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다시 도전하는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물 챙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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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6년 전, 코로나19라는 거대한 파도가 일상을 덮치며 어렵게 예약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눈앞에서 놓쳐야 했다. 당시 아쉬움을 달래려 머리를 밀고 제주 올레길을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프랑스 생장(Saint-Jean-Pied-de-Port)에서 시작해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약 800km의 대장정, 그 첫발을 떼기 직전이다. 짐을 꾸리며 연신 "내일이 출발인데... 큰일 났죠 ㅎㅎ"라고 혼잣말을 내뱉었지만, 마음 한구석엔 불안함보다 벅찬 설렘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단순히 걷는 행위 그 이상이다.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일상에서 잃어버린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 치유의 과정이다. 그러나 낭만적인 풍경 뒤에는 물집과 근육통, 날씨 변화라는 현실적인 장벽이 도사리고 있다. 오늘 기록은 그 실전의 기록이자, 800km를 버티게 해줄 든든한 동반자들을 점검하는 자리다.

생존을 위한 필수 장비와 배낭의 미학

메인 배낭과 수면의 질을 결정하는 침낭

배낭은 순례길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신체 일부다. 6년 전 순례길 도전을 위해 장만했던 도이터(Deuter) 36리터 배낭을 다시 꺼냈다. 제주 올레길을 함께하며 그 튼튼함을 증명했던 녀석이라 믿음이 간다. 수납의 핵심은 무게 분산이다. 배낭 가장 바닥에는 알베르게에서의 생존을 책임질 네이처하이크(Naturehike) 경량 침낭(NH LW180)을 배치했다. 9월의 스페인은 일교차가 커서 알베르게의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침낭 없이 잠을 청하는 건 무모한 일이다.

🔥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과잉 관광의 그림자

산티아고 순례길이 전 세계인의 회복의 길이 된 것은 반가운 일이나, 최근 과잉 관광으로 인한 쓰레기 문제와 현지 숙소의 인프라 과부하가 심각하다. 우리가 남기는 발자국만큼의 책임감도 배낭에 함께 담아야 한다. 편의를 위해 일회용품을 남용하기보다, 지속 가능한 순례를 위한 최소한의 장비만을 고집하는 것이 진정한 순례자의 자세다.

'까.친.연(까미노 친구 연합)'에서 국민 용품으로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700g의 가벼운 무게지만, 낯선 땅에서 나를 지켜줄 가장 따뜻한 공간이다. 장비는 많을수록 짐이 된다. 비울수록 가벼워지는 것이 이 길의 역설이다.

의류 구성의 핵심은 세탁의 효율성

옷을 챙길 때 가장 주의할 점은 '욕심'이다. 나는 긴 팔 2벌, 긴 바지 2벌, 양말 2켤레, 속옷 2세트라는 최소 구성으로 세트를 맞췄다. 이는 교대로 세탁하며 입기 최적화된 조합이다. 여기에 경량 패딩과 바람막이를 더하면 변화무쌍한 산악 지대 날씨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옷은 반드시 세탁망에 분류해 보관한다. 알베르게에서 공동 생활을 할 때 짐을 뒤적이는 소음은 민폐가 되기 쉽다. 미리 파우치별로 나누어 둔 짐은 나의 수면 시간을 확보해 줄 뿐만 아니라, 다음 날 새벽 이동을 신속하게 만든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입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미리 설계하는 셈이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은 순례길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준다. 매일 똑같은 옷을 세탁하며 우리는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마칠 수 있는 소소한 성취에 집중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순례가 주는 첫 번째 가르침이다.

변수를 대비하는 비상용 아이템과 잡화

판초우의와 경량 우산의 전략적 가치

출발 전날 급하게 구매해 배송받은 판초우의는 이번 여행의 'Special item'이다. 바람막이로 대체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무거운 짐을 다 덮을 수 있는 170g짜리 판초우의를 챙겼다. 많은 선배 순례자가 입을 모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지에서 겪는 갑작스러운 폭우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체온 손실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변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많이 걸어 발이 지칠 때를 대비한 경량 샌들, 마을에서 장을 볼 때 유용한 어머니표 시장 바구니까지 챙겼다. 특히 시장 바구니는 짐 부피를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현지 마트에서 식재료를 살 때 유용하다. 거창한 등산 용품보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은 생활 용품이 순례길에선 훨씬 더 빛을 발한다.

지퍼백이 만드는 질서와 위생

상비약은 지퍼백에 철저히 소분했다. 타이레놀, 소화제, 지사제는 기본이고, 물집 처리를 위한 실과 바늘, 호랑이 연고, 파스까지 꼼꼼히 챙겼다. 여행용 3단 파우치에는 클렌징 폼과 샴푸, 칫솔 등 위생용품을 정리했다.

귀마개와 안대도 잊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서 자는 알베르게 특성상, 코골이 소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바보가 바보에게'라는 마음으로 챙긴 귀마개는 숙면을 보장하는 보약과 다름없다. 빨래집게 대신 챙긴 자잘한 옷핀들과, 다인이가 선물한 캐릭터 티슈까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물건들이 배낭 한구석을 채우고 있다.

사람이 건네는 응원과 감사의 마음

야무진 친구와 세심한 지인들의 선물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사실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출국 한 달 전, 만료된 여권을 예매하고 기세 등등했던 내게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준 친구 준영이. 그 덕분에 새로 재발급받은 신상 여권을 손에 쥐게 되었다. "야무진 준영아 고마워, 건강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주변 지인들이 챙겨준 물품들은 하나하나가 감동이다. 잃어버릴까 봐 걱정해 준 희온이의 에어태그는 내 첫 최첨단 악세사리가 되었다. 떨어뜨릴 일이 없도록 핸드폰에 스트랩을 연결해 준 예린이, 단백질바를 챙겨준 시온이까지. 이들의 응원은 내가 800km를 걷는 동안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서자매가 챙겨준 용돈 카드에는 감동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다. 구매 금액의 10%가 소아암 환아들에게 기부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이 돈을 함부로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선의가 담긴 이 돈으로 나는 순례길을 걷고, 또 누군가는 생명의 희망을 얻는다. 이 길은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니다.

비움과 채움의 미학

빨랫줄 대신 챙긴 신발끈 하나, 빨래집게 대신 활용할 옷핀들. 이런 대체품들이야말로 순례길의 정수다. 완벽한 장비를 갖추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내는 지혜다.

💭 에디터의 단상

6년 전 멈춰야 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준비물을 체크하며 느낀 것은, 우리가 살면서 정말 필요한 것이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이다. 가방의 무게를 줄이는 과정은 내 삶의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내는 연습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젊은 날의 무모함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치환된다. 건강하게 걷고, 많이 보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기록이 혹시 산티아고를 꿈꾸는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이제 떠날 준비를 마쳤다.

200유로의 현금을 챙기며 "훔쳐가지 마라 🤬"라고 농담을 던질 여유가 생긴 걸 보면, 이제 정말 출발할 때가 된 모양이다. 고마운 이들의 마음을 하나씩 배낭에 짊어지고, 세상에서 가장 긴 길 위로 나아간다.
제주삼다수 그린 무라벨, 2L, 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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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온 만큼, 젊은 나이인 만큼 정말 열심히 잘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800km의 끝에서 마주할 풍경이 벌써 기다려진다. 그곳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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