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온라인 공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치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그 끝을 보게 된다. 당장 선거가 끝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같은 진영 안에서 차마 입에 담기 조차 흉측한 멸칭과 저주가 난무하고 있다. 추미애 사태 청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내부 총질은 단순한 비판의 선을 한참 넘어섰다. 그 중심에는 과연 이들이 민주당 지지자가 맞는지 의심케 하는 극단적인 혐오 정서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정치를 소비하는 이들이 이제는 양지 밖으로 기어나와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동료를 물어뜯는 현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
추미애 지사를 향한 도를 넘은 공격과 뉴일베의 실체
사상 최초 도지사 사태 청원 3만 명 육박의 허울
최근 경기도정의 수장을 향해 쏟아지는 공세는 그 궤도가 완전히 상해 있다. '사상 최초 도지사 사태 청원 3만 명 육박'이라는 타이틀이 내부 조직도 아닌 곳에서 신나게 공유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지자체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선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퇴 청원을 올리고 이를 동조하는 행태는 상식의 선을 한참 이탈한 것이다. 텔레그램 채널이나 카카오톡 밴드 등지에서 "내가 뽑았지만 후회된다"는 식의 프레임을 씌우며 내부 분란을 조장하는 세력의 정체가 과연 누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단순히 정책적인 실책을 따지는 게 아니다. "예산서를 볼 줄 모른다"는 식의 억지 비난부터 시작해 어떻게든 흠집을 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과거 경선 과정이나 선거판에서 패배한 세력의 잔재들이 여전히 승복하지 못하고 이토록 저열한 방식으로 발목을 잡는 꼴은 추악하기 그지없다. 도정을 이끌어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 것이 곧 개혁의 완성이라고 착각하는 것인지, 그 저열한 심보가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
더 기괴한 것은 이러한 내부 총질을 주도하는 세력과 이를 방관하는 당내 분위기의 괴리다. 민주당 비대위 갤러리를 비롯한 일부 커뮤니티는 이미 일베나 펨코의 어법을 그대로 이식해 온 지 오래다. 이들이 생산해내는 배설물 같은 글들이 당원들의 정당한 목소리인 양 둔갑하여 퍼져나가는 꼴을 보면,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주의의 품격이 어디까지 추락했는지 한숨만 깊어진다.
카카오톡 단톡방과 극우 세력의 기괴한 동거
이재명이나 김민석을 응원한다는 일부 단톡방의 실태는 충격 그 자체다. 이들 방에서는 추미애 지사를 향해 '추풍낙엽', '추만구', '추하단' 같은 조롱을 쏟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추하게 늙는 관상", '추수피' 같은 입에 담기 힘든 여성 혐오적 표현을 여과 없이 공유하고 있다. 비판을 넘어선 명백한 인신공격이자 저주에 가까운 언어들이 정당의 지지자라는 이름 아래 버젓이 유통되는 것이다.
심지어 과거 김용남 후보를 응원하던 '평택에서 용남' 같은 단톡방에서나 나올 법한 '대한민국 대통령 김용남' 식의 합성 사진이나 조롱 짤들이 민주당 내부 톡방에서 버젓이 유통되는 현상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만약 이재명 위원장을 응원하는 방에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 같은 짤이 돌아다녔다면 당장 커뮤니티가 뒤집어지고 극우의 소행이라며 난리가 났을 일이다. 하지만 추미애 지사를 향한 이런 악의적인 조롱에는 "흐뭇하다", "든든하다"며 맞장구를 치는 이중성이 지금의 민주당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의견 다툼이 아니라 사상과 성향을 위장한 채 침투한 극우 세력의 이간질과,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내부의 저열한 패거리 문화가 합작하여 만들어낸 괴물이다. 6.3 청년연대 방 같은 곳에서 경기도청원 링크를 조직적으로 퍼나르며 사퇴를 부추기는 정황이 포착되는 것은 이들이 누구를 위해 움직이는지 명백히 보여준다. 적과 손을 잡고 내부를 향해 총을 겨누는 꼴이 다를 바 없다 👀.
💡 요약해보면
- 선거가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경선 승리 지자체장을 향한 사퇴 청원과 내부 총질이 극에 달하고 있다.
- 일베나 펨코에서 쓰이던 여성 혐오적 멸칭과 저주가 민주당 내부 단톡방과 커뮤니티에서 여과 없이 공유되고 있다.
- 극우 세력의 침투와 이에 동조하는 내부 세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민주주의의 공론장을 오염시키고 있다.
일베의 언어가 민주당으로 스며드는 순간
'엠이추'와 '흙일화'라는 이름의 저주
디시인사이드나 각종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일탈은 이제 수인르 넘었다. 스킵썸머 같은 이가 남긴 글을 보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이런 말하면 안되는 지 알지만 난 저란 할마씨들 그냥 일찍 흙일화되는 걸 (매우 간절히!!) 기도하는 편"이라는 악독한 저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추천을 받고 베스트 글이 된다. 여기서 '흙일화'란 결국 흙에 파묻혀 죽어버리라는 의미의 패륜적 언사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정치적 견해의 차이인가.
이에 달린 댓글들의 면면은 더욱 가관이다. "목기훈 애미추같은 년들이 원로랍시고 나잇값 못하고 대통령 흔드는거 보면 평균수명 늘어나라는 마냥 좋은일이 아니라는걸 느낌"이라며 타인의 죽음을 비는 글들이 난무한다. '엠이추'라는 표현 역시 일베나 펨코 등 극우 사이트에서 과거 해찬이나 추미애 같은 인물들을 조롱하기 위해 쓰던 악질적인 키워드다. 이 혐오의 언어가 어째서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이들의 입과 손에서 똑같이 튀어나오고 있는 것인가.
이런 현상은 단순히 몇몇 네티즌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다. 정치적 효능감이 왜곡되고,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마저 내팽개친 결과물이다. 혐오를 무기로 삼는 자들은 결국 그 혐오에 의해 스스로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당내 원로들이나 소신 있는 정치인들을 향해 표독스러운 할망구라 부르며 당을 봉숭아학당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기괴한 프레임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러한 악성 댓글과 혐오 표현의 실태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오히려 고소를 남발하며 역공을 가하는 가해자들의 뻔뻔함이다. 트위터 등지에서 "세월호팔이 개새끼", "문좆털래루 털보빨", "개같은년 이쩜이 쓰면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하루를 10일같이 쓰면서 불철주야 두문불출하는 거는 안보인단 말이나 이 개새끼발연아" 같은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뱉어내던 이들이 정작 자신들의 언행이 방송이나 공론장에 노출되면 피해자 코스프레를 시전한다.
자신들이 쏟아낸 원색적인 욕설과 인신공격은 감추어둔 채, 이를 공론화하는 방송인이나 유튜버들을 향해 "내가 지금 너무 힘들어, 고소할 거야"라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다. 이름도, 연락처도,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익명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온갖 저주를 퍼붓던 이들이, 정작 그 실체가 도마 위에 오르면 법 뒤로 숨는 모양새가 참으로 비겁하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완벽하게 뒤바뀐 이 기괴한 풍경이 바로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진흙탕 같은 공론장의 현주소다.
이러한 행태를 방치하고 오히려 이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당내 통합이나 원팀이라는 단어는 가증스러운 거짓말에 불과하다. 멸칭을 서슴지 않고 부여하며 "오히려 좋아"를 외치는 이들은 결국 민주당의 뿌리를 갉아먹는 좀비들에 불과하다. 이들이 지배하는 공간에는 합리적 토론도, 미래를 위한 비전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끌어내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파괴적 정동만이 가득할 뿐이다.
🔥 혐오를 방치하는 자들이 키운 괴물들
익명의 그늘에 숨어 사람의 목숨을 저주하고 입에 담지 못할 성적 멸칭을 일삼는 이들은 지지자가 아니라 공론장의 암세포다. 이들을 방치하고 동조하는 정치는 언젠가 그 칼날에 스스로가 베이게 될 것이다.
(혐오와 저주를 자양분 삼는 세력과는 어떤 타협이나 통합도 불가능하다.)
디지털 플랫폼과 조회수 알고리즘이 만든 파편화된 공론장
테크노소셜 환경과 에코 챔버의 함정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정치적 극단화는 단순히 정치인들의 자질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 밑바탕에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완전히 재구축하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 구조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카카오,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제공하는 소통 도구들은 이제 단순한 앱 서비스를 넘어 인간 사회의 기본적 인프라가 되었다. 문제는 이 인프라가 작동하는 방식이 철저하게 상업적 논리, 즉 '조회수와 트래픽'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미디어 이론가 티지아나 테라노바가 지적했듯, 현대 사회는 '테크노소셜' 국면으로 진입했다. 우리의 사회적 관계와 대화의 방식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의해 재귀적으로 코드화되고 변형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이용자가 보고 싶어 하는 편향된 정보만을 끊임없이 추천하고 유통하며, 이 과정에서 비판적 사유와 숙의의 공간은 철저하게 후퇴한다. 내가 속한 집단의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만이 알고리즘을 타고 확산되는 에코 챔버 효과가 공론장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이러한 기술적 환경 속에서 정치적 팬덤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동력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적대감을 품는 파편화된 정치 부족들의 전쟁터로 변질되었다. 상대 진영을 향한 무차별적인 공격은 플랫폼 상에서 가장 높은 보상(조회수와 구독자)을 가져다주고, 이는 다시 더 강력한 막말과 혐오를 부르는 악순환을 낳는다.
공론장의 파괴는 우연이 아니라 설계된 알고리즘의 필연적 결과물인 셈이다 📉.
20.3%의 혐오, 선거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독버섯
실제로 국내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들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은 수치로 명백하게 증명된다. 선거 관련 온라인 담론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 댓글 중 무려 20.3%가 혐오 표현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치적 견해 차이에 기반한 성향 혐오와 원색적인 욕설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러한 혐오 표현이 선거 기간에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오히려 증가하여 특정 시기에는 최고치를 경신한다는 점이다.
이는 선거가 정치적 갈등의 해소와 사회적 통합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상처를 깊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커뮤니티의 성격에 따라 혐오의 수위와 빈도는 다르지만, 익명성이 보장되고 플랫폼의 제재가 느슨한 곳일수록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야만적인 공격성이 여과 없이 분출된다.
디시인사이드나 일부 폐쇄적인 단톡방 등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이러한 거대한 사회적 병리의 축소판에 불과하다.
정치가 플랫폼의 상업적 알고리즘과 결합할 때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 우리는 매일 목격하고 있다. 상대방을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태도는 민주주의의 토대 자체를 무너뜨린다. 혐오를 먹고 자라는 정치 유튜버들과 그들의 자극적인 콘텐츠를 추종하며 현실 정치의 룰마저 왜곡하는 세력들을 방치한다면,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합리적 토론이 살아 숨쉬는 공론장이 아니라 각자도생의 정글이 될 뿐이다.
📊 데이터로 읽는 공론장의 타락
온라인 선거 담론 댓글의 20.3%가 혐오 표현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소통 인프라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음을 경고한다. 알고리즘이 부추기는 확증편향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이성과 상식마저 집어삼키고 있다.
광장의 상징적 진화와 응원봉 민주주의의 위기
화염병에서 촛불을 거쳐 응원봉으로
한국의 디지털 민주주의는 세계가 주목하는 독특한 발전 궤적을 그려왔다. 그 역사는 시민들이 광장에서 발휘해 온 집단적 효능감과 상징의 진화 과정 그 자체였다.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의 폭압에 맞서던 저항의 시대에는 '화염병'이 투쟁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국가 폭력에 맞서는 절박하고도 거친 생존의 언어였다.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했던 그 시기를 지나, 2002년 한일 월드컵 거리 응원을 거치며 한국 시민사회는 평화로운 공간 속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법을 학습했다.
그 효능감의 축적은 2008년 광우병 파동의 촛불과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거대한 '촛불 혁명'으로 이어졌다. 화염병의 단일한 저항은 평화롭고 엄숙한 연대의 불빛으로 진화했고, 이는 어떠한 물리적 강제력보다 강력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동력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이르러 이러한 참여의 상징은 아이돌 팬덤 문화에서 차용된 다채로운 색상의 '응원봉'으로까지 확장되었다. 획일적인 구호나 하나의 이념에 갇히지 않고, 각자의 문화적 취향과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공통의 목적을 위해 느슨하지만 강력하게 연대하는 현대적 민주주의의 정수였다.
화염병의 분노, 촛불의 엄숙함, 그리고 응원봉의 포용력으로 이어지는 이 시각적 진화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양성을 존중하는 성숙한 생태계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선진적 참여 양식이 정착되는 바로 그 시공간에서, 정치 영역은 오히려 가장 퇴행적이고 야만적인 혐오의 언어로 오염되고 있다. 광장의 빛이 밝아질수록 그 그늘에 숨은 어둠 또한 짙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
뉴일베와 사이버 테란의 청산이라는 숙제
이러한 퇴행을 바로잡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바로 '뉴일베'와 '사이버 테란'의 청산이다. 변이사 정변을 비롯한 뜻있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화목 오전 라이브와 일요일 방송 등을 통해 이 거대한 암세포와 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익명의 그늘에 숨어 비겁하게 음해하던 이들이 이제는 뻔뻔하게 양지로 기어나와 오히려 바른 말을 하는 이들을 고소하고 압박하는 기괴한 현실을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 거대한 문화적 침투와 양극화의 구조를 단기간에 한 방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극우 세력의 논리가 민주당 내부의 일부 불만 세력과 결탁하여 깊숙이 뿌리를 내린 이상, 이를 도려내는 데는 엄청난 자원과 시간, 그리고 끈질긴 연대가 필요하다.
리박스쿨을 비롯한 극우 세력의 실체를 폭로하고, 이언주 의원을 비롯해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이들을 잊지 않으며, 당내에 스며든 혐오의 싹을 잘라내는 작업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과제다.
지금 당장 눈앞의 편의를 위해 '문조털래유', '조추털래유' 같은 멸칭을 방치하고 오히려 이를 즐기는 정치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1년 뒤 시민들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김어준이나 최욱 같은 방송인들이 유쾌하게 받아준다 하더라도, 분노하고 짜게 식은 당원들과 깨어 있는 시민들의 마음은 결코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1년만 기다리면, 그간 뻔뻔하게 얼굴을 내밀며 유쾌한 척 하던 이들이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지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 에디터의 단상
정치를 한다는 것은 결국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합의의 과정을 쌓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치는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제로섬 게임의 아수라장이다.
익명의 그늘에서 쏟아내는 저주와 혐오가 당의 이름으로 포장되는 순간, 그 조직은 이미 민주주의의 이름을 쓸 자격을 잃은 것이다. 당장 눈앞의 권력 다툼과 얄팍한 계산에 팔려 혐오를 방치하는 이들에게 남는 것은 결국 고립뿐이다. 1년 뒤, 과연 누가 웃고 누가 울게 될지 차분하게 눈을 뜨고 지켜볼 일이다.
진실은 결국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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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품격을 높이고 상식적인 공론장을 복원하는 길은 요원해 보이지만, 우리가 침묵하지 않는 한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이다. 혐오를 먹고 자라는 가짜 지지자들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제 자리에서 바른 소리를 내는 이들의 연대가 결국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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