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이재명에게 SNS는 단순한 소통 창구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중앙 정치의 변방에서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르는 동안 그를 지탱했던 가장 강력한 병기이자, 위기 때마다 스스로를 증명해 온 생존의 기록 그 자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SNS 활동을 부쩍 늘리며 여권 내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그는 오히려 "어려울수록 더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며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과연 그가 놓지 못하는 이 가상의 광장은 대한민국 정치에 어떤 명암을 던지고 있는 것일까.

SNS라는 생존의 문법, 어떻게 정착되었나
성남시의 기억과 SNS 행정의 원형
2011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전국 최초로 SNS 전담 조직을 꾸렸을 때만 해도 이는 낯선 실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홍보를 넘어선 '정치 행정의 도구화'였다. 2012년 성남시의 기록을 보면, 공무원 승진 평가에 SNS 활동 실적을 반영하는 파격적인 제도를 시행했다. 5급과 6급 승진 후보자들의 팔로워 수와 트윗 수, 심지어 게시 내용까지 꼼꼼히 체크했다. SNS 활동이 저조한 후보자는 실제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보도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러한 행보는 이재명에게 SNS가 어떤 존재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이미 2017년 대선 과정에서 성남에서 검증된 'SNS 광속 행정'을 중앙정부 차원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그에게 SNS는 언론이라는 기존 필터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직접 꽂아 넣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였다. 이 시기에 다져진 방식은 정치인 이재명의 유전자에 깊숙이 각인되었다. 그에게 SNS는 '기억'이자 '방식'이다. 언론의 공격을 받을 때 직접 반박 글을 올리고, 그 글을 지지층이 퍼 나르며 다시 기사화되는 순환 구조. 이 성공 공식은 그를 국회의원도 아닌 기초자치단체장에서 대권 후보로, 그리고 끝내 대통령으로 이끌었다. 사람은 실패했던 방법을 매뉴얼에 넣지 않는다. 오직 살아남았던 방법만을 반복한다. 이재명에게 SNS는 바로 그 '살아남았던 방법'의 상징이다.알고리즘 필터의 역설과 목소리의 착시
대통령은 언론이라는 거대 필터를 제거했다고 믿을지 모르나,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는 것은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필터다. SNS 소통의 가장 큰 함정은 '목소리의 크기'와 '사람의 숫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100명의 뜨거운 지지자가 쏟아내는 댓글과 리트윗은 화면상으로는 수만 명의 여론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1만 명의 국민이 조용히 판단하고 있는 민심과는 그 무게가 다르다. 이 착시는 정치인을 '고립된 성'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한다. SNS라는 폐쇄적 생태계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열광적인 박수를 받지만, 광장 밖의 실제 민심은 다른 방향을 향할 수 있다. 이는 정치인이 "국민이 내 말을 이해하고 있구나"라는 위험한 확신에 빠지게 만든다. 실제로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국민 전체가 아니라, 자신의 메시지에 가장 빨리 반응하는 소수 정예일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책 홍보에도 심각한 왜곡을 가져온다. 언론의 비판을 '왜곡된 공격'으로 규정하고 SNS로 직접 반박하는 행위가 반복되면, 정치는 점차 토론의 영역에서 신앙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자리에 자기들만의 언어와 논리가 채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본래의 취지를 스스로 갉아먹는 역설을 낳는다.과거의 유령, 손가락혁명군이 소환하는 위기
팬덤의 탄생과 혐오의 변질
2016년, 이재명을 지지하던 '손가락혁명군'은 중앙 조직이 없던 후보에게 엄청난 기동력을 제공했다. 2017년 광주 출정식에 1만 5,000명의 지지자를 결집시킨 것은 오직 SNS를 통한 직접 소통의 힘이었다. 당시 이 현상은 굉장히 잘 작동했다. SNS가 사람을 움직였고, 그 사람이 다시 정치적 힘이 되었던 긍정적인 경험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팬덤이 강해질수록 대상은 공격을 넘어 내부 검열로 향했다. "이재명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우리 편인가"라는 배타적 질문이 횡행했다. 노무현을 조롱하고 문재인의 가족을 공격하는 혐오의 언어들이 온라인을 뒤덮었다. 이재명 대통령 본인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가 과거에 직접 손가락혁을 해산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스스로 "폭언, 비아냥, 멸칭, 혐오가 우군을 줄이고 적을 늘린다면" 해산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그가 누구보다 팬덤 정치의 파괴력을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2026년 현재, 대통령이 직접 SNS를 이용해 특정 게시물을 공유하고 논쟁에 뛰어들면서, 과거 손가락혁의 그림자가 '뉴 손가락혁'이라는 이름으로 재현되고 있다. 경고문을 직접 썼던 사람이 이제는 그 경고문이 필요한 상황의 한복판에 서 있는 셈이다.공유 버튼 하나에 담긴 정치적 신호
대통령이 SNS에서 누르는 '공유' 버튼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다. 지지층에게는 그것이 '대통령의 뜻'이라는 강력한 신호로 해석된다. 지난 9월 19일, 대통령이 특정인의 글을 인용했다가 논란이 되자 "작성자의 모든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랴부랴 해명한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통령의 게시물 하나가 지지층 사이에서 공격의 좌표가 되는 구조 속에서는, 인용 자체가 곧 지시가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토론보다 신앙에 가까워진다. 대통령이 공유하면 맥락을 따지기 전에 무조건적인 옹호가 쏟아지고, 반대 목소리는 멸칭으로 짓밟힌다. 이런 환경에서 참모들이 대통령의 아이디와 비번을 바꾸며 직접 게시를 막으려 했던 과거의 노력들은 지금의 대통령실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정치는 성남시장 시절처럼 기성 정치와 싸우는 단계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통합하고 설득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결국 SNS의 즉각적인 박수와 실제 국민의 여론 사이의 괴리를 얼마나 빨리 깨닫느냐가 국정 운영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성남시 시절의 성공 방정식은 좁은 지역구에서는 통했을지 몰라도, 거대하고 복잡한 국가 전체를 상대할 때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역사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의 편이지만, 동시에 성공의 기억에 사로잡힌 자에게는 가장 냉혹한 시험대를 제공한다.현실의 처방전, 다가오는 선거의 무게
SNS 밖의 거대한 광장이 보내는 신호
한국일보와 서울신문 등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최근 대통령의 SNS 게시 빈도가 6월 78회에서 9월 31회 수준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중앙지방협력회의 생중계를 줄이는 등 소통 방식에도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다. 이는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SNS 소통의 부작용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방향성 자체를 바꾸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국민들은 이제 SNS의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실제 국정 운영의 성과를 보고 싶어 한다. NBS(전국지표조사) 결과를 보면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으며, 개헌 시 대선 불출마 선언을 요구하는 응답이 63%에 달한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SNS에서 누구와 싸우는지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어떤 실질적인 결단을 내리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치인의 SNS는 때로는 독이 든 성배와 같다. 박수를 받는 순간에는 달콤하지만, 그 박수가 실제 민심과 멀어지는 순간 정치인을 고립시킨다. 대통령은 자신의 성공 비결이 SNS였다고 믿지만, 이제는 그 SNS가 발목을 잡는 '성공의 저주'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의 손가락혁명을 해산했던 그 결단력이, 지금의 '뉴 손가락혁'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필요하다.다음 선거가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
결국 가장 정직한 처방전은 전국 단위 선거다. SNS 안에서 100명이 외치는 소리가 과연 대한민국 국민의 실제 목소리인지, 아니면 그저 메아리 없는 독백인지가 투표장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선거는 누가 더 시끄러운지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국민을 설득했는지를 숫자로 증명하는 장이다. 만약 SNS의 뜨거운 확신과 선거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면, 그것은 대통령과 민주당에게 가장 뼈아픈 경고가 될 것이다. 통합의 대통령, 개혁의 대통령을 지향한다면 SNS를 통해 지지층의 언어를 빌려 쓰는 행위는 이제 멈춰야 한다. 멸칭과 비아냥으로 공감을 얻으려 하는 정치는 결국 자신의 저변을 갉아먹는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SNS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통령이 조용한 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편향된 정보가 아니라 실제 국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를 바란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SNS의 공유 버튼이 아니라, SNS 밖의 광장에서 들리는 차가운 현실의 목소리다. 성공했던 기억에 매몰되지 않고, 변화한 세상에 맞는 새로운 소통의 방식을 찾아내는 것. 그것만이 대통령이 정치적 생존을 넘어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SNS라는 좁은 틀을 깨고 광장으로 나올 때, 비로소 통합의 정치는 시작될 것이다.📚 이 글이랑 같이 보면 좋은 글
과거의 성공 공식이 오늘날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이제 대통령은 스스로 만든 SNS라는 성벽을 넘어, 더 넓은 광장의 국민들과 대면해야 할 때가 아닐까.
💡 요약해보면
- 이재명 대통령에게 SNS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국정 운영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생존과 메시지 확산을 위한 핵심 수단이었다.
- 하지만 SNS 소통은 지지층의 목소리를 전체 민심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알고리즘의 착시'와 '팬덤의 신앙화'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 과거 배타적 팬덤의 폐해를 겪고 직접 해산했던 '손가락혁명군'의 역사가 현재 '뉴 손가락혁'의 형태로 재현되는 것은 국정 운영에 큰 위험 요인이다.
- 선거는 SNS 안의 여론이 아닌 실제 국민의 설득력을 확인하는 최종 처방전이 될 것이며, 대통령은 지지층 중심의 폐쇄적 소통에서 벗어나 통합의 가치를 실천해야 한다.
🔥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하나)
대통령의 SNS 공유가 단순한 표현을 넘어 '공격 지시'로 읽히는 현실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확증편향의 늪에서 벗어나, 대통령은 자신의 글이 가진 무게를 국민 통합의 도구로 사용할 책임을 져야 한다.
📊 숫자로 보면
6월 78회에 달하던 대통령의 SNS 게시글이 9월 31회 수준으로 급감한 것은 소통 방식에 대한 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NBS 조사에서 국정 긍정 평가 50%를 유지하면서도 개헌 시 연임 포기 요구가 63%에 달하는 수치는, 국민들이 '소통의 양'보다 '소통의 내용과 태도'를 훨씬 더 엄중하게 평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 개인적인 생각
정치인 이재명이 보여준 SNS 활용 능력은 분명 현대 정치에서 독보적이었다. 기성 언론의 견고한 벽을 뚫고 지지층을 결집했던 그 역동성은, 오늘날 SNS 정치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에게 교과서와 같았다.
하지만 정치는 지지층의 박수를 받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때로는 가장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이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다수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대통령의 숙명이다.
2026년의 대통령은 더 이상 성남시의 소년 시장이 아니다. 그가 SNS에서 손가락혁명을 해산하며 통합을 외쳤던 그 결단이, 지금 이 순간 더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사람이 가장 성공했던 방식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면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대통령의 손가락 끝에서 나가는 글 한 줄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칼날이 될지, 아니면 갈라진 민심을 잇는 실이 될지는 오직 그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대통령은 SNS라는 작은 화면 너머에 있는 수많은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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