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가 말하는 미디어 비평의 품격과 언론의 책임

요즘 유튜브를 켜보면 뉴스나 시사 비평 채널들이 정말 쏟아져 나온다. 기성 언론사들도 예외는 아니라서, 지상파나 조중동 같은 재래 언론뿐만 아니라 수많은 군소 뉴미디어까지 저마다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씩 보태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 판돌이가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보다는 "이게 도대체 뭔 일인가" 싶은 황당함이 먼저 앞선다. 점잖게 미디어를 비평해야 할 자리가 언제부터인가 남을 깎어내리고 조롱하는 난장판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유시민 작가가 미디어오늘 라이브에 출연해 털어놓은 이야기는 바로 이 혼돈의 미디어 생태계 한복판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다. 비평의 품격은 사라지고 유튜브 조회수와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버린 작태들을 보며, 우리가 언론을 소비하고 비평을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완전히 고장 났음을 실감하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이 판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그 민낯을 차근차근 뜯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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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의 존재 이유와 자본이 삼킨 언론 생태계

언론노조가 지배주주인 매체가 던지는 내부를 향한 총질

🔥 내부를 향한 쓴소리가 사라진 시대의 부패

유시민 작가가 미디어오늘이라는 매체에 주목한 지점은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하다. "자기 진영을 향해서 총질하는 미디어잖아요. 가끔 저희 주주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언론이기도 하고요." 이 한마디에 현주소가 다 담겨 있다. 언론노조가 1대 주주로 버티고 서서 언론 종사자들의 자기비판을 위해 출발했던 매체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희귀종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정치든 사회든 조직이든 간에 내부에서 쓴소리를 던지는 주체가 사라지는 순간, 그 조직은 고여서 썩어 들어가기 마련이다. 안일함은 곧 부패와 비효율로 직결된다. 하지만 대다수의 재래 언론과 뉴미디어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치부는 덮어두고 남의 허물만 물어뜯기에 바쁘다. 유 작가가 "미디어오늘 구독자 100만 이 정도 돼야 사회가 좀 건강해질 거예요"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은, 반대로 우리 사회의 공론장이 얼마나 편협한가에 대한 뼈아픈 반증이기도 하다.

더구나 언론사들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처참하다. 전통적인 족벌언론들의 세습 구조를 넘어, 이제는 건설사나 사모펀드 같은 자본권력이 언론사를 집어삼키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주요 언론사들의 지분 상당수가 이익 환수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 언론을 도구로 쓰는 자본이 판을 치는데, 거기서 무슨 고결한 저널리즘의 향기가 나겠는가. 자본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언론이 사회의 목탁 역할을 포기한 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다.

데이터와 메타데이터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찌라시 감성

📊 감정 자극만 남은 미디어의 추락

전문 연구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방대한 미디어 환경의 흐름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매체들이 서로 경쟁하고 융합하며 공격하는 난리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객관적인 데이터와 메타데이터가 필수적이다. 미디어오늘이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나마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자극적인 혓바닥 놀음 대신 그나마 데이터를 요약해 보여주려는 최소한의 성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튜브 비평 프로그램이나 재래 언론의 뉴미디어 채널들은 데이터는 내팽개친 지 오래다. 이들이 골몰하는 것은 오직 조회수와 알고리즘의 간택뿐이다.

팩트를 검증하고 논리적 근거를 쌓아 올리는 작업은 지루하고 돈이 안 된다. 대신 자극적인 썸네일에 원색적인 비난을 얹어 사람들의 분노를 유발하는 게 훨씬 남는 장사다.

이런 환경에서 언론이 사회적 공기(公器)이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른다.

💭 에디터의 단상 : 자본이 장악한 공론장의 허무함

언론이 자본에 먹히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지독하게 허탈하다. 언론은 사회의 등대라는데, 그 등대를 세운 이들이 등대 불빛을 비춰 안전한 길을 안내하기는커녕 불빛을 꺼버리고 자기가 파놓은 함정으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꼴이다.

건설사와 사모펀드가 언론사 지분을 사들이며 입맛에 맞는 보도를 주문하는 동안, 독자들은 진실을 알 권리를 박탈당한 채 거대한 알고리즘의 장난감으로 전락했다. 미디어오늘 같은 매체가 지탱하는 버팀목마저 흔들린다면, 우리 사회의 집단 지성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씁쓸함을 넘어 두려움마저 드는 대목이다.

미디어 비평의 탈을 쓴 조롱과 혐오 조장의 실체

미디어를 비평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공격하는 광기

🔥 비평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비열한 인신공격

유시민 작가가 지적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은 현재의 미디어 비평이 본질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점이다. "미디어를 비평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을 공격하죠." 이 한마디에 모든 게 압축된다. 특정 재래 언론사의 유튜브 채널을 도마 위에 올린다면, 그 채널이 쏟아내는 보도의 방향성과 구조적 모순을 짚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 방송들을 보면 채널 자체에 대한 비평은 찾아볼 수 없고, 거기에 출연한 특정 패널이나 개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데 한 시간 내내 방송을 허비한다.

어느 방송의 썸네일에 자극적인 이름을 박아두고, 출연진들이 입을 모아 상대방을 조롱하고 깎어내리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게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나?" 싶을 정도로 저열한 방송들이 조회수를 쓸어 담는 현실은 우리 안의 관음증과 적대감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평에 대한 비평은 언제나 권장되어야 하지만, 지금 유튜브 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비평이 아니라 저급한 사냥에 가깝다.

과거 기성 언론들이 암묵적인 카르텔을 형성해 서로의 비리를 눈감아주던 폐해에 분노하며 뉴미디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해방구는 얼마 가지 않아 더 지독한 진영 논리와 인신공격의 경연장으로 변질되었다.

상대 진영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조롱하는 영상이 곧바로 돈이 되는 구조 속에서, 깊이 있는 토론이나 품격 있는 비평이 살아남을 자리는 없다.

풍자와 해학은 어디로 가고 조롱과 혐오만 남았는가

📊 권력자를 향한 풍자와 약자를 향한 조롱의 경계

문학이나 예술에서 풍자와 해학은 언제나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강력한 무기였다. 전통적인 관념에 따르면 타인의 의지에 반하여 자신의 힘을 관철할 수 있는 권력자를 놀려먹는 것은 무리한 비하나 조롱에 가까워도 용인된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비판에는 한계가 없어야 마땅하며, 그 방식 역시 어느 정도 너그럽게 인정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그 대상이 권력자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이거나 평범한 개인일 때 발생한다. 권력의 부조리와 무관한 사람들을 조롱의 도구로 삼는 것은 해학이 아니라 명백한 혐오 조장이다. 예컨대 과거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데는 성역이 없어야 하지만, 독재 정권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들까지 싸잡아 조롱하는 것은 선을 한참 넘은 짓이다. 지금의 뉴미디어 생태계에는 이 기본적인 구분 기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개념도 없고 훈련도 받지 못한 이들이 유튜브라는 무한 경쟁 플랫폼에서 마이크를 잡고 아무 말이나 배설하고 있는 것이다.

💭 에디터의 단상 : 촉법 평론가들이 양산해 낸 혐오의 시대

인간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그 말이 담보하는 책임감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유튜브 판을 휘젓는 자들을 보면 책임감이란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맥락은 온데간데없고 자극적인 단어 하나만 붙잡아 사람을 마녀사냥하는 이들을 유시민 작가가 '촉법 평론가'라 비판한 것은 정확한 명명이다. 무슨 말을 하든 면책특권이라도 받은 것처럼 남을 짓밟고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빠져나가는 비겁함이 역겹다. 권력자를 향해 던져야 할 돌을 힘없는 개인의 이마에 겨누는 비열함이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한, 우리 사회의 공론장은 영원히 시궁창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저널리즘 규범의 붕괴와 당사자 언론의 무한 경쟁

사실과 논리는 버리고 공정성은 허울만 남은 시대

🔥 교과서 속 저널리즘 규범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이유

저널리즘 교과서가 말하는 원칙은 언제나 삼박자로 요약된다. 첫째는 사실에 입각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논리의 규칙을 지킨다는 것이며, 셋째는 대립하는 주체들에 대해 공정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유시민 작가의 분석에 따르면 이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규범은 뉴미디어든 재래 언론이든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지키려 애쓴다. 안 지키면 바로 인기를 잃고 도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번째 규범인 '공정성'이라는 기준은 역사적으로 재래 언론이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지킨 적이 없는 허울에 불과했다. 기계적 중립이라는 가면을 쓰고 보수 진영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온 것이 기성 언론의 진짜 얼굴이었다. 그러다 뉴미디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 허위마저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지금의 뉴미디어 생태계는 공정성 따위는 애초에 안중에도 없는 당사자 언론의 무한 경쟁 플랫폼일 뿐이다.

유튜브에 발을 들인 재래 언론사들의 방송을 보면 지면 기사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진영의 선동에 앞장선다. 경향신문이나 한국일보 같은 매체들이 지면에서는 나름의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 애쓰지만, 유튜브 채널로 넘어가는 순간 사회자들은 훨씬 더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며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구독자 숫자와 조회수가 생존을 결정하는 정글 속에서, 공정성이란 교과서에나 나오는 죽은 단어일 뿐이다.

역사적 오보와 사과의 무게, 그리고 진영 논리의 함정

📊 진영을 넘어선 오보의 역사와 반성의 실종

언론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이유는 단순히 편향성 때문만은 아니다. 치명적인 오보를 내고도 반성에 인색한 태도가 한국 언론의 고질병이다.

과거 조국 사태 당시 수많은 레거시 미디어들이 쏟아낸 의혹 제기들 중 상당수가 사실이 아님 밝혀졌고, 언론사들은 마지못해 구석진 지면에 정정보도를 싣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유시민 작가 역시 과거 알릴레오 방송에서 제기했던 노무현재단 계좌 추적 의혹이 사실이 아님을 뒤늦게 인정하고 처절하게 고개 숙여 사과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오보 그 자체보다 그 이후의 태도다. 뉴욕타임스나 가디언 같은 유력 외신들이 수십 년 전의 오보까지 찾아내 뼈저리게 바로잡는 동안, 한국의 언론들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어가기 바쁘다. 유 작가가 자신의 과거 발언을 돌아보며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과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다고 고백한 것은, 진영 논리에 매몰된 우리 모두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질주하는 태도는 결국 언론 전체를 신뢰의 사막으로 몰아넣는 주범이다.

💭 에디터의 단상 : 사과할 줄 모르는 언론이 만든 불신의 지옥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유일한 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재래 언론과 유튜버들은 오직 '이겼다 졌다'의 싸움판에서 살아남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내가 지지하는 진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의 인격을 말살하는 가짜뉴스쯤은 눈감아주고, 우리 편의 실수는 침묵으로 덮어버린다. 이런 식의 진영 싸움이 계속되는 한 대한민국 공론장은 영원히 발전할 수 없다.

유시민 작가가 보여준 드문 사과의 용기처럼, 이제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진영에서 내려와 사실 앞에 무릎 꿇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미디어 혁명이 가져다준 자유와 주체적 정보 처리자의 길

과거의 억압적 미디어 구조에서 벗어난 해방감

🔥 미디어가 억압이던 시대와 기술 혁명이 준 해방

돌이켜보면 유시민 작가가 살아온 평생 동안 미디어는 언제나 억압의 다른 이름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전모를 고르게 반영해 주는 미디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신문사나 방송국 사주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세상에 닿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기술의 발전이 없었던 시대에 언론 권력은 곧 독점적인 지배력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과 유튜브의 등장은 이 구조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내가 직접 미디어사를 차리지 않아도, 내 생각을 가장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채널을 찾아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수많은 기술자들 덕분에 누구나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전례 없는 해방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이 자유가 무분별한 혐오와 가짜뉴스의 온상이 된 것은 어두운 그늘이지만, 구조 자체의 권력이 분산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혁명이다.

자유주의적 신념에 따르자면, 인간은 누구나 독립적인 정보 처리자다. 세상의 모든 정보가 가감 없이 주어지고 해석에 필요한 논리의 규칙이 뒷받침된다면, 대중은 결국 스스로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언론의 자유를 헌법에 보장해 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당장 뉴미디어 판이 아수라장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 민주적 토대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시장의 무한 경쟁 속에서 결국 자리를 찾아갈 공론장

📊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무한 경쟁이 거를 체

일각에서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뉴미디어 생태계의 난립을 보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르짖기도 한다. 가짜뉴스가 판치고 선동이 난무하니 차라리 과거처럼 어느 정도 통제된 기성 언론의 질서가 낫지 않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유 작가의 시선은 훨씬 더 낙관적이고 거시적이다. 당장 눈앞에는 허접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판을 치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흐르면 시장의 무한 경쟁 속에서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믿음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바보가 아니다. 당장은 자극적인 어그로에 끌려다닐지라도, 그런 방식의 방송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대중은 스스로 학습해 나간다.

재래 언론사의 유튜브 비평 프로그램들이 진영 논리에 기댈 뿐 대안을 주지 못한다면 결국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기술적 조건이 바뀐 이상 과거의 검열이나 통제로 돌아갈 수는 없으며, 그 혼란의 터널을 지나면서 사회는 더 성숙한 공론장의 문법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 에디터의 단상 : 혼란을 통과하며 단단해질 민주주의의 힘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꿀 때마다 언제나 부작용과 혼란은 따라왔다. 인쇄술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도 온갖 음모론과 가짜 책들이 난무하며 세상을 어지럽혔지만, 인류는 결국 그 정보의 홍수를 통제하는 이성과 제도를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미디어의 혼란 역시 그 진통의 과정일 뿐이다. 누구나 떠들 수 있게 된 이 해방의 공간에서, 자극적인 조롱은 도태되고 진짜 데이터와 깊이 있는 비평만이 살아남는 체로 거르기가 작동할 것이라 믿는다.

그 믿음마저 저버린다면,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민주주의의 효능감 역시 신화에 불과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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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디어의 품격과 언론의 책임이라는 거창한 화두는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향해 있다. 자극적인 조롱에 환호하고 조회수를 채워주는 소비자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가짜 비평의 장사는 끝없이 흥행할 것이다. 100% 진리를 담보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되, 최소한 사실에 입각하고 논리의 규칙을 지키려는 태도.

그 소박하지만 단단한 원칙을 다시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더 지독한 혐오의 지옥일 뿐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공론장을 물려받을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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