항 때문이다. 입법부의 권위가 이토록 땅에 떨어진 것은 결국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에서 비롯된 결과다.
결국 국정감사가 진정한 '국민의 감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쇼와 삿대질로 채워지는 3주의 관행을 완전히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 거대 양당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권력 오남용의 진실을 은폐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지금의 시스템을 방치한다면, 국회는 그저 세금으로 운영되는 거대한 만담 시어터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잘못된 정책과 부당한 권력 행사에 대해 추궁하는 생산적인 감사의 장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입법권자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가장 무겁고 시급한 책무다.
박진영 위원장 해프닝과 통일부 국정감사의 전략 부재
대중문화교류위원회 박진영 위원장 출석과 정치권의 헛발질
과거 국정감사의 씁쓸한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준 또 하나의 장면은 대중문화교류위원회 박진영 위원장의 출석 해프닝이었다. 당초 대중문화의 영역은 특별한 거대 비리가 없는 한 정치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상식임에도,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월 200만 원이라는 지엽적인 시비를 걸며 굳이 증인으로 채택하는 바람에 온 국감장이 소모적인 공방으로 물들었다.
국회에 출석한 박진영 위원장은 "이 일을 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을 위해서 일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이 정권 혹은 민주당을 위해서 일한다는 생각을 1초도 해본 적 없으며 제 마음속에 1%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이재명 정부의 대중문화 공약인 '페노메논' 행사를 두고 야당이 맹공을 퍼붓자, "이 행사를 안 하고 각각 회사들이 그 시간에 각 가수의 공연을 하면 훨씬 더 큰 돈을 법니다. 그래서 특혜를 받는다고 하기엔 조금 그렇습니다"라며 여유 있게 반박했다.
💭 연예인과 대중문화 예술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구태에 대하여
박진영 위원장이 보여준 처세는 웬만한 정치인 뺨칠 정도로 노련했고, 시스루 의상을 입고 나와 유머로 상황을 받아넘기는 모습은 나름의 내공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해프닝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이 대중문화를 다루는 수준이 얼마나 유치하고 저급한지 한숨이 나온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박진영을 앉혀놓고 어떻게든 '이재명 대통령 줄을 섰다'는 말 한마디를 뽑아내거나 과거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국풍 81'에 비유하는 무리수를 던졌지만, 그 과정에서 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연예인을 불러다 놓고 사진 한 장 건지거나 언론에 얼굴 도장이나 찍으려는 뻔한 속내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셈이다. 국가의 미래를 논해야 할 국정감사장이 연예인과의 기싸움이나 벌이는 삼류 토크쇼로 전락하는 이 불행한 현실이 너무나 짜증스럽고 허탈할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통일부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진 정동영 장관을 향한 야권의 색깔론 공세와 정부 내부의 전략 부재는 훨씬 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북한의 지뢰 도발 가능성과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상태를 다루는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은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군사 작전이나 전략적 책임이라는 엉뚱한 잣대를 들이밀며 맹폭을 가했다.
통일부는 본래 남북 간의 대화의 장을 열고 민간 교류와 협력을 복원해야 하는 부처임에도, 현재 북한과의 핫라인조차 끊긴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통일부 장관이 방패막이처럼 홀로 두들겨 맞도록 정부 전체가 방치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방부가 군사적 차원에서 차분하게 대응하며 국방장관이 비교적 무난하게 넘어간 것과 달리, 통일부 장관만 홀로 색깔론의 표적이 되어 집중 난타를 당하는 모습은 이 정부가 야당의 공세에 맞설 기본적인 전선과 방어 전략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음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더욱 씁쓸한 대목은 이러한 정동영 장관의 고립이 야당의 공세뿐만 아니라 정부 내부의 취약한 기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보수 언론과 야권이 정 장관의 발언을 트집 잡아 흠집 내기에 바쁠 때, 청와대와 여당은 통일부 장관을 든든하게 엄호하기는커녕 내부에서부터 불협화음을 흘리며 사면초가로 몰아넣었다는 의심을 사기 충분했다.
남북 관계가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어 대화의 실마리조차 찾기 힘든 집권 중후반기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통일부 장관을 '내놓은 자식'처럼 고립시키는 전략의 부재는 정권 전반의 리더십 위기를 자초하는 지름길이다.
야당이 파고드는 약점을 뻔히 알면서도 방어할 것은 방어하고 해명할 것은 명확히 해명하는 통합된 기조를 세우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국정 운영은 사사건건 색깔론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결국 박진영 위원장 해프닝이 보여준 '정치쇼'의 허무함과 통일부 국정감사가 보여준 '전략 부재'의 무능함은 궤를 같이한다. 국회가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본질적인 정책의 오류와 국민의 고통은 외면한 채, 껍데기뿐인 색깔론과 연예인 끌어내리기식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의 타성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암덩어리다.
남북 평화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 통일부 장관은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고, 대중문화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할 위원회는 정치적 꼬리 잡기의 희생양이 되는 이 기이한 풍경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정치가 스스로 자정 능력을 회복하고 본연의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다가올 미래의 위기 앞에서 이 나라가 감당해야 할 대가는 너무나 가혹할 것이다.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사태와 인사혁신처장의 뾰족구두 혁신론
금융당국의 무책임한 태도와 54조 원 규모의 국민 피해
정책의 실패가 국민의 삶을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지난 10월 8일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다뤄진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사태'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급하게 출시된 고위험 금융상품으로 인해 무려 54조 원 규모의 막대한 국민 피해가 발생했다고 매섭게 질타했다.
청와대의 부당한 개입과 변칙적인 심사 속에서 서둘러 도입된 이 상품은, 주식시장을 한낱 도박판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으며 '바다이야기 시즌 2'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국감장에 선 이복현 금융위원장은 "저희들이 뒤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발뺌하기 바빴고,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면서도 정책 결정의 핵심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철저히 선을 긋는 비겁한 태도를 보였다.
이 사태의 본질은 단순히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행정적 실수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위험성을 너무나 안이하게 평가하고 정치적 일정에 밀려 고위험 상품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책 당국의 오만함에 있다. 해외로 이탈하는 투자자를 잡고 환율 상승을 방어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서 영끌과 빚투에 나선 평범한 개미투자자들이 입은 상처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민의힘이 김용범 전 정책실장까지 국감장에 세워야 한다고 벼르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비록 전직 실장을 직접 불러 세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더라도, 당시 왜 그토록 이 상품이 급하게 필요했으며 위험성 평가는 왜 그 모양으로 누락되었는지에 대해 정책 결정 당국은 떳떳하게 진실을 고백해야 마땅하다.
수십조 원의 국민 자산이 증발하는 동안 금융당국 수장들은 수세에 몰려 변명하기에 급급했고, 그 무능의 대가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으로 전가되었다.
🔥 주식판을 도박장으로 만든 정책 실패와 책임 회피의 진실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투자자를 보호해야 할 금융위원회가 정치적 압박이나 성과주의에 눈이 멀어 고위험 레버리지 상품의 빗장을 함부로 풀어준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수세에 몰린 당국이 양쪽 입장을 다 설명한다며 핑계를 대는 사이, 시장은 이미 통제 불능의 투기장으로 변질되었다.
54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피해 규모 앞에서 "우리가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변명은 사죄가 아니라 국민을 우롱하는 오만일 뿐이다. 정책의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고 재발 방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금융당국을 향한 시장의 신뢰는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인사혁신처장의 뾰족구두 덧신 발언이 드러낸 공직자의 시대착오적 인식
정책의 실패가 거시적 경제를 뒤흔들었다면, 공직자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은 청년 세대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은 국정감사장에서 면접 복장 간소화를 핑계로 수험생들에게 '덧신'을 씌워 면접을 보게 한 정책을 옹호하며, "여성 수험생들이 풀 메이크업을 하고 정장을 입고 뾰족구두를 신고 오면 콘크리트 바닥에서 소리가 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려 했다"는 경악스러운 해명을 내놓았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율 복장을 권고하면서 정장과 구두는 안 된다는 금지 조항을 함께 넣은 발상의 모순을 비판하자, 처장이란 사람이 내놓는다는 변명이 고작 '여성의 풀 메이크업과 뾰족구두 소음' 운운이었던 것이다.
청년들이 취업난 속에 피를 말리며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현실에서, 처우 개선이나 공정한 채용 시스템 개혁은커녕 뾰족구두 소음 타령이나 늘어놓는 이 참담한 인식 수준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황당한 설화가 언론 지면을 스쳐 지나가듯 대충 묻혀버렸고, 정부와 여당 내부에서도 이에 대해 따끔하게 질타하는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공공기관의 채용 면접장에서 수험생들에게 덧신을 강요하는 발상 자체가 행정 편의주의의 극치이자 청년들을 향한 시혜적 훈계의 발로다.
자율 복장을 하라면서 구두를 신으면 소리가 난다고 덧신을 신기겠다는 발상머리에서, 과연 공직사회를 혁신하고 청년들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유연한 정책이 나올 수 있을 리 만반무하다.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채용과 공정의 문제 앞에서 이토록 시대착오적인 감수성을 드러내는 인사가 여전히 고위직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현 정부의 인사 시스템이 얼마나 무감각해졌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증거다.
결국 단일 종목 ETF 사태의 54조 원 피해부터 인사혁신처장의 뾰족구두 덧신 망언까지, 이번 국정감사 기간 동안 드러난 정부 여당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깊은 실망과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굵직한 경제 정책의 실패 앞에서는 남 탓을 시전하고, 청년들의 생존이 걸린 취업 현장에서는 꼰대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 고위 공직자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국정감사가 아무리 열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권의 성패는 거창한 구호나 화려한 레토릭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일상적인 행정의 디테일과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는 최소한의 상식에서 판가름 난다. 뼈를 깎는 반성과 함께 정책의 오류를 바로잡고 시대착오적인 관료들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다가올 민심의 심판은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처럼 통렬하고 매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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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는 이 허황된 정쟁과 무능의 터널을 지나 진정한 민주주의와 상식의 계절을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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