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 SNS 리트윗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요즘 정치인들의 SNS를 보고 있으면 한숨부터 나올 때가 많다. 특히 최고 권력을 쥐거나 그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 올린 글 하나가 온 진영을 흔들어놓는 걸 보면, 과연 이들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 진짜 민심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최근 이재명 대표의 SNS 리트윗 논란을 보며 느낀 감정도 정확히 그 지점에 닿아 있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고 믿었던 유튜브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럴싸한 일성 뒤에는, 여전히 지지층 내부의 갈등을 부추기고 외연 확장을 스스로 가로막는 아슬아슬한 낙하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좁은 방 안에 갇히게 만들었을까. 이 사안이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정치 소통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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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SNS와 '친구들'이 만들어낸 씁쓸한 풍경

이재명 대표가 인용한 계정들과 논란의 본질

이번 논란의 시작은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SNS에 공유한 글 하나였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유튜브 채널이 알려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지 말자"는 문장으로 시작된 이 게시물은 겉보기엔 주권자의 주체적인 각성을 촉구하는 명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글을 타고 들어가 인용된 계정의 실체를 마주하면 찬물이 끼얹어지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타인클럽' 같은 계정들이 품고 있던 날 선 메시지들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원래 적폐다"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거나, 그 배후에 특정 세력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는 식의 주장들이 스스럼없이 공유됐다.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허탈해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 나라의 변화를 이끌어야 할 정치 지도자가 가감 없이 리트윗한 글들이 결국 진영 내부를 갈라치고 상처 주는 낙인찍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화자가 방송에서 토로했듯, "대통령께서 좀 엑스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라는 절규는 단순한 투정이 아니다. 과거 김어준, 유시민, 정봉주, 문재인, 양정철, 윤석열, 조국, 최강욱, 최민희, 주진우 등에 이르기까지 거론된 수많은 정치적 동반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재명을 고립시키거나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을 경계해야 할 판에, 오히려 최고 권력자 스스로 편 가르기의 최전선에 서 있는 모양새니 한탄이 나올 밖에 없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정치 참여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학술 연구들을 살펴보더라도, 정치인의 SNS 메시지가 지지층을 결집하는 양날의 검이라는 점은 명백히 드러난다.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표현형·관계형 플랫폼에서 정치인이 공유하는 콘텐츠는 단순한 개인의 소회를 넘어 거대한 정치적 시그널로 작동한다.

팔로잉하는 계정의 성격과 리트윗하는 글의 결은 곧 그 정치인이 어떤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세상을 바라보는지 증명하는 성적표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글을 다 동의해서 리트윗한 것은 아니다"라는 해명으로 일관하기엔, 그동안 쌓여온 누적된 피로감이 너무나 크다.

뉴이재명 세력의 명비어천가와 민심의 괴리

대통령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이른바 '뉴이재명 세력'의 행태는 이 괴리를 더욱 벌려놓고 있다. 이지은 위원장, 강지오, 김대오를 비롯해 시사타파 이종원 PD, 시사건건, 조성은 작가 같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공기는 철저하게 성군을 찬양하는 현대판 '명비어천가'에 가깝다.

방송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끊임없이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추켜세우고, 조금이라도 쓴소리를 하는 이들은 '분탕 세력'으로 몰아붙인다. 이러한 찬가의 합창 속에서 당사자는 "내가 정말 잘하고 있구나"라는 위험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생각해 보면 이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고 권력이 집중될수록 권력자의 주변에는 쓴소리를 하는 참모보다 달콤한 말을 건네는 측근들이 득실거리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달콤함이 결국 30%대 지지층의 성벽에 스스로를 가두는 유독성 가스가 된다는 점이다. 진보 진영 전체를 포섭하고 중도층까지 끌어안아 과반의 지지를 다져도 모자랄 판에, 내부의 전통적 지지층인 '문조틀레유'(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대표를 지지하는 이들을 깎아내리는 멸칭)를 척결 대상처럼 대한다면 남는 것은 고립뿐이다.

한동훈이나 보수 세력과의 대결은 둘째치고, 우리 편 안에서도 생각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등을 돌리게 만드는 정치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김남준 의원이 청와대 대변인 시절부터 유시민 작가의 발언을 향해 "쓴소리라기보다 독설에 가깝다", "진중권이 됐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선을 긋고 배제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은 이러한 당내 역학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시민 작가나 시사타파 같은 이들을 포섭 대상에서 아예 지워버리고 척결해야 할 적폐처럼 다루는 순간,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예술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대통령이 모두의 대통령이 되려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구구 세력이나 보수 진영까지 품어야 마땅한데, 정작 나와 결이 조금만 달라도 품지 못하는 편협함이 청와대 안에서부터 스며 나오고 있는 셈이다.

🔥 끼리끼리 뭉쳐서 적을 만드는 정치가 자초한 고립

권력이란 원래 주변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두기보다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이들로 채워지기 쉬운 법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치명적이다.

30%의 견고한 성벽 안에 갇혀 스스로를 성군이라 칭송하는 동안, 바깥세상의 민심은 이미 차갑게 식어버릴 수 있다.

영웅적 서사와 구중궁궐이 만든 알고리즘의 감옥

개천에서 용 난 자수성가형 엘리트주의의 함정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틱한 영웅 서사다. 대한민국 하층민 중의 하층민, 선형공과 소년공으로 시작해 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거쳐 검정고시와 사법시험 합격, 그리고 인권변호사를 거쳐 거대 야당의 대표를 넘어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 눈물겨운 자수성가의 과정은 수많은 서민들에게 대리만족과 엄청난 정치적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악에 받쳐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자부심은 그 어떤 엘리트 출신 정치인도 흉내 내기 힘든 강력한 생존력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아이러니한 부작용이 고개를 든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옥 같은 현장을 뚫고 성공을 거머쥔 이들은 대개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왜냐하면 그 긴 세월 동안 늘 자신의 판단이 옳았고, 남들의 만류나 회의를 무릅쓰고 돌파했을 때 비로소 성취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고생이 없고, 나보다 못난 사람들의 말에 휘둘렸다면 나는 벌써 끝났어"라는 무의식적 확신이 자리 잡기 쉽다.

이는 곧 은근한 엘리트주의적 성향 혹은 자수성가형 오만함으로 이어져, 정작 평범한 대중이나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차단하는 장벽이 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당했던 수많은 정치적 박해와 윤석열 정부 시절의 가혹한 탄압,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던 극한의 경험들은 이러한 방어 기제를 더욱 공고히 만들었을 것이다. "나를 죽이려 했던 적들에 맞서기 위해선 오직 내 판단과 나를 무조건 믿어주는 사람들만 필요하다"는 논리가 머릿속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개인이 살아온 상처를 보상받는 자리가 아니라, 수천만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묵묵히 척추처럼 떠받쳐야 하는 공적인 그릇이다. 과거의 영웅 서사에 취해 "내 말이 곧 정의이고 법이다"라는 태도를 고수하는 순간, 서민을 대변하겠다던 대통령은 어느새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는 불통의 아이콘으로 전락하고 만다.

청와대라는 성벽과 빠져나올 수 없는 알고리즘의 감옥

여기에 물리적인 공간이 주는 한계가 겹친다. 속칭 '구중궁궐'이라 불리는 청와대와 대통령실의 삼엄한 경호와 차단된 공간은 살아있는 민심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다.

박시영 TV의 회식 자리나 여러 정치 평론가들이 지적했듯, 오늘날 권력자들을 가두는 가장 무서운 감옥은 물리적 벽이 아니라 바로 디지털 알고리즘의 감옥이다. 스마트폰을 켜면 자기를 칭송하는 뉴이재명 채널들의 영상이 맞춤형으로 쏟아지고, 댓글 창에는 온통 성군을 찬양하는 목소리만 가득한데, 어느 누가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겠는가.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욕하고 깎아내리는 채널을 오래 보지 못한다. 아무리 멘탈이 강한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하루 종일 악플과 비판적 평론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정신이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위로해주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우호적인 알고리즘의 바다로 도피하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뉴스공장이나 매불쇼 같은 대형 채널들은 그나마 흐린 눈으로 보아 넘기겠지만, 자신을 향해 뼈 때리는 비판을 가하는 채널이나 유시민 작가 같은 이들의 쓴소리는 기꺼이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오로지 '명비어천가'를 불러주는 친위 유튜브 채널들과 커뮤니티의 왜곡된 여론뿐이다.

이러한 알고리즘의 감옥에 갇히는 순간, 현실 인식은 완전히 망가지기 시작한다. 거리의 민심은 물가 폭등과 민생탄식으로 들끓고, 중도층은 정부의 독주에 등을 돌리고 있는데, 청와대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우리 대통령님을 지키기 위해 결사 항전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빛의 전쟁터"로만 보이는 것이다.

민심과 정권의 인식이 이토록 완벽하게 괴리될 때, 그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폭압적인 정권 말기의 몰락뿐이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가상의 바다에서 헤엄치며 현실의 파도를 보지 못하는 권력에게 미래는 없다.

📊 디지털 고립이 가져오는 위험한 착각

소셜 미디어와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보고 싶어 하는 정보만 무한정 공급하는 확증 편향의 온실이다.

정치인이 이 가상의 온실에 갇히는 순간, 30%의 지지율이 100%의 민심으로 착각되는 거대한 인지 부조화가 발생한다.

반복되는 일베 인용 논란과 무너진 진정성의 양치기 소년

혐오 세력의 배설물을 퍼 나르는 플랫폼의 추락

이번 리트윗 논란이 특히 뼈아픈 이유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뉴이재명 계열의 채널들이나 지지층 커뮤니티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고 극단적인 혐오 표현을 일삼던 일베(일간베스트) 출신의 자료나 문구들을 여과 없이 가져와 퍼 나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 여러분들 내용이 맞잖아요", "과거는 과거인데 그걸 언제 다 검증합니까"라는 식의 안일한 태도가 반복되면서, 진보 진영의 가치와 도덕성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보수 혐오 커뮤니티의 배설물과 다름없는 글들을 팩트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공유하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가 악마화하던 세력들과 닮아가는 모순을 저질렀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 상징성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의 도덕적 기준선이자 역사적 정당성의 최후 보루여야 한다. 그런데 그런 최고 권력자가 혐오와 조롱이 난무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부산물들을 SNS를 통해 전파하고 있다면, 이는 단순히 "실수로 몰라봤다"는 변명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나 야권의 주요 인사들을 조롱하던 이들이 쓰던 표현이나 논리가 정권의 수뇌부 SNS에 버젓이 오르내리는 광경을 지켜보는 지지자들의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싸우던 상대가 바로 이런 혐오였는데, 어째서 우리 지도자가 그 혐오의 생산지와 손을 잡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이 밀려오는 것이다.

정치인 SNS의 실효성과 역설을 다룬 연구들에 따르면, 대중은 정치인의 말보다 그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고 어떤 레퍼런스를 공유하는지 그 '관계적 네트워크'를 통해 진짜 정체성을 파악한다. 아무리 입으로는 "더 나은 세상"과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외쳐도, 그 뒤편에서 일베류의 편 가르기 글을 리트윗하고 멸칭을 일삼는 이들을 감싸 안는다면 그 메신저의 진정성은 박살이 날 수밖에 없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꾸짖기 전에, 양심의 기준 자체를 흐리멍덩하게 만드는 본인의 손가락부터 단속해야 마땅하다.

양치기 소년의 비극, 진실마저 외면받는 순간

이 모든 상황은 고전적인 동화 속 '양치기 소년'의 우화를 정확하게 빼다 박았다. 장난삼아, 혹은 자신의 진영을 결집시키기 위한 편의상 늑대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늑대가 나타났다!"고 끊임없이 거짓 경보를 울려대던 소년의 이야기 말이다.

처음 한두 번은 마을 주민들이 깜짝 놀라 달려와 주었지만, 소년의 거짓말이 반복되면서 주민들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정작 진짜 늑대가 나타나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이 닥쳤을 때, 소년이 아무리 목이 터지게 진실을 외쳐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과 그 주변 세력이 마주한 현실이 바로 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동안 수없이 편파적인 채널들을 감싸고, 갈등을 조장하는 글들을 리트윗하고, "어쩔 수 없었다",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해 오지 않았는가. 그러다 보니 진짜로 국가의 위기 앞에서 "주권자로서 당당한 의견을 표명하자"며 진심 어린 호소를 던지더라도, 대중은 더 이상 그 말을 곧곧이 곧이듣지 않는다. "저 말도 또 자기네 진영 지지율 올리려고 던지는 레토릭이겠지", "또 어떤 꿍꿍이가 숨어 있을까"라는 불신과 냉소가 먼저 튀어나온다.

신뢰라는 자산은 쌓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단 한순간이며, 한 번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화자가 안타까워하며 지적한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통령의 진심이 무엇이건 간에, 그동안 쌓아온 전과(前科)와 주변을 채운 인물들의 행태가 이미 99.9%의 불신을 만들어놓았다.

"내가 누군가의 글을 인용하는 것은 그의 모든 과거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해명문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메아리일 뿐이다. 스스로 양치기 소년이 되어 늑대 타령을 일삼은 결과, 이제는 정말로 국민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 순간에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고립무원의 사막에 홀로 남겨진 셈이다.

이 씁쓸한 고립을 자초한 이가 과연 누구 탓을 할 수 있겠는가.

💭 신뢰를 잃어버린 권력이 마주하는 가장 차가운 침묵

정치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비판이나 분노가 아니다. 진정한 공포는 대중이 아예 관심을 끊고 차가운 눈으로 등을 돌려버리는 '무관심'과 '불신'이다.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로 깨어있는 시민의 실천을 촉구해도, 그 말을 뱉는 이의 손에 쥐어진 과거가 오염되어 있다면 그 외침은 단 한 사람의 마음도 울리지 못하는 빈 깡통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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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정점에 선 이가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편협한 알고리즘의 감옥과 명비어천가의 합창 속에 갇힐 때, 그 정권이 향할 곳은 역사의 진보가 아니라 깊은 퇴행뿐이다.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남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이 과연 빛인지 어둠인지부터 똑바로 응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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