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신건강의학과 문턱이 닳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특히 성인 ADHD 진단 건수가 최근 5년 사이 3배 이상 급증했다는 데이터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집중'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많은 이들이 "이거 혹시 나도 ADHD 아닐까?"라며 고민하고, 스마트폰 쇼츠의 짧은 자극에 뇌가 절여진 건 아닌지 불안해한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이 현상을 단순히 제약회사의 마케팅이나 의사의 과잉 진단으로만 치부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ADHD라는 증상을 과거보다 훨씬 세심하게 관찰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 사회적 맥락에 주목한다.
도대체 우리가 앓고 있는 이 '산만함'은 질병일까, 아니면 단순히 우리 환경이 한 사람의 고유한 에너지를 담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ADHD 진단 급증, 그 이면의 풍경을 읽다
진단은 늘어났지만, 제약회사의 농간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ADHD 진단 급증을 보며 거대 제약회사의 수익 창출 전략을 먼저 떠올린다. 병원 배후에 막강한 자본이 존재하고, 진단 기준을 조금만 완화해도 그들의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재천 교수는 한국의 의사들이 제약회사의 농간에 놀아나 판정 기준을 낮췄다고 보지 않는다. 이는 현대 의학의 데이터 축적과 진단 기술의 정교화,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의 인식이 높아진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과거에는 '유난히 부산스러운 아이'로 치부하고 넘어갔던 행동들이 이제는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확인되고, 적절한 치료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우리가 '병'이라고 부르는 것의 범위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변한다. 더 이상 아이들을 무작정 야단치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우리 사회가 생물학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진단 열풍이 혹여나 '정상'의 범위를 좁히고 개개인을 약물에만 의존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진단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단 이후의 삶'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단순히 ADHD 환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가진 독특한 뇌 회로를 사회가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지점까지 나아가야 한다.환경이 사람을 산만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최재천 교수는 스스로를 "어릴 적 ADHD 진단을 받았다면 백발백중 약을 먹었을 아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유리창을 닦고 다니거나, 공부하는 5분 동안 연필만 깎는 등 극도의 산만함을 보였다. 아버지는 그에게 '연필깎이'라는 별명을 붙였고, 가족 산책에서 배제당하기 일쑤였다. 만약 그가 지금의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만 자랐다면, 평생을 '부적응자' 혹은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살았을 확률이 높다. 한국의 교육과 노동 환경은 유독 '엉덩이의 힘'을 숭배한다. 책상 앞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느냐가 그 사람의 성실성과 능력을 판가름하는 척도다. 뇌가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원하고,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고정된 환경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이 시스템은 ADHD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으며, 그들의 에너지마저 '산만함'이라는 이름으로 뭉개버린다. 결국 지금 우리 사회가 ADHD 진단으로 고민하는 상당수는 개인의 뇌 기능 문제라기보다, 개인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단조롭고 정적인 사회 환경과의 불화일 가능성이 크다.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인 집중력을 요구하는 방식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진단율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몰입을 허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이다.🔥 왜 우리는 ADHD를 '질병'으로만 규정하려 하는가?
우리 사회는 한편으로는 '몰입의 천재'를 칭송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행동을 '산만함'이라 비하하는 이중적 잣대를 들이댄다. 진짜 문제는 ADHD 증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증상을 개인의 의지력 부족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시선이다.
현대 의학은 명확한 데이터로 도움을 주지만, 의사가 아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아이들을 병원으로 내몰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아이가 무엇에 진정으로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일이다.
몰입과 산만의 경계, 그 한 끗 차이
전공 선택이 가져온 삶의 전환점
최재천 교수의 삶은 일반적인 학자와는 달랐다. 그는 평생을 책상 앞에 앉아 논문을 읽기보다, 정글을 헤매고 물가에서 채집 활동을 하는 데 보냈다. 주변에서는 "공부하는 사람 맞느냐"며 비아냥거렸지만, 그는 자신의 성향과 정확히 일치하는 분야를 선택했다. ADHD 성향의 핵심은 에너지가 넘치고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를 거부하는 환경이 아니라 분출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이니 그 에너지는 곧 학문적 성취가 되었다. 많은 성인 ADHD 진단자들이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할 곳을 찾지 못해서다. 실제로 사회초년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직장 생활에서 ADHD 증상으로 겪는 대인관계나 마감 압박은 그들의 자존감을 끊임없이 갉아먹는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자신만의 '루틴'과 '시스템'을 구축해 극복한다. 투두 리스트 작성, 시간 타이머 활용 등 외부 도구를 통해 부족한 실행 기능을 보완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은 '치료'가 아니라 '환경 적응'이다. 최재천 교수가 정글을 택했듯, ADHD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는 자신의 뇌가 가장 기쁘게 반응하는 환경을 찾아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은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다. 환경이 맞으면 사람은 변한다. 아니,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발휘하기 시작한다.공부라는 단 하나의 잣대가 만든 비극
부모들은 흔히 아이가 '공부'라는 정해진 틀 밖에서 무언가에 몰입하면 불안해한다. "지금 그걸 할 때냐, 공부해야지"라는 말은 아이의 잠재력을 가로막는 가장 치명적인 언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만났을 때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 몰입의 에너지는 공부를 안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성인 ADHD 환자들의 강점 중 하나는 '과집중(Hyperfocus)'이다. 관심 있는 주제에는 몇 시간이고 푹 빠져버리는 능력이다. 창의적 돌파구는 보통 여기서 나온다. 그런데 우리 교육 현장은 이 에너지를 '공부'라는 좁은 통로로만 몰아넣으려 한다. 이 통로를 통과하지 못하면 무조건 '부주의한 아이'가 된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아이가 무엇에 몰입하는지, 그 대상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창의성을 품고 있지는 않은지 관찰해야 한다. ADHD 경계선에 있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좌절하기 전에, 그들이 가진 에너지를 생산적인 곳으로 돌릴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자 사회의 책임이다.💡 ADHD 성향, 건강한 어른이 되기 위한 팁
- 외부 시스템 구축: 알람, 캘린더, 투두 앱을 적극 활용해 두뇌 용량을 아껴라.
- 작업 분해하기: 큰 업무는 5분 단위로 쪼개어 성취감을 자주 느껴라.
- 몰입처 찾기: 공부가 아닌 영역에서 자신이 미칠 수 있는 취미를 확보하라.
- 환경의 최적화: 자신의 성향과 가장 잘 맞는 업무 환경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 사회의 닫힌 문을 열며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비판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포용적 복지와 사회적 약자 보호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ADHD 담론은 매우 흥미롭다. 보수 세력이나 과거 윤석열 씨가 이끄는 정부 체제 하에서는 모든 문제를 '개인의 불성실'이나 '자기 관리 실패'로 돌리곤 했다. 하지만 진정한 공동체라면,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병으로 규정하고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발 딛고 서 있을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ADHD 진단이 늘어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해 우리가 그동안 소외시켰던 사람들을 이제야 발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회는 여전히 획일적인 속도와 집중력을 강요한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의 속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경직성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이제 '산만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그것은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제약회사의 이익이나 의사의 진단 건수 같은 통계 수치 뒤에 가려진 '한 인간의 고유한 에너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조금만 더 열린 마음으로 부산스러운 이들을 지켜본다면, 지금보다 훨씬 다채롭고 창의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의학적 도움을 부정하지 말되, 눈은 아이에게 두라
최재천 교수의 말처럼 의학적 데이터와 현대 정신의학의 성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면 당연히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병원에 가기 전, 부모와 어른들이 해야 할 선행 작업이 있다. 바로 아이가 무엇에 열광하고 어디에서 에너지를 얻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저 같은 사람도 좀 살아남아야 하니까요"라는 최 교수의 소회는 뼈아프다. 만약 그가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아이로 자라났다면, 그의 그 창의적인 부산스러움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약물로 눌러졌을지도 모른다. 그가 생태학자로서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산만함을 '질병'이 아닌 '재능'으로 꽃피울 환경을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ADHD라는 낙인을 찍기 전에, 그 아이가 숲에서 무엇을 보는지, 물가에서 어떤 생명을 관찰하는지 먼저 물어봐 줄 수는 없을까. 부산스러운 아이들이 사회의 부적응자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혁신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것이 우리가 ADHD라는 현상을 마주하는 가장 성숙한 방식일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부산스러운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나는 우리 사회가 ADHD를 다루는 방식에 늘 씁쓸함을 느낀다. 모두가 똑같은 속도로, 똑같은 집중력을 발휘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강박은 우리를 점점 더 차갑게 만든다.
최재천 교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얼마나 아이들의 고유한 속성을 '병'으로 치부하며 그 가능성을 잘라내 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 또한 어릴 적 무언가에 꽂히면 밤을 새우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학교 성적과 직결되지 않으면 곧바로 '집중력 결핍'이라는 딱지가 붙곤 했다. 어쩌면 문제는 뇌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좁은 문이 아닐까? ADHD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규정하기 전에,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어디인지 고민하는 시간만큼은 반드시 필요하다.
병원은 그다음이다. 부디 우리가 서로의 산만함을 '몰입의 전주곡'으로 읽어줄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엉뚱한 연필을 깎고 있는 그 아이가,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예술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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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도 '집중'이라는 단어에 갇혀, 우리 내부의 펄떡이는 에너지를 잠재우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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