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SNS 소통의 본질은 여론을 거르는 기성 언론의 필터를 우회해 주권자와 직접 호흡하려는 생존 전략이자 권력의 고립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권력을 쥔 지도자가 대중과 직통 채널을 유지하며 민심의 바닥을 확인하는 것은 독선에 빠지지 않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 소통이 지지층과의 폐쇄적 교감에 머물거나 정계 개편이라는 중대한 권력 구조 재편을 가리는 알리바이로 쓰일 때 정치는 심각한 왜곡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밝힌 소통의 철학과 그 뒤편에서 일어나는 정치 공학적 움직임 사이의 괴리를 정면으로 응시해야만 지금 정권이 마주한 본질적인 위기를 제대로 진단할 수.
청와대나 여의도 정치권의 두터운 장벽 속에 갇히는 순간 지도자는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다. 취업난과 폭등한 집값, 물가 폭탄을 고스란히 견뎌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0대의 시선에서 볼 때, 정치인이 대중과 소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트위터(현 X) 피드에 글 몇 줄 올리고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확인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공약했던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이라는 국정 과제가 왜 기득권 카르텔 앞에서 멈춰 서 있는지를 투명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치열한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국을 보면 '구조적 다수'라는 모호한 수사 뒤로 정계 개편 논의가 수면 아래서 꿈틀거리고, 밖으로는 대법원이 수감 중인 윤석열 씨의 직무정지 가처분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배당하는 사법적 파동까지 겹치고 있다.
이 복잡한 전선 속에서 이재명 SNS 소통이 진정한 연대의 숨구멍으로 기능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름 없는 권력 재편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퇴색되고 있는지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SNS 정치와 ‘국민과의 숨구멍’, 직접 소통의 본질
고립된 정치인을 구원한 목숨줄과 민중이라는 언어
이재명 SNS 소통은 그에게 있어 수사가 아닌 실존의 역사였다. 변방의 정치인이었던 성남시장 시절부터 경기도지사를 거쳐 대권에 이르기까지, 기존 언론 환경과 검찰의 집요한 포화 속에서 버텨낼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는 대중과의 직접 접촉이었다.
기자 간담회에서 비공개 방식을 깨고 전면 공개로 전환하며 털어놓은 고백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어느 마지막 순간에 본인을 살려줄 수 있는 숨구멍은 국민과의 숨구멍이다."라는 발언은, 기성 기득권이 쳐놓은 포위망을 돌파하는 무기로서 SNS를 '목숨줄'로 여겨왔음을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주목할 지점은 그가 단순히 제도권이 애용하는 '국민'이라는 정제된 단어에 안주하지 않고 '민중'이라는 표현을 호출했다는 사실이다. 통상적으로 여의도 주류 정치권에서는 민중이라는 어휘를 기피해 왔다.
과거 변혁 운동권의 언어라는 낙인 찍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의 최전선에서 소외되고 팍팍한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사람들을 호명할 때 민중만큼 육중한 울림을 주는 단어는 드물다.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호흡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정치적 감각은, 엘리트 관료나 여의도 책상물림 정치인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이재명 정치의 가장 밑바닥 동력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던 개별 정치인이나 광역단체장 시절과는 전혀 다른 무게를 요구한다.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숨구멍이 자칫 내 말에 환호해 주는 확고한 지지층만의 폐쇄적 광장으로 좁아진다면, 그것은 숨구멍이 아니라 확증 편향의 감옥이 된다.
정치적 성향이 강한 이들이 폐쇄형 소통 공간에서 루머와 확증 편향에 쉽게 갇힌다는 학계의 연구 결과들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살기 위해 뚫어놓았던 그 숨구멍이 과연 지금도 보통 시민들의 날것 그대로의 한숨과 절망을 빨아들이고 있는지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
💡 요약해보면
- 이재명 대통령에게 SNS는 언론의 왜곡과 기득권의 포화를 뚫고 버텨낸 생존의 목숨줄이었다.
- 정치권의 금기어처럼 여겨지던 '민중'을 소환해 바닥 민심과 직접 호흡하겠다는 의지는 차별화된 자산이다.
- 단순한 지지층 결집을 넘어, 비판적 목소리까지 수용하는 진정한 공론장으로 진화해야 소통의 본령이 산다.
주막을 찾던 군왕의 시선과 텍스트 정치의 명암
소통 방식이 가볍다는 일각의 점잖은 훈계는 시대착오적이다. 조선 시대 군왕도 평민의 옷을 걸쳐 입고 깊은 밤 뒷골목 주막에 숨어들어 민심의 동향을 살폈다.
왕조 시대에도 그러했거늘, 모든 권력이 주권자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에서 국가원수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날것으로 접하는 것을 폄훼할 이유는 전혀 없다. 미국이나 유럽의 정상급 지도자들 역시 SNS와 팟캐스트, 생중계를 넘나들며 대중과 직접 호선하는 것이 보편화된 시대다.
격식을 깨는 파격이야말로 불필요한 의전의 거품을 걷어내는 가장 빠른 길이다.
문제는 플랫폼 자체의 문법과 한계에 있다. 140자의 짤막한 활자체로 대변되는 텍스트 기반 소통은 날카롭고 감정이 거세되기 십상이다.
맥락은 잘려 나가고 오로지 단어의 칼날만 남아 적과 동지를 가르는 살벌한 전장으로 변질되기 쉽다. 실제로 트럼프가 트루스소셜에 하루 평균 16건이 넘는 글을 쏟아내며 미국 사회를 극단적 양극화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던 사례는 직접 소통이 가진 파괴적인 위험성을 웅변한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가 던져졌을 때, 그 파편은 사회적 합의를 촉진하기보다는 갈등의 골을 깊게 파고들 뿐이다.
결국 활자의 날카로움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의 접촉면을 넓히겠다는 구상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그 소통이 국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국민적 논쟁이 필요한 거대한 정치적 기획에 대해서는 모호한 화법으로 일관한다면, 대중은 그 직접 소통을 '진짜 대화'가 아니라 '정치적 마케팅'으로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보여주기식 소통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방향을 놓고 벌이는 솔직한 공론화가 절실하다.
구조적 다수라는 명분과 지워진 정계 개편의 실체
석 달간의 침묵과 모순된 타임라인의 기록
2023년 10월 19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당정대 초청 탕반 소통 간담회는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도 동시에 풀리지 않는 의구심을 남겼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정계 개편 한다고 해서 되나, 상상도 못 한다. 국회의원 몇 명 빼 오는 강제 합당조차 안 하겠다고 다짐해왔다"라며 선을 그었다.
나아가 "어느 한쪽 출신을 대표해서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거기 너무 집중하면 대통령이 아니라 점령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한쪽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적이 없다"라며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철학을 설파했다.
언뜻 들으면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려는 성숙한 지도자의 면모로 읽힌다. 그러나 지난 석 달간 집권 세력 내부에서 전개된 일련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이 해명은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7월 1일 대통령 본인이 후보와 다수를 함께 확장하겠다고 포문을 열자, 7월 민주당 김민석 당대표는 새천년민주당식 중도보수 대폭 영입을 확장 모델로 제시하며 '흡수합당'을 공공연히 거론했다. 7월 22일 정계 개편 가능성을 경고한 유시민 작가를 향해선 지식인의 편협함이라는 공격이 쏟아졌고, 8월 24일 대통령실이 '통합추진단'을 설치하자 언론은 일제히 정계 개편 시동으로 받아쳤다.

뒤이어 8월 27일에는 구조적 다수를 통한 재집권의 길이 회자되었고, 9월 12일 평택 현장에서는 보수와 중도를 끌어안는 구조적 다수를 외치며 국민의힘 출신 김용남 위원장을 향한 적극적인 손짓까지 이어졌다.
당대표와 측근들이 대통령의 말을 발판 삼아 합당과 보수 인사 영입을 기정사실로 못 박는 동안, 석 달 동안 단 한 차례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던 대통령실이 뒤늦게 "정계 개편은 상상도 못 한다"라며 발을 빼는 모습은 지독한 모순이다.
움직임의 실체가 뻔히 보이는데 이름표만 떼어내는 꼴이다.
🔥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하나
합당과 외부 세력 영입을 통한 의석 확장은 정치학에서 명백히 '정계 개편'이라 부른다. 이를 추진하면서도 정계 개편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은 유권자를 기만하는 언어 조작이다.
정치를 하려면 당당하게 이름을 붙이고 당원과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정면 승부를 펼쳐야 한다.
밀실 정치의 망령과 이름을 지운 권력의 위험성
정계 개편 자체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죄악은 아니다. 정당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 의회 내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합법적인 틀 안에서 이합집산을 도모하는 것은 정치 본연의 기능일 수 있다.
1990년 3당 합당 역시 13대 총선으로 형성된 여소야대라는 구조적 불리함을 타개하겠다는 노태우 정권의 정치적 계산에서 출발했다. 당시에도 명분은 국가 안정과 거국적 통합이었다.
하지만 군사정권 후예와 야당 지도자들이 국민 몰래 결행한 야합이었기에 현대사의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았다.
과거처럼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국회의원을 협박하고 빼돌리는 강제 공작의 시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옛날 정치의 본질은 물리적 폭력 이전에 '국민을 배제한 밀실'에 있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위험한 이유는, 내용을 실행하면서도 공식적인 이름을 지워버렸다는 점이다. 이름을 지우는 순간 공론장에서 세 가지 핵심 가치가 완벽하게 증발한다. 첫째는 논쟁의 실종이다.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기획에 대해 의회와 시민사회는 찬반 토론을 벌일 수조차 없다.
둘째는 당원의 동의권 박탈이고, 셋째는 실패했을 때 져야 할 책임의 증발이다. 애초에 정계 개편을 한 적이 없다고 우기면 정책적 혼선이나 지지층의 분열이 발생해도 아무도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거대한 권력 재편을 '정계 개편'이라고 비판하는 내부 목소리를 망상으로 치부하고 반대자를 배신자로 낙인찍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비판할 언어 자체를 압살하는 구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청산해야 할 낡은 정치의 전형이다.
노무현의 정면 승부와 오늘의 회피가 남긴 교훈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와 국정 동력 확보를 위해 한나라당을 상대로 '대연정'을 공식 제안했다. 당시 여당 지지층은 경악했고 지지율은 바닥을 쳤으며 결과적으로 실패한 정치적 실험이 되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연정'이라는 명확한 이름을 붙였다. 밀실에서 야합하지 않았고, 쏟아지는 비난과 지지자들의 배신감을 청와대 안마당에서 온몸으로 받아냈다.
비록 졌을지언정 비겁하게 발을 빼거나 뒤통수를 치지 않았다.
반면 지금의 권력은 이름을 지운 채 실리를 챙기려 든다. 중도와 합리적 보수를 끌어안아 과반을 넘기는 지형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노무현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민주개혁 진영이 촛불 혁명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도 고작 40% 안팎의 지지율에 갇혀 있다는 현실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다. 구조적 다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개혁 입법은 사상누각이 된다.
그러나 그 길을 가고자 한다면, 유권자와 당원 앞에 나서서 동의를 구하는 험난한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마땅하다.
유권자가 위임한 권한은 5년 단임 대통령으로서의 국정 운영과 사회 통합이지,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야합성 진영 재편을 벌이라는 면죄부가 아니다. 다음 대선의 지형을 설계하는 것은 미래 권력 주자들과 정당 구성원들의 몫이어야 한다.
국민의 선택지를 임의로 바꾸려 들면서 "정계 개편은 상상도 못 한다"고 손사래를 치는 태도는, 노무현이 보여주었던 정직한 패배보다 훨씬 초라하고 위험해 보인다.
📊 숫자로 보면
민주개혁 진영의 기본 지형은 역대 선거에서 40% 안팎의 견고한 박스권에 갇혀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의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정권 재창출과 안정적 국정 운영은 구조적으로 위협받는다.
기득권 카르텔 청산과 약속된 개혁 과제의 표류
국정 과제 3호와 6호, 검찰·사법 개혁의 멈춰선 시계
대중이 이재명 정부에 정권을 맡기며 기대했던 최우선 순위는 모호한 중도 통합이 아니라 무도한 기득권 카르텔의 해체였다. 윤석열 씨 재임 시절 자행되었던 무소불위의 검찰권 남용과 편파적 사법 권력의 횡포를 목도한 시민들은 국정 과제 3호와 6호로 명시된 검찰 개혁, 사법 개혁의 완수를 명령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수많은 피와 땀으로 진전시켜 온 민주주의가 권력기관의 폭주 앞에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 뼈저리게 체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개혁의 칼날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보수와 중도를 아우르는 '구조적 다수'라는 환상을 좇느라, 정작 기득권의 저항에 맞서 부딪쳐야 할 순간마다 한 걸음씩 물러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약속을 해서 뽑아줬는데 그 약속을 어겨, 그러면 배신이고 사기인 거죠."라는 거친 일갈이 지지층 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배경을 직시해야 한다.
약속된 개혁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단순한 전술적 후퇴가 아니라 주권자에 대한 배임이다.
사법 시스템과 검찰 조직이라는 대한민국 최상위 기득권 카르텔은 정권이 적당히 손을 내민다고 해서 결코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들은 정권의 지지율이 흔들릴 때마다 칼끝을 겨눌 기회만 노리고 있다.
합리적 보수와의 연대라는 미명 아래 카르텔 타파라는 원칙을 희석시킨다면, 남는 것은 지지층의 이탈과 기득권의 비웃음뿐이다. 개혁의 약속을 지키는 것만이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환상과 탈당 요구의 딜레마
대통령의 책무가 국민 통합에 있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모든 진영을 만족시키는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구호는 자칫 현실 정치에서 허무맹랑한 환상으로 전락하기 쉽다.
기득권 세력이 가진 부당한 특권을 박탈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개혁은 필연적으로 반대 세력의 저항을 부른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바란 것은 기득권과 좋은 게 좋은 식으로 타협하는 봉합이 아니라, 불공정을 도려내는 단호한 결단이었다.
일각에서 "왜 민주당의 대통령을 하십니까? 모두의 대통령이 되려면 탈당하는 게 맞죠"라는 극단적 제언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기인한다.
정당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정당의 공천을 받아 그 정당의 가치와 공약을 걸고 당선된 인물이다. 당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정당 책임 정치를 훼손하면서까지 무색무취한 초당파적 지도자를 흉내 내는 것은, 지지해 준 당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헌법적 정당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통합은 원칙 있는 통합이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남북 관계를 평화로 이끌며 공정한 경제 질서를 세우겠다는 기본 철학 위에서 반대 세력을 설득해야지, 그 철학의 알맹이를 버리면서까지 상대 진영의 의원 몇 명을 끌어들이는 데 매달려서는 안 된다.
뿌리 없는 통합은 결국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의 기이한 배당과 헌법 수호라는 진짜 전선
윤석열 씨 가처분 배당 사태와 조국혁신당의 오판
정치권이 지리멸렬한 명분 싸움에 매몰되어 있는 사이, 사법부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파면되어 구속 수감 중인 윤석열 씨의 대선 무효와 직무정지를 요구하는 황당무계한 가처분 신청에 대해 대법원이 정식 사건 번호를 부여하고 특별3부에 배당한 것이다.
상식적인 법치국가라면 일고의 가치도 없이 각하되어야 마땅할 소송을 대법원이 손에 쥐고 간을 보고 있는 형국이다. 사법부가 정치의 영역을 침범해 헌정 질서를 뒤흔들려는 불온한 조짐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틈을 파고드는 일부 정치 세력의 태도다.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야권 일각에서는 정권의 지지율 하락세를 틈타 대선 판 자체를 뒤흔들려는 위험한 엎어치기를 노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수감 중인 윤석열 씨나 김건희 씨 일가에 대한 단죄를 흐지부지 넘어가려는 사법 기득권의 기류와 맞물려, 현직 대통령의 정통성 자체를 부정하려는 듯한 위험천만한 줄타기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이나 정계 개편 행보를 매섭게 비판할 수는 있다. 그것은 더 나은 개혁을 추구하는 시민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이재명은 애초에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헌정 절차 자체를 부정하고 나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지율이 낮아졌다고 해서 민주적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준동을 용납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헌정사 전체를 부정하는 파괴 행위에 불과하다.
💭 개인적인 생각
노무현의 비극적인 서거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사법부의 수상한 기류와 이에 편승하는 정치권의 모략은 서늘한 기시감을 안겨준다. 당시에도 권력기관과 언론, 심지어 우군이라 여겼던 지식인들까지 하나둘씩 돌아서며 정당한 헌법적 권위를 난도질했다.
오늘의 이재명 대통령이 걷는 길이 마냥 완벽해서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비판할 것은 살벌하게 따져 묻되, 헌정 질서를 유린하려는 사법 카르텔의 불장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피땀 흘려 지켜온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친명계와 헌법 시스템을 지키는 기준
이토록 위태로운 사법부의 도발 앞에서도 정작 대통령을 지킨다던 '뉴이재명' 세력의 침묵은 기이할 정도로 깊다. 조국혁신당 등의 무리한 정치 공세에 제동을 걸거나 대법원의 비상식적인 사건 배당을 강력히 규탄하는 목소리는 여당 주류 그룹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권력 내부의 지분을 챙기고 당정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는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정작 정권의 헌법적 기반이 흔들리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비겁함이 엿보인다.
대통령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이 능사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권력자를 지키는 사병 노릇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 시스템을 수호하겠다는 공적 책임감이다.
대법원의 특별3부 배당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정권의 정통성을 갉아먹으려는 기득권의 정밀한 타격 시도다. 국민이 촛불을 들고 대법원 앞에 서기 전에, 집권 여당과 참모진이 먼저 이 사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정치는 결국 시스템과 신뢰의 싸움이다. 밖으로는 헌법 질서를 수호하고, 안으로는 국민과의 약속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이행할 때 비로소 정권의 숨구멍이 활짝 트인다.
지워진 이름 뒤에 숨어 정계 개편의 꽃놀이패를 잴 때가 아니다. 민생의 바닥에서 들려오는 아우성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약속했던 사법 개혁의 고삐를 다시 죄어야 한다.
그것이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다.
❓ 자주 묻는 질문
Q. 이재명 대통령이 SNS를 국민과의 숨구멍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존 언론의 왜곡 보도와 검찰의 집중 포화 속에서 정치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가 대중과의 직접 소통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살려준 것은 엘리트 관료나 정당이 아니라 바닥 민심과의 직통 채널이었다는 실존적 경험이 담겨 있다.
Q.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구조적 다수의 의미와 정계 개편 입장은 무엇인가요?
진보 진영의 40% 안팎 박스권을 넘어 중도와 합리적 보수까지 아우르는 안정적 집권 기반을 뜻한다. 그러나 대통령 본인은 강제 합당이나 의원 빼오기 식의 인위적 정계 개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국민적 반감만 살 뿐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Q. 모두의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건과 기득권 카르텔 청산 방안은 무엇인가요?
어느 한쪽 진영만의 점령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사회적 통합을 지향하되, 국정 과제 3호와 6호로 약속한 검찰 및 사법 개혁을 타협 없이 이행해야 한다. 원칙 없는 정계 개편에 기대지 않고 기득권의 특권을 도려내는 제도적 개혁을 완수하는 것이 카르텔을 깨부수는 본질적인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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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도자에게 소통이란 단순한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국정의 방향타를 점검하는 나침반이어야 한다. 이재명 SNS 소통이 진정한 생명의 숨구멍으로 남으려면, 지워진 정계 개편이라는 밀실의 유혹을 떨쳐내고 당초 국민에게 엄숙히 약속했던 개혁의 현장으로 당당히 돌아와야 한다.
법치와 헌정 질서를 뒤흔드는 거대한 음모에 맞서 주권자의 뜻을 정직하게 대변하는 것만이 닫혀가는 소통의 문을 활짝 여는 유일한 열쇠다.
우리가 바란 것은 군림하는 점령자가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정직한 동행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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