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주·임형남 건축가가 설계한 카오스의 집 탐방

우리가 꿈꾸는 집은 어떤 모습일까. 단순히 자산 가치로서의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숨 쉬는 사람의 온기와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을 상회하는 꿈 말이다.

최근 노은주 건축가와 임형남 가온건축 소장이 소개한 '카오스의 집'과 빵집이 결합된 독특한 주거 사례는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거주 구역'을 넘어 한 개인의 철학과 삶의 궤적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건축가의 공간 설계 철학이 100년 된 감나무와 만났을 때, 그리고 일터와 삶터가 '겉바속촉'의 미학으로 어우러질 때 발생하는 공간의 힘은 가히 압도적이다.

이 글에서는 단순히 예쁜 집을 구경하는 것을 넘어, 왜 우리가 이토록 복잡하고도 유기적인 공간에 매료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깊이 있게 파헤쳐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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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해보면

  • 카오스의 집: 100년 된 감나무를 중심으로 미로 같은 동선과 유기적 연결이 돋보이는 현대판 소세원
  • 섬세한 디테일: 기둥 없는 코너 창, 1.5평의 명상실, 어머니를 위한 조욕 공간 등 거주자 맞춤형 설계
  • 빵집 결합 주거: '겉바속촉' 컨셉으로 일터와 삶을 연결하고 그물 침대와 관찰 구멍으로 재미를 더한 건축
  • 공간의 철학: 단순한 '방'의 나열이 아닌, 관계와 시선이 교차하며 삶의 풍경을 만드는 건축의 본질

시간을 품은 건축, 100년의 감나무와 카오스의 질서

100년 된 감나무가 설계의 시작점이 된 이유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대개는 건폐율이나 용적률 같은 차가운 수치를 떠올리겠지만, 카오스의 집은 100년이라는 세월을 버틴 감나무 한 그루에서 모든 논의를 시작했다. 노은주 건축가는 이 고목을 베어내지 않고 오히려 집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집이 그 나무를 경건하게 감싸 안는 형국이다.

이것은 단순히 자연 보호라는 도덕적 관점과는 결이 다르다. 그 땅이 가진 역사와 기억을 존중하는 태도다. 100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킨 생명력을 무시한 채 들어선 세련된 콘크리트 덩어리가 과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무를 중심으로 마당이 형성되고, 그 마당을 향해 창이 열리며,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감나무의 모습을 집안 어디에서나 마주할 수 있게 한 설계는 시간과 공간의 조화를 보여주는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설계 방식은 거주자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 앞집의 벽면이 아니라, 백 년의 시간을 견딘 나무의 가지라는 점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건축은 단순히 벽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그 땅에 원래 있던 것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결정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 감나무는 묵묵히 웅변하고 있었다.

'프라자나'에서 '카오스'로, 지혜가 담긴 미로

처음 이 집의 이름은 '프라자나(Prajna)의 집' 혹은 '지혜의 집'이었다고 한다. 불교적 함의가 담긴 깊이 있는 이름이었으나, 완성된 공간이 보여주는 복잡하고 흥미진진한 역동성 때문에 '카오스의 집'이라는 별칭이 더 사랑받게 되었다. 여기서의 카오스는 무질서한 혼란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즐거움이 가득한 '질서 있는 복잡함'을 의미한다.

전통 건축의 백미인 전라남도 담양의 소세원을 떠올려보자.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안마당에 들어와 있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동선 속에서 시시각각 풍경이 변한다. 임형남 소장은 바로 이런 전통적 공간 경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모호하고, 옥상과 테라스, 계단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구조는 거주자로 하여금 집 안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게 만든다.

아파트처럼 거실을 중심으로 방들이 박혀 있는 평면적인 구조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공간감이다.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며 마주하는 풍경들은 거주자의 삶을 단조로운 반복에서 해방시킨다. "공간이 복잡하고 재미있어 카오스라고 불렀다"는 건축가의 말은, 집이 단순히 잠을 자는 기능적 장소를 넘어 삶의 유희가 펼쳐지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거주자의 삶을 읽어내는 정교한 디테일의 힘

코너 창문에 담긴 시선과 배려의 기술

카오스의 집에서 가장 시각적으로 충격적인 대목은 모서리 기둥 없이 맞닿은 코너 창이다. 보통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모서리에는 두꺼운 기둥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이 집은 창틀만으로 각을 살려 시야를 완전히 개방했다. 건축적으로는 매우 까다로운 공법이겠으나, 그 결과로 얻어진 개방감은 집 전체의 인상을 바꾼다.

이 코너 창을 통해 집 안의 동선이 훤히 내다보이는데, 이는 단순한 디자인적 장치가 아니다. 노은주 건축가는 이를 두고 "명상실에 남편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용도"라며 농담 섞인 설명을 덧붙였지만, 사실 이는 가족 구성원 간의 느슨한 연결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시각적으로 소통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장치인 셈이다.

창틀을 아예 없애는 극단적인 시도 대신, 거주자가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얇은 프레임을 남겨둔 선택 또한 돋보인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창틀을 끼우기도 한다"는 설명에서 건축가가 거주자의 심리 상태까지 얼마나 세밀하게 관찰하는지 알 수 있다. 건축은 차가운 공학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보듬는 인문학적 작업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지점이다.

어머니를 위한 1.5평의 사치, 조욕 공간

이 집의 설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조욕(足浴) 공간이다. 거창한 스파 시설이 아니다. 욕실 옆에 작게 마련된, 발을 담그고 쉴 수 있는 소박한 자리다. 하지만 이 공간은 어머니의 오랜 소망이 담긴 곳이었다. 창밖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풍경을 바라보며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쉬는 시간, 그것은 바쁜 현대인에게 허락된 가장 밀도 높은 휴식이다.

또한, 단 1.5평에 불과한 조그마한 명상실 역시 인상적이다. 거대한 거실보다 때로는 몸을 쏙 감싸는 듯한 작은 방 하나가 더 큰 위안을 준다. 넓은 면적이 곧 삶의 질로 직결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만의 사유에 집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럭셔리가 아닐까 싶다.

건축주는 이 조그만 방에서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며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한다. 밖의 산책로를 내다볼 수 있는 큰 창이 있어 좁다는 느낌보다는 아늑하다는 평안이 앞선다.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그 공간이 거주자에게 주는 의미에 집중한 설계, 이것이 바로 좋은 건축의 조건이다.

📊 숫자로 보면

카 오스의 집에는 수령 100년으로 추정되는 감나무가 집의 중심을 잡고 있다. 물리적 면적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약 1.5평 내외의 명상실이다.

숫자로만 보면 매우 좁은 공간이지만, 이곳은 거주자가 가장 큰 심리적 만족을 얻는 핵심 구역이다. 또한, 모든 가구를 기성품이 아닌 제작 가구로 채워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이는 평당 단가라는 경제적 논리보다 '삶의 맞춤 제작'이라는 가치를 숫자로 증명한 결과다.

자녀의 독립성과 가족의 유대 사이에서

색채와 가구로 표현된 아이들의 개성

자녀들의 방 설계에서도 건축가의 세심함이 엿보인다. 딸의 방은 하얀색을 베이스로 하되 한쪽 벽면을 과감하게 핑크색으로 포인트를 주어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반면 아들 방은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게 구성하여 각자의 성향과 취향을 존중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공간에 들어가는 가구가 전부 제작 가구라는 점이다.

기성 가구를 배치하다 보면 생기는 불필요한 틈새를 없애고, 공간의 형태에 딱 맞게 짜넣은 가구들은 시각적 정갈함은 물론 실용성까지 잡았다. 특히 자녀 방과 공용 화장실, 그리고 계단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아이들이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가족의 공용 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배치되었다.

"딸 방은 하얗게 꾸몄고, 아들 방은 심플하게 구성했다"는 담백한 설명 뒤에는, 아이들이 자라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배려한 건축가의 의도가 숨어 있다. 집은 아이들에게 단순한 수용 시설이 아니라, 꿈을 키우고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의 배경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방의 재구성과 테라스로의 확장

일반적인 아파트 평면에서 안방은 대개 침대 하나 놓고 끝나는 공간이다. 하지만 카오스의 집 안방은 거주자의 생활 패턴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침대 옆으로 드레스룸을 배치하고, 테라스와 옥상으로 즉시 연결되는 구조를 택했다. 방 안에서 문만 열면 외부 공기와 접할 수 있고, 옥상으로 바로 올라가 확 트인 시야를 즐길 수 있는 설계다.

특히 안방의 드레스룸 구조는 건축주 부인의 취향을 십분 반영한 결과물이다. 좁은 복도형 드레스룸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방으로서 기능하며 정돈된 삶을 돕는다. 이러한 외부 공간과의 직결성은 집 안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거주자가 능동적으로 공간을 활용하게 만든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강렬한 현관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옥상 끝까지 이어지는 이 일련의 시퀀스는 거주자에게 "나는 이곳에서 자유롭다"는 감각을 선사한다. 설계의 모든 요소가 거주자의 취향이라는 퍼즐 조각으로 짜맞춰져 하나의 완벽한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셈이다.

'겉바속촉' 건축, 빵집과 주거의 유쾌한 동거

오래된 동네로 돌아온 건축주의 로망

노은주 건축가가 소개한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바로 빵집과 주거가 결합된 건축물이다. 건축주는 자신이 나고 자란 오래된 동네로 돌아와 친구와 함께 빵집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고향으로의 회귀와 생업이 결합된 이 프로젝트는 건축적으로도 매우 창의적인 해법을 요구했다.

겉에서 보면 딱딱하고 견고한 건물이지만, 내부는 반전 매력이 넘친다. 노 건축가는 이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바게트 같은 집"이라고 표현했다. 외관은 도시의 풍경에 순응하며 단단하게 서 있지만, 내부는 거주자의 개성이 팡팡 터지는 말랑말랑한 공간으로 채워진 것이다.

이것은 현대인의 이중적인 욕망을 잘 대변한다. 외부로부터는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지만, 내부에서는 누구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살고 싶은 욕구 말이다. 건축주가 "자기 마음대로 설계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은 건축가에게는 무한한 자유이자 동시에 가장 어려운 숙제였겠지만, 그 결과물은 더없이 유쾌했다.

그물 침대와 관찰 구멍이 만든 공간의 유머

이 집의 백미는 단연 2층 주거 공간에 설치된 그물 침대와 바닥에 뚫린 구멍이다. 이 구멍을 통해 아래층 빵집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 "빵집이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용도"라는 건축가의 설명은 위트가 넘치지만, 그 이면에는 일터와 삶터의 유기적 결합이라는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그물 침대에 누워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고소한 빵 굽는 냄새를 맡고, 손님들이 오가는 소리를 듣는 경험은 그 자체로 삶의 활력이 된다. 주거와 상업 공간을 무 자르듯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청각적 소통의 통로를 열어둠으로써 집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런 설계는 집을 단순히 '쉬는 곳'으로만 한정 짓지 않는다. 삶의 현장인 일터와 휴식처인 집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기분 좋게 간섭하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1인 가구나 소규모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시대에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새로운 주거 모델이 아닐까. 건축의 유머가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이 '겉바속촉' 집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투기의 대상이 된 집, 잃어버린 '거주'의 본질

과거 윤석열 씨 재임 시절, 우리 사회는 집을 '사는(Living) 곳'이 아닌 '사는(Buying) 것'으로만 취급하며 부동산 광풍에 휩싸였다. 닭장 같은 아파트가 투기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집이 주는 정서적 위안과 건축적 미학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획일화된 평면에 삶을 끼워 맞춰온 부끄러운 기록들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주거 정책의 패러다임은 다시 인간으로 향하고 있다. 카오스의 집처럼 거주자의 삶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축적 시도들이 주목받는 현상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제는 자산 가치를 넘어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다.

집, 나를 투영하는 가장 솔직한 거울

설계 철학이 삶에 미치는 영향

노은주, 임형남 두 건축가의 작업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당신의 공간에서 주인인가?" 하는 물음이다. 대다수의 현대인은 건설사가 정해준 규격화된 아파트 평면에 자신을 맞추며 산다. 안방은 이래야 하고, 거실은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정작 자신의 진짜 취향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카오스의 집처럼 나만의 명상실을 만들고, 100년 된 나무와 공존하며, 아이의 방 한쪽을 과감한 색으로 채우는 용기는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건축은 단순히 비바람을 막아주는 물리적 장벽이 아니라, 거주자의 가치관과 철학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정신적 해방구가 되어야 한다.

건축가가 제안하는 복잡한 동선과 미로 같은 연결은 거주자로 하여금 집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그 움직임 속에서 새로운 생각과 마주하게 한다. "지혜의 집"이라는 원래의 의도처럼, 깊은 사유가 가능한 공간은 결국 거주자를 더 현명하고 풍요로운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건축가와 거주자의 위대한 협업

결국 좋은 집은 훌륭한 건축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건축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용기 있는 거주자가 있을 때 비로소 탄생한다. 빵집 위에 그물 침대를 깔아달라는 엉뚱한 상상이 실제 공간으로 구현될 때, 그 집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작품이 된다.

우리는 이제 '몇 평형 아파트에 사느냐'는 질문 대신 '당신의 집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느냐'는 질문을 주고받아야 한다. 카오스의 집이 보여준 그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질서가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스며들기를 바란다. 집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감나무를 심고, 나만의 명상실을 꿈꾸는 일. 비록 그것이 당장 실현되지 않더라도 그런 공간적 상상력을 멈추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는 것, 그것은 곧 내 삶의 무대를 직접 연출하는 법을 배우는 일과 같다.

💭 개인적인 생각

영상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100년 된 감나무를 대하는 건축가의 태도였다. 사실 효율성만 따진다면 나무를 베어내고 건물을 반듯하게 올리는 편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는 나무와 공존하기 위해 기꺼이 설계의 난이도를 높였다. 이것이야말로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공존과 연대의 가치가 건축적으로 발현된 사례가 아닐까 싶다.

또한 '겉바속촉'이라는 비유를 보며 내가 사는 공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나의 영혼을 다독여줄 '촉촉한 내부'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닐까.

그물 침대에 누워 아래층 빵집을 내려다보는 그 유쾌한 시선이 부러운 밤이다. 건축은 결국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성실한 대답임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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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그 사람을 닮는다. 100년의 나무를 품은 카오스의 집도, 빵집의 온기와 맞닿은 그물 침대 위 집도, 결국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당신의 공간은 지금 당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가. 우리는 어쩌면 집을 짓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지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삶을 담아낼 가장 솔직한 공간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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