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존재할까? 1분 과학으로 보는 존재의 비밀

세상은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을까? 인류가 태동한 이래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던져온 이 원초적인 질문에 대해, 우리는 종종 ‘우주’라는 거대한 배경을 상정하고 그 안의 사물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답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이 ‘견고한 세상’이 사실은 학습된 이름들과 가상의 경계가 빚어낸 거대한 착각이라면 어떨까. 오늘 우리는 세상은 왜 없지 않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통해, 감각의 복원과 존재의 탄생, 그리고 그 환상 뒤에 숨겨진 인간 인식의 비밀을 파헤쳐보려 한다.

감각의 복원: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고통

시력을 되찾은 이들의 절망적인 일화

올리버 색스의 에세이 ‘보고 있되 보지 못하는 것’에는 ‘버질’이라는 남자의 비극적인 사례가 등장한다. 그는 세 살 때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었다가 50세가 넘어 수술을 받았다. 수십 년 만에 빛의 세계로 돌아온 그를 기다린 것은 환희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차라리 눈을 감고 사는 게 낫다"라고 탄식했다. 청력을 되찾은 작가 베벌리 비더만 역시 인공 와우 이식 후 47세에 처음 소리를 들었을 때 "딱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흔히 시각이나 청각의 회복을 신체 기능의 정상화로 여기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이들에게 세상을 다시 배운다는 것은 감각의 수용이 아니라, 기존에 없던 무질서한 정보를 의미 있는 데이터로 정제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교육 과정이다. 기쁨이 아닌 절망이 찾아오는 이유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본다는 행위’가 사실은 뇌가 사물과 배경을 구분하도록 끊임없이 훈련해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뇌과학적인 영역이다. MIT 뇌과학자 파완 시나의 ‘Project Prakash’ 연구는 시각 장애 아이들에게 수술을 제공하고 그 발달 과정을 추적했다. 수술 직후 아이들은 움직임을 인식하지 못했고, 공을 굴려줘도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 채 앞만 응시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듣고 있어도 듣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세상은 그저 알 수 없는 선과 색의 무질서한 파편에 불과했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배워서 익혀야 하는 능동적인 해석의 영역인 셈이다.

선과 표면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거짓말

수전 베리의 저서 ‘내게 없던 감각’에 등장하는 ‘리엄’의 묘사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는 세상을 "두 색이 만나는 지점인 선들"로 이루어진 풍경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방의 모서리, 계단, 타일의 균열이 그에게는 방대한 혼돈의 정보였다. 그는 무엇을 무시하고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판단해야 했다. 수전 베리는 빛이 표면에 선을 추가하는 현상을 ‘거짓말’이라 불렀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에게 시력을 되찾아주는 일은 의사의 외과적 술기보다 교육자의 언어적 개입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사물과 배경을 나누는 경계가 당연히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라 믿지만, 사실 그 경계는 우리가 세상을 정돈하기 위해 만든 가상의 약속이다. 만약 경계를 긋지 못한다면, 눈앞의 선이 벽의 금인지, 20m 아래 낭떠러지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방암 수술 후 재건 환자들이 겪는 우울증 역시 유사한 인식의 격변으로 읽힌다. 단순히 모양을 복원하는 것을 넘어, 신체의 감각과 형태에 대한 새로운 인지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환자들은 심리적 혼란을 겪는다. 2023년 국내 유방암 신규 환자가 약 3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하며 재건술 또한 보편화되었지만, 전여름 교수의 말처럼 유방재건은 외형 복원을 넘어 일상과 자신감을 재구성하는 심리적 치유 과정이 되어야 한다. 모양만 갖춘다고 존재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인식을 교정하고 스스로의 경계를 재설정하는 복잡한 적응의 시간이 뒤따라야만 진정한 ‘나’를 다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보고 있음에도 보지 못하는 이유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뇌 속에 저장된 '이름'과 '경계'의 틀에 맞춰 사물을 끼워 맞춘다. 보고 있다는 착각은 학습된 질서에 안주하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이름 붙여진 환상을 걷어내고, 무한한 인식의 파편 속에서 의미를 스스로 빚어내는 과정이다.

이름 붙이기: 존재를 고정하는 마법

색의 세분화와 인지의 확장

대부분의 남성에게 빨간색은 하나지만, 화장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루비, 버건디, 체리, 코럴, 로즈, 스칼렛, 크림슨 등 수십 가지로 나뉜다.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코카콜라의 빨강과 유튜브의 빨강은 결코 같은 색이 아니다. "색의 이름을 아는 자만이 그 색을 볼 수 있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언어는 인식의 틀을 결정한다. 이누이트 부족이 눈을 묘사하는 수십 개의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눈이 생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누이트 구성원과 서울 시민이 똑같은 눈을 본다고 해도, 그들이 느끼는 감각의 깊이는 언어의 수만큼 차이가 난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세상을 고정하는 마법이다. 이름을 붙여 경계를 짓는 순간, 무한히 흐르던 빛과 물리적 파동은 ‘눈’이라는 고유한 존재가 된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존재는 사실 언어라는 필터를 통과한 가상의 산물이다.

지각판이 솟아오른 땅, 산이라는 가상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라 말하지만, 사실 ‘산’이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정의일 뿐이다. 지각판이 이동하며 땅이 솟아오르는 역동적인 변화의 과정을 우리는 '산'이라는 이름으로 고정했다. 어디서부터가 산이고 어디까지가 평지인가? 인간이 경계를 그어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거대한 지각판의 움직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우리가 컵을 손으로 인지할 때, 컵과 공기를 구분하지만 실제로는 차가운 공기, 따뜻한 공기, 뜨거운 공기가 컵 주위를 감싸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그 공기 온도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네 가지 존재를 보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공기의 온도 변화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본질은 언제나 필요에 의해 탄생한다.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는 것은 존재할 필요도 없는 것과 같다.

📊 숫자로 보면

2020년 기준 국내 유방재건 방식 중 보형물 재건이 73.8%를 차지한다. 이는 빠르고 효율적인 형태 복원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경향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자가조직의 복잡한 감각적 재건이 가진 가치를 더 세밀하게 이름 붙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어떤 재건을 택하느냐는 환자가 암 치료 이후 자신의 신체를 어떤 '존재'로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선택이다.

“나”라는 허구와 세상의 창조

자석의 원리와 인간의 허구 믿기

수컷 매미는 큰 소리로 암컷을 부르고, 새들은 영역을 지키기 위해 지저귄다. 자극이 자극을 낳는 단순한 반응 알고리즘이다. N극이 S극을 끌어당기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허구를 믿는 능력을 가진 자석이다. "어제 본 키 큰 매미가 매력적인 목소리로 나를 유혹한다"는 문장을 만들 수 있는 건, 인간이 가상의 경계와 이름 붙이기라는 환상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때문이다. 뇌량이 절단된 환자의 우뇌 실험이 보여주듯, 우리는 언어적 논리 없이도 행동할 수 있지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언어라는 틀 안에서만 만들어진다. 우리는 인식의 바다 속에서 무엇을 하나로 묶고 무엇을 버릴지를 결정하며 세상을 창조한다. '나'를 믿는 순간, '내가 아닌 세상'이 자동으로 탄생한다.

와인잔과 얼굴이 하나인 이유

와인잔 그림을 보라. 경계를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검은색은 와인잔이 되고, 흰색은 마주 보는 얼굴이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두 존재의 윤곽선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와인잔을 만드는 경계가 곧 얼굴을 만든다. 둘은 분리할 수 없다. 우리가 세상에서 보는 '왼쪽'과 '오른쪽', '빛'과 '어둠', '나'와 '세상'은 사실 하나인 것을 둘로 나눈 가상의 경계일 뿐이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존재가 생기고, 그 존재는 다시 세상과 대립한다. 이러한 인지 구조는 암 치료 이후 환자가 겪는 삶의 질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암을 '치료의 대상'으로 정의하고, 재건을 '복원의 대상'으로 정의하는 순간 세상은 그 관점에 따라 재편된다. 유방암 재건술 중 DIEP(심부하복벽동맥천공지피판) 재건 같은 고난도 미세수술은 혈관을 직접 연결해 조직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이는 단순한 외형 복원을 넘어 ‘나’라는 존재의 경계를 다시 구축하려는 절박한 투쟁이다. 자가조직을 이용해 형태를 만드는 과정은 곧 잃어버린 자아의 일부를 다시 존재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 에디터의 단상

우리는 스스로 신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만든 환상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취재한 감각 복원의 과정들은 단순히 의학적인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얼마나 끈질기게 자신을 둘러싼 경계를 재확인하고, 그 안에 이름을 붙여 삶의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하는지를 보여준다. 수술 후 우울증이 찾아오는 것도 어쩌면 변화한 신체라는 새로운 현실에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해서 생기는 과도기적 불안일 것이다.

결국 내가 세상을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내 세계의 크기를 결정한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도, 환희도 모두 스스로 그은 경계 안에서 피어나는 꽃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세상에 붙여야 할 이름은 무엇일까? 그 고민 자체가 우리가 이 세상을 존재하게 만드는 가장 위대한 증거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역설: 믿음 없는 곳엔 아무것도 없다

과거와 미래라는 거대한 허구

과거는 우리가 기억이라 부르는 현상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과거를 떠올리는 행위 자체가 현재의 사건이다. 미래 또한 지금의 추측에 불과하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지워버리면, ‘지금 이 순간’조차 존재할 수 없다. 현재라는 개념은 과거와 미래가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모든 믿음을 제거하면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그 ‘아무것도 없음’이야말로 우리를 묶어두는 환상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일 수 있다. 몰입의 순간을 기억하는가? 음악과 하나가 되어 ‘나’라는 개념이 사라졌을 때, 시간은 증발한다. 그때 우리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가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순수한 존재’의 상태다. 이야기가 사라진 그곳엔 이름 없는 느낌의 홍수만이 흐른다. 우리는 그 순간을 다시 붙잡기 위해 서둘러 ‘나’를 다시 소환하고, 세상에 이름을 붙이며 동화 속으로 돌아온다.

결국, 세상을 만드는 건 우리다

세상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끊임없이 세상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게 수만 장의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며 ‘강아지라는 존재’를 가르치는 우리의 노력은, 결국 인간이 구축한 이 환상적 세계에 기계까지 초대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기계는 결코 인간처럼 허구를 믿지 못한다. 인간은 허구를 믿는 능력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는 유일한 자석이다. 우리는 지금 죽음과 삶, 무와 무한이라는 거창한 이름들로 다시 경계를 짓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 세상을 없지 않게 만드는 힘이 바로 당신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컵, 나무, 하늘, 그리고 ‘나’라는 존재까지, 이 모든 것은 당신이 경계를 긋고 이름을 붙였기에 탄생했다. 당신은 그저 세상에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존재하게 만드는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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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도 세상을 선택하고, 경계를 긋고, 기꺼이 환상을 믿기로 했다. 텅 빈 우주에 이름을 붙여 별자리를 만드는 이 대담한 행위야말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오만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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