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정치를 소비하는 방식이 마치 아이돌 팬덤의 '악개' 문화와 소름 돋게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정책의 옳고 그름은 안중에 없고, 그저 '내 가수가 하는 건 다 옳다'는 식의 논리가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뉴이재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현상은 단순한 지지층의 결집을 넘어, 이미 사고방식의 교정을 요구하는 거대한 세계관이 되어버렸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고 있는 걸까. '이재명이 했기 때문에 옳다'는 무오류의 명제는, 사실 그 권력의 수명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도대체 왜 이런 극단적인 진영 논리가 우리 사회의 상식까지 뒤흔들고 있는 것일까. 지금부터 그 불편한 진실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팬덤이 교리가 되는 순간, 정치는 사라진다
무오류의 신화가 만든 닫힌 성
정치인은 사람이지만, 팬덤에게 그는 신이 된다. '뉴이재명' 세계관의 핵심 원칙은 매우 간단하다. 이재명이 옳아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이 했기 때문에 그것이 곧 정답이라는 논리다. 이런 구조에서는 정책 검증이라는 절차가 아예 설 자리가 없다. 정책이 실패해도 그건 정책의 잘못이 아니라, 상황이 나빴거나 주변의 배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서사가 완성된다. 이런 닫힌 성 안에서는 비판이라는 행위 자체가 '불경'이 된다. 내용이 맞고 틀리고를 따지는 건 이미 중요하지 않다. 그저 비판자의 동기를 의심하고, 그를 불량품으로 낙인찍으면 논의는 깔끔하게 종료된다. "너는 왜 하필 지금 저런 말을 해?"라는 식의 프레임 전환은, 지지자들을 안심시키고 비판자의 입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기억마저 조작하는 팬덤의 연금술
더 무서운 건 기억의 왜곡이다. 평론이 사건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평론 때문에 사건이 발생했다는 식의 인과관계 전도가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팩트조차 현재의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한 재료로 재구성된다. 어제의 실책이 오늘의 전략적 신의 한 수로 둔갑하는 과정은, 지지자들이 스스로 현실을 부정하게 만든다. 결국 이들은 스스로가 만든 세계관이라는 거울 속에 갇힌다. 밖에서 들려오는 비판은 '분열을 조장하는 악의적인 소음'일 뿐이다. 이런 환각 속에서 권력자는 점점 더 고립되고, 가장 강경한 목소리만을 민심으로 오독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해야 할 '자발적 고립'이 아닐까 싶다.💡 요약해보면
- '이재명이 곧 옳음'이라는 무오류설이 정책 판단의 절대 기준이 되었다.
- 비판을 논리로 맞받지 않고, 비판자의 동기를 공격하여 논점을 흐리는 방식이 만연하다.
- 사건의 인과관계를 입맛에 맞게 재구성하여, 지지자들을 현실과 괴리된 세계관에 가둔다.
비판 없는 권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왕좌에 앉은 자가 마주해야 할 공포
유시민 작가나 김어준 같은 '빅 스피커'들이 이 흐름 속에서 보여주는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누군가는 그들을 향해 기회주의자라 손가락질하지만, 사실 이 판 자체가 '친명'과 '반명' 혹은 '친문'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권력 게임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 누가 주인공이든 '무조건적 지지'를 요구하는 구조는 결과적으로 권력을 병들게 한다는 점이다. 정치인은 신이 아니다. 정책을 내놓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그저 잠시 권력을 위임받은 대리인일 뿐이다. 그런데 지지자들이 그에게 '오류의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 순간, 그는 정치를 멈추고 생존을 위한 쇼를 시작하게 된다. 오직 자신을 지켜주는 팬들의 환호만이 현실이 되고, 그 외의 목소리는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순간, 권력의 수명은 급격히 짧아진다.건강한 비판이 사라진 자리의 결말
정말 이재명을 아끼는 지지자라면, 무조건적인 옹호가 아니라 "이번에는 틀렸습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권력자에게 진짜 필요한 건 자신을 맹목적으로 믿어주는 수만 명의 팬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꽂아 넣을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다.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적으로 몰려 쫓겨나고, 맹목적인 추종자들만 남은 진영은 결국 스스로의 모순에 파묻혀 무너진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뉴이재명'의 광풍은 결국 그 권력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우리는 언제쯤 정치인을 나의 자존심을 채워주는 아이돌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서비스 종사자로 대할 수 있게 될까. 💡🔥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하나
가장 큰 문제는 '민심의 왜곡'이다. 특정 팬덤의 목소리만을 현실의 전부로 착각하는 권력은 정책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비판을 적으로 돌리는 순간, 그 권력은 피드백 시스템을 잃어버린 독단적인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
비판 없는 권력은 반드시 현실과 괴리되어 멸망한다.
데이터 뒤에 숨겨진 진짜 민심 읽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다양한 여론조사와 지표들이 매일 쏟아진다. 하지만 그 데이터들이 정말 '민심'을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2024년 현재, 특정 정치인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다. 이는 '상식과 비상식', 혹은 '객관적 현실과 세계관 내부의 논리'가 충돌하는 형국이다. 특히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가속화되는 여권의 분화 과정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은, 우리가 얼마나 정치를 감정적으로 소비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숫자로 보면 명확하다. 지지율은 결국 그 정치인이 시민의 삶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개선했느냐에 달려 있는데, 지금은 그 실적보다 얼마나 더 강하게 '적'을 규정하고 응징했느냐가 지지율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 숫자로 보면
지지층을 가치 중심(A)과 이익 중심(B) 등으로 구분하는 유시민 작가의 분석은 흥미롭지만, 사실 그 숫자보다 중요한 건 '중도층의 이탈'이다. 팬덤의 결집력이 강해질수록 중도층은 정치를 혐오하며 등을 돌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정치적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복원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에디터의 단상: 우리는 왜 열광하는가
💭 개인적인 생각
어쩌면 우리는 정치인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결핍, 분노, 혹은 세상을 향한 불만족을 대신 말해주는 누군가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이재명'은 하나의 인간을 넘어, 지지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거대한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너무나 크다.
한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데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우리 삶을 개선할 정책이나 우리 사회의 미래를 고민할 시간은 사라졌다. 정치는 누군가를 응원하는 축제가 아니라,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협상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 울고 웃고 분노하는 동안, 그 감정의 파도 뒤에서 진짜 실무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가 우리의 세금을 어디에 쓰는지 따져 묻는 '지독한 냉정함'이 필요하다.
나 역시 누군가를 열렬히 지지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끝은 항상 허무했다. 권력은 나를 보호해 주는 방패가 아니라, 내가 끊임없이 감시하고 길들여야 하는 대상이어야 한다. 이제는 그 '뉴이재명'이라는 낡은 세계관에서 걸어 나와, 우리 각자의 현실로 돌아와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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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까지 타인의 세계관 속에서 살 것인가. 권력자를 신격화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시민으로서의 자격증을 반납하는 꼴이 된다.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마주하고, 내 편이라도 잘못하면 손가락질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이 척박한 정치 환경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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