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 지명설과 이준석 영입론 뒤에 숨겨진 서글픈 정치판의 민낯

정치판을 보고 있으면 가끔 거대한 연극 무대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각자 맡은 배역에 취해 대사를 읊조리지만, 관객의 눈에는 그들의 밑천과 모순이 너무나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 최근 여의도를 뜨겁게 달군 '용혜인 장관 지명설'과 '이준석 영입설'을 둘러싼 일련의 소동들을 지켜보며 나는 깊은 피로감과 동시에 서글픔을 느꼈다.

우리가 믿고 지지했던 진영의 논리가 얼마나 허약한 모래성 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혁신을 외치던 젊은 정치인의 밑바닥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생생하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이 아니다. 권력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향해 달리는 이들이 보여주는 지독한 인지부조화의 기록이다.

언제나 그렇듯 본질은 화려한 수사 뒤에 숨어 있는 법이다. 겉으로는 대의명분과 승리 공식 가득한 말잔치를 벌이지만, 그 내막을 뜯어보면 결국 얄팍한 셈법과 비겁한 생존 투쟁만 남는다. 오늘 나는 그 추악하고도 킹받는 정치판의 속살을 가감 없이 파헤쳐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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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영입설이라는 거대한 착각과 데이터의 배신

2030 남성 표심이라는 가상의 신기루

최근 민주당 주변을 서성이던 가장 황당한 뜬소문 중 하나는 단연 '이준석 영입 및 합당설'이었다. 워크숍 자리에서 2030 남성들의 표심을 잡아야 총선에서 승리한다는 그럴싸한 진단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준석이라는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참으로 안이하고 게으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특정 세대의 표심을 잡기 위해 그 세대의 '상징'이라 불리는 인물을 데려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초등학교 반장 선거 수준의 논리다.
하지만 차가운 데이터는 그들의 망상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개혁신당의 지지율은 고작 2% 안팎에서 횡보하고 있으며, 그토록 자랑하던 20대와 30대 남성층에서의 지지율 역시 1~3% 수준으로 무너진 지 오래다. 한때 10%를 상회하던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7%를 거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동안, 그들이 외친 '개혁'은 갈라치기와 혐오의 정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이준석을 영입하면 청년 표심이 따라올 것이라는 주장은 완벽한 가짜 뉴스이자 착각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를 품는 순간, 민주 진영의 든든한 버팀목인 2030 여성들과 전통적인 4050 지지층이 대거 이탈하는 참혹한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산수조차 못 하는 이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덤비는 꼴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온다. 정치는 수학이자 과학이지, 대중의 감상에 기대는 무속이 아니다.

📊 숫자로 보면

개혁신당의 핵심 지지 기반이라던 2030 남성 지지율이 최근 1~3% 대로 굳어졌다.

이는 이준석이라는 개인 브랜드가 가진 효용 가치가 이미 시장에서 완벽하게 소멸했음을 증명하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다. 데이터를 무시한 정치는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

복어 독에 취해 사위를 삼겠다는 황당한 엘리트 의식

민주당 내 중진 의원이라는 이가 과거 방송에 나와 "이준석을 사위 삼고 싶다"거나 "민주당으로 영입하고 싶다"고 했던 발언을 되짚어보면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는 상대가 가진 정치적 본질과 혐오의 서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꼰대식 온정주의의 극치다. 이준석은 맛있는 복어가 아니라, 다루지 못하면 온몸에 독이 퍼져 즉사하게 만드는 맹독성 복어에 가깝다. 그 독을 다룰 실력도 없으면서 그저 겉모습이 화려하다고 덥석 입에 넣으려는 미련함이란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가 추구해 온 정치적 궤적은 철저한 '적대와 배제'의 서사로 점철되어 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비난하고, 페미니즘을 악마화하며 얻은 일시적인 인기가 어떻게 영속적인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겠는가. 여의도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대중이 느끼는 진짜 분노와 피로감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
이준석이라는 카드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이다. 그것을 신상품인 양 포장해 아군으로 삼겠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 진영의 지적 나태함을 폭로하는 부끄러운 증거다. 이제는 그 얄팍한 동화책 같은 환상에서 깨어나 진짜 길바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용혜인 장관 후보 지명, 그리고 진영 내부의 민낯

첫 30대 워킹맘 장관 후보라는 상징성이 던진 돌

용혜인 의원이 성평등 가치를 실현하는 부처의 장관 후보로 지명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요동쳤다. 첫 30대 워킹맘이자 기성 정치권의 문법을 깨부수며 활동해 온 젊은 정치인의 등장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 충격은 엉뚱하게도 우리 진영 내부의 곪아 터진 상처를 후벼 파는 도화선이 되었다.
보수 진영의 악의적인 왜곡과 펨코 세력의 발작적인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던 바다. 그들에게 용혜인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남성 중심적 질서를 위협하는 가장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테니까. 진짜 충격적인 것은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커뮤니티와 스피커들의 야만적인 태도였다.
그들은 용혜인 의원의 비동의강간죄 입법 추진 이력 등을 꼬투리 잡으며, 그녀를 향해 입에 담지도 못할 비난을 퍼부어댔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과정은 너무나 순식간이었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논리는 보수 극우 세력의 그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했다. 참으로 씁쓸하고 킹받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

일부 민주 진영 스피커들은 용혜인 의원을 향해 "용페미", "체내 암덩어리" 같은 극단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이는 상대방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동료를 향한 잔인한 칼질이며, 결과적으로 이준석과 펨코의 공격 논리에 날개를 달아주는 이적 행위다.

누구를 위한 분노인가, 적과의 동침을 자처하는 이들

김용민(평화나무) 등 일부 영향력 있는 스피커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쏟아낸 거친 언사들은 내 눈을 의심케 했다. "용페미 기용", "총선 때 지려고 작정했나", "암덩어리" 같은 표현들은 언어의 폭력을 넘어 지독한 혐오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이재명 대표의 인사에 반기를 드는 것을 넘어, 후보자 개인의 인격을 말살하는 수준의 공격을 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들이 쏟아내는 분노의 종착지는 결국 어디인가. 그들이 용혜인을 난도질하는 사이, 이준석과 보수 언론은 신나게 이 떡밥을 물고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진정 진보 진영의 승리를 바라는 자들의 행동이란 말인가.
결국 그들의 비뚤어진 혐오는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한다던 이준석, 펨코 세력과 같은 배를 타고 정부의 실패를 바라는 기괴한 공생 관계로 흘러가고 있다. 아군을 찔러 대중의 말초적 도파민을 자극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 이러한 내부의 적들을 걸러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개혁신당의 몰락과 이준석의 내로남불 이중성

자강론의 파산과 사퇴 파동의 이면

창당의 깃발을 드높이 올렸던 개혁신당이 천하람 원내대표와의 충돌과 대표 사퇴 파동으로 창당 이래 최대의 파국을 맞이했다. 이준석 대표가 야심 차게 주장했던 '경기 남부 벨트 집중 출마(자강론)'는 당 내부에서조차 철저히 외면당했다. 당의 핵심 지도부라는 이들이 국민의힘 합류를 염두에 두고 몸을 사리며 딴 주머니를 차고 있었으니, 애초에 모래 위에 세운 당이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했다.
심지어 정국진 전 인사 등 내부 인사들의 폭로를 통해 이준석이 민주당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꼼수 사퇴를 감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독자 노선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던 청년 정치인의 원대한 포부는 결국 얄팍한 배신과 야합의 드라마로 막을 내리고 있다.
그가 보여준 정치는 새로운 비전의 제시가 아니라, 끊임없는 분란과 폭로를 통한 자가발전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더 이상 그 뻔한 레퍼토리에 속지 않는다. 권력의 언저리를 맴돌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을 보며, 한때 그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내 자신마저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 내로남불의 결정판

  • 타인에게는 무자비한 조롱과 비판을 가하면서 자신을 향한 비판은 고소와 차단으로 일관하는 졸렬함.
  • 표현의 자유를 전매특허처럼 외치던 이준석의 민낯은 결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범죄'라는 이중잣대였다.
  • 정치적 체급은 입담이 아니라 그 입담에 책임을 지는 태도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그는 끝내 배우지 못했다.

남에겐 조롱, 나에겐 차단이라는 쪼졸한 표현의 자유

이준석의 가장 킹받는 부분은 자신에게 향하는 비판에 대처하는 그의 유치 찬란한 태도에 있다. 그는 평소 자신을 향한 조그마한 비판적 목소리도 참지 못하고 '빛속 차단'과 법적 조치 운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현장을 방문했던 이들의 생생한 의견에 대해 고소 협박을 일삼고 피인망(MP4 저장)을 언급하며 겁박했던 일화는 그의 옹졸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대선 당시 족발 열차 논란으로 구두 발을 좌석에 올린 사진이 퍼져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소통 창구를 닫아걸고 비판자들을 차단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랬던 그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표의 페이스북에는 수시로 찾아가 조롱 섞인 댓글을 남기며 조롱을 일삼았다. 참으로 기가 차는 이중성이다.
자신이 휘두르는 칼날은 '표현의 자유'이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은 '법적 처벌 대상'이라는 그의 유아독존적 사고방식은 이제 대중에게 피로감을 넘어 혐오감을 준다. 남을 조롱하며 얻은 인기는 결국 자신도 똑같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 파멸할 때 비로소 멈추는 법이다. 그가 뱉은 침이 바람을 타고 정확히 자기 얼굴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묘한 인과응보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시대착오적 평론가들과 진영 내부의 청년 잔혹사

현실과 괴리된 훈수꾼들의 화려한 복귀

김갑수 평론가 같은 이들의 방송 복귀와 그들이 쏟아내는 평론들을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 언론 지형의 왜곡이 얼마나 심각한지 뼈저리게 느낀다. 그는 과거 "박정희를 받아들여라", "이준석과 정치적 제휴를 하라"는 등 현장 민심과 완전히 동떨어진 허황된 훈수를 두어 왔다. 미성년자 관련 부적절한 설화로 매불쇼에서 퇴출당했던 그가 자숙의 시간도 없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나와 복귀하는 모습은 뻔뻔함의 극치다.
그뿐만 아니라 김어준 공장장의 유튜브 성장을 엉뚱하게도 문재인 정부의 실책 탓으로 돌리는 등 사실관계마저 왜곡하는 평론을 버젓이 늘어놓는다. 이에 대해 고일석 기자 같은 이들이 팩트로 뼈를 때리는 비판을 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한 고인 물 평론가들이 마이크를 독점하고 앉아 진영의 눈과 귀를 가리는 현실이 참담하다.
그들은 대중의 분노를 먹고 자라는 기생충과 같다. 현실의 역동적인 변화는 읽지 못한 채, 방구석에 앉아 먹물 묻은 펜대로 세상을 재단하며 대중을 가르치려 든다. 이런 구시대적 인물들이 진보의 스피커로 대접받는 한, 진정한 세대교체와 혁신은 요원할 뿐이다.

💭 에디터의 단상

최근 민주당 당원 증명서(97년생)를 당당히 공개하며 얼굴을 까고 활동해 온 젊은 스피커 김승현 씨 등을 향해 우리 진영 내부에서 가해진 무차별적인 음해와 조리돌림을 보며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들은 커튼 뒤에 숨어 키보드로 온갖 배설을 쏟아내면서, 최전선에서 방패를 들고 싸우는 젊은이들의 신상을 털고 가짜뉴스를 퍼뜨렸다.
이것은 비겁함을 넘어 야만이다. 청년의 수혈을 외치면서 정작 피를 흘리며 싸우는 청년들의 등에 칼을 꽂는 진영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는가. 내부의 청년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소모품으로 버리는 정치는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 암세포가 될 것이다. 이제라도 그 잔인한 조리돌림을 멈추고, 진짜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얼굴 까고 싸우는 젊은 스피커들을 짓밟는 내부의 꼰대들

진영의 미래를 담보할 젊은 스피커들이 자라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외부에 있지 않다. 바로 내부의 기득권과 무지몽매한 극단적 지지층의 총질 때문이다. 김승현 씨 같은 청년들이 보여준 용기는 기성 정치인들의 겉치레 선언보다 백 배는 더 가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격려가 아닌 의심과 혐오였다. 조금만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프락치로 몰아가고 신상을 털어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드는 이 폭력적인 행태가 과연 우리가 꿈꾸던 민주주의인가. 이것은 괴물이 되어버린 괴물 사냥꾼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준석이라는 외부의 허상에 휘둘리고, 용혜인이라는 내부의 동지를 난도질하며, 젊은 인재들의 싹을 자르고 있다. 이 비극적인 삼박자가 어우러진 결과가 무엇일지는 보지 않아도 자명하다. 스스로를 혁신하지 못하는 정치 세력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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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모든 소동의 본질은 하나로 귀결된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진영이라는 달콤한 최면에 취해 이성을 상실한 자들이 벌이는 아수라장. 우리는 적의 얄팍한 수 싸움에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안목을 가져야 하며, 동시에 우리 내부의 상처를 가차 없이 도려내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남을 향한 손가락질을 거두고, 우리가 딛고 선 발밑의 진흙탕을 먼저 청소해야 할 때다.

과연 우리는 이 지독한 모순의 늪에서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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