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수형이 전하는 추석특집 정국 분석 라이브

게임 방송 마이크 앞에 앉아 이스포츠의 판을 짜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시사 평론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홀수형'이라는 닉네임으로 익숙한 크리에이터가 정국의 한복판을 향해 쓴소리를 뱉기 시작한 배경에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가십을 넘어선 시대적 부채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워크래프트 3와 리그 오브 레전드의 흥망성쇠를 현장에서 지켜보던 그가 왜 카메라를 돌려 정치 판세를 분석하게 되었을까. 2019년 조국 사태 당시의 부당함을 목격하고 아내의 격려 속에 마이크를 잡았던 그날의 다짐은, 오늘날 한국 정치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날카로운 메스가 되었다. 단순히 한 유튜버의 변신으로 치부하기엔, 그가 짚어내는 정국의 결정적 순간들이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모순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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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판에서 시사 판으로, ‘홀수형’이 마이크를 잡은 이유

고등학교 별명에서 시작된 닉네임과 이스포츠의 여명기

사람들은 흔히 자극적인 타이틀만 보고 방송에 들어왔다가 이 독특한 닉네임의 유래를 듣고 피식 웃고는 한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이름 끝자론 '호'를 따서 부르다 '굴려'라는 발음이 섞여 '홀수'가 되었고, 게임 방송을 시작할 무렵 나이대가 자연스럽게 '형'의 위치가 되면서 '홀수형'이라는 이름이 고정되었다. "이 질문이 제가 제일 좀 대답하기가 좀 짜치는데, 짜치는데."라며 멋쩍어하는 모습 뒤에는 2006년부터 이어진 치열한 인터넷 방송의 역사가 담겨 있다. 당시 한국은 스타크래프트의 거대한 그늘 아래 워크래프트 3가 이스포츠로 자리 잡지 못하고 사라져 가던 시기였다.

리그가 공중화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 그가 직접 방송을 켜고 마이크를 잡았던 이유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었다. 워크래프트 3와 카오스를 거쳐 리그 오브 레전드가 국내에 정식 론칭되었을 때, 초기 이스포츠 생태계를 설계하는 현장에 그가 있었다.

비주류 게임을 다루던 마이너한 감성이 시대의 거대한 흐름과 맞아떨어지면서 도약의 기회를 잡았지만, 그가 본 게임 판타지의 바깥은 녹록지 않았다. 화려한 승리의 환호 뒤에는 플랫폼의 흥망과 함께 스튜디오를 떠나야 했던 수많은 동료들의 뒷모습이 있었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는 그의 겸손한 고백 속에는, 척박했던 초기 인터넷 방송 생태계에서 생존을 고민해야 했던 치열한 생리 가 묻어난다. 게임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 산업의 뼈대를 만들던 그 시절의 경험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그가 정치·사회적 부조리를 마주했을 때 침묵하지 않게 만드는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다.

판이 흔들릴 때 방관하지 않고 직접 뛰어들어 판을 읽으려던 습관은, 결국 게임 스튜디오를 넘어 대한민국 정치 판세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어졌다.

회사의 몰락과 조국 사태가 던진 질문

2019년은 그에게도, 그리고 대한민국 정치 공론장에도 거대한 변곡점이었다. 30여 명의 직원을 이끌며 순항하던 회사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직원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황량한 사무실에서 그는 거대한 사회적 폭풍우를 마주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을 때, 그는 화면 너머로 흘러나오는 광기를 보며 참을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지지하는 정당이 따로 있었고 도덕적인 비판의 여지가 완전히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과연 이 사태가 법의 칼날을 휘두르며 가루로 만들어 버릴 만큼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밀려왔다.

"하고 싶은 건 해. 그냥 하고 싶은 말이나 하면서 살아.

어차피 일도 다 떨어져 나가는데." 출구 없는 터널을 지나던 그에게 건네진 아내의 이 한마디는 모든 것을 결심하게 만든 방패이자 날개가 되었다. 시사 방송을 시작한다는 것은 기존 게임 방송 시청자의 절반 이상을 포기해야 하고, 자신에게 일감을 주던 게임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자살골과 다름없는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이크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표현을 쓰며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이 상식을 가진 개인이 버텨낼 수 있는 선을 이미 아참참 넘어섰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는 단순히 한 장관 후보자의 낙마를 넘어, 우리 사회의 검찰과 언론이 어떻게 거대한 권력 카르텔과 결탁해 여론을 재판하고 한 사람의 인격을 말살하는지 보여준 거대한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당시 언론들은 검찰이 흘려주는 피의사실을 받아쓰기 바빴고, 대학가에서는 실체적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만으로 촛불이 타올랐다.

역사적으로 한국 사회의 거대한 변화는 늘 광장의 뜨거운 열기로 시작되었지만, 그 열기가 때로는 검증되지 않은 혐오와 집단 광기로 변질될 때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 그 시절은 처절하게 증명해 냈다. 그는 바로 그 지점에서 펜을 들고 카메라를 켰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공조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 광기의 시대, 침묵을 거부한 이들의 기록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진실 규명보다 네 편 내 편을 갈라치는 소모적 정쟁에 몰두하곤 했다. 조국 사태 역시 법적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는 거대 기득권 카르텔이 주도한 마녀사냥의 성격이 짙었다.

부당함에 눈감지 않고 마이크를 집어든 평범한 크리에이터의 용기는, 침묵을 강요하는 거대한 언론 지형 속에서 비로소 진짜 공론장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4050 세대의 기억과 민주주의의 이타적 가치

땡전뉴스의 기억과 최루탄 냄새가 남긴 상처

오늘날 정치 지형의 허리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4050 세대와 60대 초반의 정서적 토대를 이해하려면, 그들이 거쳐 온 유년 시절의 풍경을 들여다봐야 한다. 80년대 초반 국민학교 시절, 9시 뉴스 시각만 되면 화면에 어김없이 등장하던 전두환 대통령의 얼굴은 어린 학생들에게 일종의 거대한 공포이자 부조리였다. 아버지가 땡전뉴스가 나올 때마다 채널을 홱 돌려버리던 모습을 보며 어린 마음에도 "우리 아버지가 혹시 간첩인가?"라는 황당한 의문을 품어야 했던 세대다. 학교에서는 반공 웅변 대회가 열리고,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목청껏 외치며 데모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를 무너뜨리는 빨갱이라고 주입받았다.

하지만 학교 문을 나서면 세상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 근처를 지나노라면 눈을 찌르고 코피를 터뜨리는 최루가스 냄새가 골목 가득 진동했고, 방패를 든 전경들이 학생들을 쫓아 뛰는 소리가 일상이던 시절이었다.

왜 저들이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와 매를 맞아야 하는지 어린 나이에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폭력의 공기와 시대의 비명을 피부로 겪으며 자라난 이들이 바로 지금의 중장년층이다. 민주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군사독재의 서슬 퍼런 칼날 아래서 국가가 개인의 삶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유린할 수 있는지 몸으로 겪어낸 기억은 이들의 뼛속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자연스럽게 이들을 당장의 개인적 이익보다 사회적 대의와 공동체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이타적 성향의 주체로 만들어 놓았다. 유시민 작가가 언급했던 ABC론의 맥락에서 보더라도, 지금의 민주당 코어 지지층을 이루는 이들은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너질 때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뼛속 깊이 알고 있다. 전두환 시절의 공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오늘날 목격되는 정치적 퇴행은 단순한 정책의 실수가 아니라, 어렵게 쌓아 올린 공공의 성채가 무너지는 전조증상으로 다가온다.

윤석열 정권을 거치며 확인한 체제 위기의 실감

반면 군사독재의 폭력을 직접 겪지 않고 민주화된 체제 속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에게는 이러한 역사적 공포가 다소 생소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정치적 위기의 최대치는 기껏해야 윤석열 정권이 보여준 일련의 무능과 불통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두환이라는 거대한 악몽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지금의 상황은 단순히 정권 하나가 바뀐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이게 무너지면 윤석열보다 더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절박함이 이들로 하여금 민주당이 마음에 쏙 들지 않고 4050세대를 위한 시원한 정책을 내놓지 못할지라도 무조건적인 지지를 거두지 않게 만드는 진짜 이유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동원 모델이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론장에 참여하고 체제를 수호하려는 움직임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가만히 두면 저절로 굴러가는 기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피를 흘리며 지켜내야 하는 생물이라는 사실을 부모 세대는 삶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검찰 개혁이나 언론 개혁은 단순히 특정 정파의 권력 강화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르텔처럼 얽혀 있는 특권 구조를 부수지 않고서는 사회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과제로 다가온다.

젊은 세대가 체감하는 공정과 공정함의 기준이 개인의 능력주의와 땀방울에 맞춰져 있다면, 4050 세대가 바라보는 정의는 공동체의 붕괴를 막아내는 방어선에 가깝다. 이 인식의 간극을 메우지 못한 채 서로를 꼰대와 이기주의자로 매도하는 순간, 정치는 양극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게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 독재 정권의 폭력을 온몸으로 돌파하며 민주화의 과실을 일궈낸 이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특정 정치인의 안위가 아니라, 어렵게 되찾아온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민주적 공론장 그 자체다.

📊 역사의 트라우마가 만든 정치적 지형

국가 폭력의 기억을 공유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사이의 인식 차이는 한국 사회의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아픈 단면이다.

개인의 이해득실을 떠나 민주적 가치와 공익을 수호하려는 4050 세대의 단단한 결속은, 역설적이게도 과거 한국 현대사가 지불했던 혹독한 대가 위에서 완성되었다.

한병도 소수결 파동과 디커플링의 치명적 기점

‘뒷배’가 없으면 불가능했던 무모한 질주

정국이 이토록 어수선해지고 지지율이 수직 낙하하기 시작한 결정적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한병도 전수조사 파동과 당내 ‘소수결’ 강행 처리를 들 수 있다. 정치권의 생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이라면 한병도라는 인물이 그렇게 독자적으로 무모한 판을 벌일 만한 배짱이나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뒤에 빽이 있다. 믿는 구석이 확실하지 않으면 저걸 밀어붙일 수 없다." 사방에서 욕을 먹고 지지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 뻔한 상황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밀어붙인 배경에는, 결국 거역할 수 없는 더 높은 곳의 오더가 작용했음을 짐작게 한다.

합리적인 정치가라는 평판을 듣던 이가 돌변하여 당내 민주주의의 기본 절차를 무시하고 소수결을 밀어붙였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대통령이 꼭대기에 있는 거였구나."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대통령의 의중이 직접 작용했다는 사실이 흘러나왔다가 황급히 기사들이 삭제되는 해프닝은, 이 권력의 작동 방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검찰개혁의 초기에 올바른 방향타를 잡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나갈 때만 해도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달렸다. 그러나 권력이 커지고 당내 권력 투쟁의 도구로 변질되면서, 개혁의 칼날은 민생이 아니라 내부를 향하기 시작했다.

설마설마하던 지지자들은 이 상식 밖의 소수결 과정을 지켜보며 "아니일 수도 있지 않나" 하다가 결국 "맞네 씨" 하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당은 전당대회를 치르며 시끄러워지고 지지율은 하락 곡선을 그리는 디커플링 현상이 본격화된 것이다.

김어준이 방송에서 레이드 오는데 이대로 가면 진짜 큰일 난다며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듯 걱정할 때, 당내 주류 인사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커플링!

확실히 쫓아가면 그만이야 씨"라며 안일한 태도로 일관했다. 권력의 오만함이 만들어낸 이 균열은 결국 정권 전체의 도덕성과 유능함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전관시장의 하르텔을 부수지 못한 개혁의 배신

검찰개혁의 본질은 단순히 검찰 특유의 권력 기관을 짓누르는 데 있지 않다. 진정한 개혁의 목표는 법 위에 군림하며 가진 자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온 전관시장, 즉 거대한 하르텔을 완전히 해체하는 것에 있었다. 판사 출신 변호사들과 달리 검찰 출신 전관들은 동일체 깡패 조직 같은 특유의 문화 속에서 기소를 막아내고 재판 자체를 무력화하는 무소불위의 파워를 자랑한다. 검찰개혁이 제대로 완수되어 수사와 기소가 완전히 분리되기만 했다면, 코어 지지층들은 다른 모든 정책에서 아쉬움이 남더라도 기꺼이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이 정점에 오른 뒤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하르텔의 해체가 아니라 권력의 사유화였다. 부조리한 시스템을 도려내라고 권력을 몰아주었더니, 그 힘은 당내 권력 투쟁과 자기 식구 챙기기에 소모되었다.

전관예우라는 한국 사회의 가장 거대한 부조리를 도려낼 절체절명의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그 카르텔의 그늘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보일 때 민심이 돌아서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개혁을 약속했던 정권이 도리어 기득권의 호위무사처럼 비쳐질 때, 지지자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선 분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정치가 신뢰를 잃는 순간은 대단한 음모가 도사릴 때가 아니다. 개혁의 초심을 잃고 눈앞의 권력 유지에 급급해 상식적인 절차를 짓밟을 때, 민중은 차가운 눈으로 등을 돌린다.

한병도의 소수결 파동은 그러한 불신이 어떻게 정권의 지지율을 수직 낙하시키는지 보여준 뼈아픈 교훈이다. 권력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휘두를 때만 정당성을 얻는 법인데, 그 칼날이 내부를 향하고 사익을 위해 오남용되는 순간, 민심의 바다는 언제든 그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 거친 파도로 돌변한다는 사실을 역사는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 한눈에 보는 정국 결정적 순간들

  • 초기 검찰개혁의 명분이었던 전관시장 하르텔 해체가 권력 투쟁 속에서 실종됨.
  • 상식을 벗어난 한병도 소수결 강행 처리가 정권 지지율 디커플링의 도화선이 됨.
  • 역사적 트라우마를 지닌 코어 지지층의 실망감이 단순한 정책 비판을 넘어 체제 불안으로 확산됨.

청와대 내부 기강 해이와 레임덕의 전조

유시민 법적 대응 해프닝과 멍청해진 참모들

정권의 위기는 늘 바깥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오만과 무능에서부터 스며 나온다. 최근 연합뉴스를 통해 흘러나온 청와대의 유시민 작가 법적 대응 검토설은 그야말로 지각생들도 안 하던 짓을 골라 하는 촌극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진보 진영의 큰어른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만지작거린다는 자체가, 청와대 내부 인재풀이 얼마나 참담한 수준으로 망가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식 발표도 아닌 내용이 줄줄 새어 나가고, 참모들끼리 "유시민은 포섭하지 마" 같은 헛소리를 지들끼리 주고받았다는 소문이 돌 때, 그것이 바로 레임덕의 확실한 전조가 아니면 무엇인가.

문재인 정권 시절 가짜 뉴스로 대통령을 공격하던 세력에 대응하다 역풍을 맞았던 아픈 기억을 떠올려보라. 이재명 대통령이 문재인보다 못한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할 모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내부에서 이런 아마추어 같은 폭로와 흠집 내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통령이 화를 내면 참모들도 덩달아 씩씩거리며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경직된 공기가 청와대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을 내면 내부에서 '킬'을 당하는 분위기 속에서, 똑똑한 인재들은 입을 닫고 멍청한 예스맨들만 살아남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봉지욱 기자가 페이스북에 직격탄을 날린 것처럼, 만약 기사가 사실이라면 당장 고소하든지 오보라면 연합뉴스를 법적 조치하든지 결단을 내려야지, 이도 저도 아니면서 찌라시처럼 소문만 흘리는 꼴은 정권의 무능을 자인하는 꼴밖에 안 된다. 유시민 작가가 낚시를 하든 평화롭게 살아가든 본인들은 갈 생각도 없는데, 청와대 안방에 앉아 자기들끼리 누구를 포섭하고 누구를 배제하네 마네 콧방귀를 뀌는 꼴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참모들이 오히려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지지율을 20대 코앞으로 수직 낙하시키는 주범으로 전락한 셈이다.

언론의 ‘육당 폭격’과 오프 더 레코드의 그늘

한겨레나 한국일보 같은 주요 언론들이 유시민 작가를 향해 일제히 포문을 열고 이른바 '육당 폭격'을 퍼붓는 모양새도 비판적으로 짚어봐야 한다. 유시민 작가가 어떤 날카로운 비판을 던졌다고 해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그 시점에 폭락했다는 인과관계를 억지로 엮어내는 것은, 여론의 향방을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얄팍한 프레임에 불과하다. 정작 지지율이 추락하는 진짜 이유는 정부가 민생을 챙기지 못하고, 청와대가 비판을 수용하기는커녕 화를 내며 등 돌린 민심을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인데, 그 화살을 엉뚱한 외부 평론가에게 돌리는 샌드백 삼기 노릇에 언론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수십 명의 기자를 모아놓고 비공개 '오프 더 레코드' 간담회를 열면서 유시민 관련 질문에는 "그 이야기는 넘어가시죠"라며 입을 닫고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로 얼버무렸던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결국 조직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인들이기에, 청와대가 불편해하는 질문은 알아서 피하고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기사를 빚어내는 타성에 젖어 있다.

진정한 소통과 개혁은 언론과의 밀실 담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서운 비판 앞에서도 허리를 숙이고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비판을 두려워하고 쓴소리를 하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정권은 이미 생명력을 잃어가는 증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 작가가 사회적 영향력 1위를 지키는 이유는 그가 대단한 권력을 가졌기서가 아니라,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비판의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그 비판을 아프게 수용하기는커녕 내부 참모들의 좁아터진 시야에 갇혀 씩씩거리며 법적 대응 운운하는 동안, 민심의 탑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참모들이 바보가 되어버린 청와대에서 과연 진짜 민심의 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지, 지금의 정국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서 있다.

💭 에디터의 단상 : 비판을 잃은 권력의 말로

권력이 정점에 오를수록 주변에는 쓴소리를 하는 사람보다 콧등을 간지럽히는 아첨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마련이다. 지금 청와대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해프닝들은 바로 그 권력의 단맛에 취해 민심의 바닥이 얼마나 차가운지 잊어버린 이들의 자화상이다.

진정한 지도자의 자격은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참모들의 눈을 가리고 스스로 귀를 닫아버린 채 외부의 탓만 하는 정권은, 결국 스스로 파놓은 무능의 함정 속으로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는 끊임없이 경고해 왔다.

농지 전수조사 파동과 성난 시골 민심

시골 어르신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유언비어

정국의 물밑에서 들끓고 있는 또 하나의 거대한 폭탄은 바로 농지 전수조사 파동이다. 농부 출신 패널이 직접 전한 현장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평생을 땅을 일구며 살아온 시골의 90세 고령 어르신들이나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농지를 지키고 있는 자식들 사이에는 지금 "정부가 땅을 다 뺏어간다"는 흉흉한 유언비어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직접 농사를 짓지 못해 주변의 젊은 이웃에게 땅을 맡겨 둔 어르신들은 이번 전수조사 칼날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아 갈 실형 선고처럼 느껴져 공포에 떨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잡고 불법 농지를 바로잡겠다는 개혁의 취지 자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 집행의 방식이 너무나 거칠고 현장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노인들이 행정 절차의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해 불법 전용자로 몰릴 위기에 처했음에도, 정부와 청와대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방어막을 쳐줄 코어 층들의 쉴드를 전혀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농림부 장관이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설명했지만, 이미 불신이 팽배해진 시골 장터에서 그 목소리가 닿을 리 만반의 리가 없다.

대통령의 SNS를 통해 농지 조사의 필요성과 처벌 목적이 아니라는 해명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미 공포심이 극에 달한 민심을 수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대로 두면 큰일 나겠다"는 위기감을 장관이나 대통령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으면서도, 막상 대중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오해를 풀기 위한 적극적인 소통 창구에는 소홀하다.

뉴스공장이나 맵블쇼 같은 코어 지지층이 결집해 있는 공론장에 적극적으로 찾아가 "이러이러한 오해가 있으니 안심하시라"고 손을 내밀어야 할 판에, 아직도 청와대 내부의 기강이 정리되지 않아 눈치만 보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눈치 보기와 소통의 부재가 부른 자화자찬

추석 명절을 앞두고 고향에 내려가는 자식들에게 시골 부모님들이 건네는 걱정 섞인 한탄은 곧 정권의 지지율을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바로미터다. "정부가 우리 땅을 다 빼앗으려 한다"는 가짜 뉴스가 어르신들의 스마트폰을 타고 순식간에 확산될 때, 정부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아직도 여의도식 셈법에 갇혀 누구 눈치를 보느라 방송 출연을 주저하고, 현장의 아픔에 귀를 닫은 채 책상머리에서 통계 숫자만 들여다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개혁은 국민의 동의와 눈높이를 맞출 때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 법인데, 몽둥이부터 들고 나서니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밀어붙이기식 행정 밀어내기가 아니라, 굽은 백리 길을 돌아가더라도 국민의 손을 잡고 설득하는 정교한 정치력이다. 농지 전수조사의 칼끝이 향해야 할 곳은 투기꾼들의 거대한 랜드마크여야지, 평생을 흙 만지며 살아온 늙은 농부들의 마지막 자존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간단한 상식마저 현장에 전달되지 못하고, 청와대 참모들의 멍청한 오만함과 무대응 속에 민심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지지자들의 속은 타들어 간다.

정치가 민생을 돌보지 않고 권력 내부의 싸움과 겉치레에만 매몰될 때, 민심의 바다는 언제든 거대한 태풍을 품고 정권을 집어삼킬 준비를 마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참모들의 눈치를 보며 방구석에 숨어 있을 때가 아니라, 거친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 성난 민심의 뺨을 맞으며 오해를 풀고 사과해야 할 때다. 그것이 진정으로 개혁을 완수하겠다던 이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태도이자, 무너진 신뢰를 되찾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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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권력은 스스로의 오만을 꺾고 성난 민심의 목소리에 온전히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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