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날 선 공방은 늘 예고 없이 터져 나오지만, 이번 는 그 수위나 맥락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2026년 10월 4일, '이정민의 정치인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쏟아진 강성필의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견해 차이를 넘어, 특정 언론인과 비판적 지식인들을 향한 직접적인 압박으로 읽힌다.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과 그에 대한 정치 권력의 대응은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측정하는 가장 예민한 척도다. 과연 지금 우리 정치는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인가.

강성필이 쏘아 올린 경고의 실체
언론인인가 선동가인가, 프레임의 재구성
강성필은 방송 출연을 통해 김어준 씨를 정조준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그가 제기한 의문은 간단했다. "김어준 씨가 지금까지 해왔던 행동들을 보면 본인은 언론인이라고 하고 있는데, 그게 과연 언론인의 모습인가?"라는 물음이다. 그는 김어준이 최근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는 정치적 반대자를 향한 고전적인 낙인찍기 방식이지만, 친석계 인사가 노골적으로 언론의 정체성을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작지 않다. 사실 강성필은 그동안 김어준에 대해 누차 비판해 왔기에, 이번 발언을 두고 "굳이 되새길 필요는 없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 핵심은 그 이후에 등장했다. 그는 "대통령이 약한 고리를 보였을 때 그때 공격하는 것은 언제고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반드시 응징할 거라고 본다"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 '응징'이라는 단어는 정치적 비판의 영역을 위협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위험한 수사다. 건전한 비판과 감시를 '약한 고리를 노린 공격'으로 치부하고, 이를 지지자들의 힘을 빌려 응징하겠다는 발상은 우리 정치가 지향해야 할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언론이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그 존재 이유 그 자체다. 그런데도 이를 선동으로 몰아세우고, 나아가 응징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태도는 권력이 비판을 받아들일 여유를 완전히 상실했음을 방증한다. 비판을 비판으로 맞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힘의 논리로 입을 막으려는 시도는 결국 그 권력 자체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김어준의 언론관이 무엇이든, 그것을 평가하고 심판하는 것은 권력의 몫이 아니라 시민의 몫이어야 한다.약한 고리를 향한 위협, 그 민낯
강성필의 발언 중 주목해야 할 대목은 '약한 고리'라는 표현이다. 이는 정치적 상황에서 발생한 실책이나 취약점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과 그 주변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논란을 '공격'으로만 치부하며, 그 비판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따지기보다 비판자를 가리켜 '선동가'라 부르는 것은 전형적인 메신저 공격 기법이다. 메신저를 공격하면 메시지 자체의 타당성을 흐릴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이미 무엇이 본질적인 문제인지 알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 뼈아픈 실책들을 두고 언론이 질문을 던지는 것을 두고 '응징'을 거론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정치가 시민의 공분을 사는 이유는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누군가 선동해서가 아니다. 권력이 스스로 약한 고리를 만들지 않는다면, 그 누가 그 고리를 공격할 수 있겠는가. 결국 이 사태의 본질은 권력을 향한 비판을 외부 세력의 음모나 선동으로 치부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구시대적인 정치 공학에 있다. 강성필의 발언은 그러한 정치 공학의 정점이다. 그는 김어준이라는 개별 언론인을 통해 비판적인 목소리 전체를 억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친 언사가 우리 정치를 더 건강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오히려 반대 목소리를 포용하지 못하는 권력의 초라한 모습만을 드러낼 뿐이다.🔥 정치 비판을 '응징'의 대상으로 보는 오만함
권력이 비판을 감당하지 못하고 '응징'을 운운하는 순간, 그 정치는 이미 대화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강성필의 발언은 비판적 언론을 '선동 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우리는 이런 오만한 권력의 행태를 그간 숱하게 보아왔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가 부딪히며 나아가는 과정이지, 권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목소리를 힘으로 꺾어버리는 통치가 아니다.
내부의 위기, 외부의 희생양 찾기
김민석과 유시민, 그리고 이재명 주변의 간신배들
강성필의 비판은 김어준을 넘어 우리 정치권 전반을 향한다. 그는 김민석, 유시민 등을 거론하며 "이재명 대통령 주변에 바글바글한 간신배들"이라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또한, 김민석 의원이 한 달 반 동안 지지율을 까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명으로 소신을 밝히는 의원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 대목은 현재 특정 진영 내부가 겪고 있는 소통의 부재와 내부 총질 혹은 눈치 보기의 단면을 보여준다. 실제로 정치권 내부의 건강한 토론이 사라지고, 오로지 이재명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 된 상황은 심각한 문제다. SNS를 통한 폭주가 연일 이어지는데도 이를 제어하거나 조언하는 참모가 없다는 것은 그 구조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참모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정치는 결국 고립된다. 강성필의 비판은 비록 방식이 거칠지라도, 현재 내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는 곱씹어볼 만한 지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해법이 또 다른 희생양을 찾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민석과 유시민은 만만하니까 때리는 것"이라는 분석은 매우 날카롭다. 비판하기 쉬운 대상만을 공격하며, 정작 해결해야 할 핵심 문제로부터는 눈을 돌리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만을 고민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에 불과하다.침묵하는 시스템과 곪아가는 정치
김어준 총수가 꾹 참으며 비판을 자제하는 이유에 대해 강성필은 진영이 무너지면 국짐(국민의힘)이 득을 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현재 진영 정치의 딜레마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정당이 진영의 논리에 갇혀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다. 진영의 승리가 국가의 미래보다 우선시될 때, 그 시스템은 곪아 터지기 마련이다. 대통령의 SNS 폭주를 방치하는 청와대 참모들, 지지율 하락에도 입을 닫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진영 유지라는 명분으로 침묵하는 지식인들. 이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비판을 원천봉쇄하고 내부 단속에만 급급한 정치는 결국 국민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판을 응징하겠다는 태도는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며, 그 침묵은 결국 정치를 죽인다.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은 '응징'의 목소리가 아니라 '성찰'의 목소리다. 김어준이든 유시민이든 혹은 다른 정치인이든, 각자의 위치에서 비판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이 그들을 향해 응징의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할 때, 그 칼끝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권력 자신을 향할 것이다. 정치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유지된다. 그 균형이 무너진 정치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니라 무소불위의 권력 놀음일 뿐이다.📊 숫자로 보면
정치적 지지율 하락은 단순한 수치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권력의 방식에 보내는 '레드카드'다.
한 달 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하락세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실명으로 소신을 밝히는 의원이 전무하다는 사실은 공포에 질린 내부 구조를 증명한다. 숫자가 말해주는 민심을 읽지 못하고 메신저만 공격하는 정치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
비판을 잃어버린 권력은 괴물이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과 권력은 늘 긴장 관계에 있어야 한다. 언론이 권력을 찬양하고 권력이 언론을 길들이려 할 때, 그 사회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강성필의 경고는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시도이며, 이는 결국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김어준의 언론관이 아니라, 언론을 향해 '응징'을 입에 올리는 권력의 비뚤어진 사고방식이다. 언론인으로서의 자격은 권력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읽고 듣고 판단하여 얻는 신뢰가 곧 언론인의 자격이다. 정부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지지자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해서 언론을 탄압하려 든다면 그것은 권력의 자기 파괴적인 행위다. 더군다나 '약한 고리'를 언급하며 응징을 선언하는 것은 그 권력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얼마나 확신하지 못하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우리 정치가 정말로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계적인 작동에 불과한 것인지 말이다. 강성필의 발언이 던진 파문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 발언을 통해 우리 정치가 얼마나 후퇴하고 있는지, 비판의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차고 있는지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침묵을 깨고 나아가는 시민의 역할
결국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더 강력한 비판적 연대다. 정치권이 스스로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면, 시민들이 직접 그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지자들조차도 자신의 진영이 잘못된 길을 갈 때는 따끔한 충고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내 편'이기 때문에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편'이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지지다. 강성필이 말한 응징의 공포를 넘어, 우리는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으며, 오직 국민의 비판과 감시 속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치가 스스로 곪아터지기 전에, 시민들이 먼저 소리를 내어 그 고름을 짜내야 한다. 김어준을 향한 비판이든, 정치권 내부의 간신배 논란이든, 그 모든 핵심에는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정민의 정치인사를 통해 드러난 이번 소동은 우리 정치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비판을 비판으로 응대하지 못하는 권력, 내부의 건전한 비판을 두려워하는 정치 세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분노하고 좌절하는 국민들. 우리는 이제 이 비극적인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응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대화와 비판, 그리고 치열한 성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에디터의 단상
이번 강성필의 발언을 보며, 과연 우리 정치가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깊은 회의가 들었다. 30대인 나에게 정치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희망이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는 서로를 향해 '응징'을 외치고, 비판자를 '선동가'로 몰아세우며 자기들만의 성벽을 쌓는 데 급급하다. 김어준 씨가 언론인인가 선동가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강성필 씨가 지금 우리 정치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묻고 싶다.
낡은 진영 논리에 갇혀, 비판을 적대시하는 정치는 결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우리 세대는 더 이상 이런 방식의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
억지로 입을 막으려 할수록, 그 반작용은 더 거세게 돌아올 것이다. 진정한 정치는 비판을 통해 성장한다.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이, 비판을 받아들일 줄 아는 정치가, 진정으로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응징의 칼날이 아니라,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귀와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거울이다.
📚 이 글이랑 같이 보면 좋은 글
우리는 오늘도 정치가 빚어내는 소음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하지만 기억하자.
권력이 침묵을 강요할 때마다, 시민들은 더 크게 목소리를 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과연 우리는 이 폭풍 같은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
#강성필 #김어준 #김어준징계 #이정민의정치인사 #정치시사 #언론탄압 #정치비판 #시사블로그 #대통령지지자 #친석계 #정치현안 #시사상식 #민주주의 #정치이슈 #권력비판 #김민석 #유시민 #이재명 #정치싸움 #언론자유 #시민사회 #정치권소식 #이슈체크 #시사평론 #정치색깔 #미디어비판 #정치발언 #뉴스분석 #시사토론 #정치사회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