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화면 너머로 들려오는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밤이다. 요즘 돌아가는 정국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홍익표 정무수석의 발언을 보면서 나만 이렇게 짜증이 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지율이 계속해서 깎여 나간다는 것은 청와대도 지금 상황이 매우 다급하다는 뜻일 텐데, 그 자리에 나와서 내놓는 해답이라는 게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김어준이 질문을 던지며 진흙을 계속 굴려봐도 시원한 답이 안 나오자 결국 홍익표가 직접 등판한 셈이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지지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는 과연 이 심각한 분열과 민심 이반을 수습할 해법을 가지고 있는가. 홍익표는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이른바 '문조털레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한강에셋똥대죽일'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단어를 입에 올리며 "다 잘못했다"는 식의 전형적인 양비론으로 판을 덮어버렸다. 학폭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피해자를 두들겨 패서 피해자가 겨우 비명을 질렀는데, 사태를 방관하거나 빌미를 제공한 사람이 나타나 "야, 둘 다 똑같이 잘못했으니까 서로 화해해"라고 어깨를 툭 치는 꼴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이런 무책임한 태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홍익표의 뉴스공장 출연과 무책임한 양비론의 실체
지지율 하락이 불러온 다급한 등판과 민심의 괴리
홍익표 정무수석의 뉴스공장 출연은 그 자체로 현 정권이 마주한 위기의 깊이를 증명한다.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청와대 내부를 휘감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어준이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지며 국정 운영의 허점을 파고들었지만, 홍익표가 들고 나온 것은 근본적인 성찰이나 정책적 전환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지율이 깎였구나. 청와대도 급하다는 뜻이다"라는 해석을 불러일으킬 만큼, 현재 청와대가 느끼는 다급함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씁쓸하게 보여줄 뿐이었다.
정치적 갈등이 고조될 때 참모진의 역할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민심의 바닥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출연에서 확인된 것은 참담한 수준의 인식이었다. 정서적 양극화가 극에 달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보듬기는커녕, 모든 책임을 양쪽 모두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은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원리를 망각한 처사다. 최근 정치학 연구에 따르면 유권자들의 선택은 상대 정당에 대한 적대감과 실망감에 크게 좌우된다고 하는데, 청와대는 여전히 이 거대한 민심의 파도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지지층의 이탈을 가속화할 뿐이다. 겉으로는 소통하는 척하면서 실상은 책임을 회피하는 방어기제만 작동하고 있으니 참담하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엉뚱한 핑곗거리를 찾아내어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이대로 간다면 서울시장 보궐선거 같은 거대한 정치적 심판 앞에서 아무런 방어막도 치지 못하고 무너질 게 뻔하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지우는 양비론의 폭력성
홍익표가 방송에서 보여준 양비론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폭력에 가깝다. 학폭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고 피해자가 겨우 한번 '삐약' 소리를 낸 것을 두고 둘 다 똑같이 잘못했다고 몰아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권력을 가진 쪽과 비판하는 쪽의 무게중심이 전혀 다른데, 이를 기계적으로 중립인 척 포장하는 태도는 비겁하다. "둘 다 잘못했으니까 서로 화해해"라는 식의 중재는 갈등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부당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일 뿐이다.
이러한 양비론은 결국 정치적 책임소재를 흐리멍덩하게 만든다. 잘못한 쪽에는 면죄부를 주고, 정당한 비판을 제기하던 쪽에는 입을 다물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한다. 청와대 정무수석이라는 자리가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해야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이런 식의 물타기 화법을 구사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김어준조차 참기 힘들었는지 문조털레류를 공격했던 맥락을 짚으며 꽤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음에도, 끝내 본질을 피하며 도망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 처량하기까지 했다.
정치가 신뢰를 잃는 순간은 언제나 진실을 외면하고 편의주의적 타협을 선택할 때다. 양비론은 늘 가해자의 편에 서기 마련이다. 약자와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워버리고 상호 비방이라는 프레임 속에 모든 정치적 책임을 가두어버리는 순간, 민주주의의 자정 능력은 멈춰 서게 된다. 홍익표의 입에서 나온 그 수많은 말들 속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개혁의 의지가 아니라 어떻게든 책임을 면해보려는 관료적 안일함뿐이었다.
🔥 기계적 중립이라는 이름의 폭력
권력의 비대칭성을 무시한 채 양쪽 모두를 비난하는 양비론은 결국 강자의 손을 들어주는 치졸한 방어 기제에 불과하다.
진실을 외면하고 갈등을 봉합하려는 태도는 정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끌어내릴 뿐이다.
'한강에셋똥대죽일'이라는 유령 밈과 청와대의 과도한 집착
시중에 쓰이지도 않는 단어를 소환한 의도
홍익표가 방송에서 꺼내든 '한강에셋똥대죽일'이라는 기괴한 조합의 단어는 그야말로 황당 그 자체였다. 이 단어의 출처를 추적해 보면 딴지 게시판 등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 문조털레류 조롱에 대한 미러링 공격으로 누군가 재미 삼아 조합해 본 것에 불과하다. 새는 김민석, 똥은 이동영, 돼는 김용민 목사, 주는 이연주, 길은 송영길, 강은 강득구 등으로 엮어 만든 이 말은, 실제 대중들 사이에서는 전혀 쓰이지도 않고 휘발되어 버린 유령 같은 단어였다.
아무도 퍼 나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그라든 커뮤니티의 잔해 같은 밈을, 청와대 정무수석이 공식 방송에 나와 심각한 표정으로 지적했다는 사실 자체가 소름 돋는 일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청와대가 딴지 게시판을 비롯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시시각각 집요하게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최고 권력자의 눈과 귀에까지 이런 사소한 배설물 같은 글들이 실시간으로 보고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핵심 참모들이 민생을 챙기는 대신 이런 커뮤니티 여론이나 뒤적이며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대중의 바다에서 생겨난 수많은 파장 중 유독 비판적이거나 입맛에 거슬리는 몇몇 파편만 쥐고 흔들며 "너희도 이런 혐오 표현을 쓰지 않느냐"고 훈장처럼 내세우는 꼴이다. 시중에 자취조차 없는 단어를 마치 거대한 세력의 음모나 되는 마냥 침소봉대하여 양비론의 근거로 삼는 것은,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치졸한 물타기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의 시선이 향해야 할 곳은 민생의 현장이지, 캄캄한 방구석 커뮤니티의 익명 게시판이 아니다.
혐오와 조롱의 미러링이 남긴 씁쓸한 상처
우리 안의 진보 진영이 혐오와 조롱의 정치를 싫어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상대가 먼저 보낸 저열한 공격에 맞서기 위해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자조적인 단어들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 스스로 그 방식을 혐오하기 때문에 그런 밈들은 길게 살아남지 못하고 스스로 도태되었다. "우리는 이런 혐오와 조롱의 문화, 이 방식을 너무 싫어합니다. 이런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퍼지지 않은 겁니다." 이 말처럼, 대다수의 평범한 지지자들은 진흙탕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익표 같은 정권의 핵심 인물들은 사그라든 밈까지 기어이 발굴해 와서 "양쪽 다 혐오를 부추긴다"는 식으로 싸잡아 비판했다. 이것은 폭력을 당한 이에게 "너도 고운 말은 안 쓰지 않았냐"며 뺨을 때리는 행태와 다름없다. 자정 능력을 발휘해 스스로 걷어낸 혐오의 흔적까지 끄집어내어 면죄부의 도구로 쓰는 청와대의 비루한 인식 수준에 절망하게 된다. 정치가 시민들의 상처를 보듬기는커녕 오히려 옹졸한 잣대를 들이대며 가르치려 들 때, 지지율의 하락은 당연한 인과응보일 뿐이다.
온라인 공간의 찌꺼기를 정국 분석의 주요 잣대로 삼는 정치 엘리트들의 모습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해야 할 자리에 익명 커뮤니티의 낯부끄러운 조롱들이 소환되면서, 생산적인 토론은 실종되고 감정적 소모전만 극대화되고 있다. 청와대가 진정으로 반성해야 할 것은 지지자들이 만든 가상의 단어가 아니라, 대중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오만과 독선으로 채워진 자신들의 지난 행태들이다.
📊 여론을 대하는 권력의 뒤틀린 시선
권력이 민생 대신 익명 커뮤니티의 악플과 밈에 집착하기 시작할 때, 그 정권의 생명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뉴이재명 세력의 등장과 1배식 조롱 문화의 확산
이재명을 악마화하던 공식 그대로 문재인을 타깃 삼다
요즘 정치 판을 흐리는 가장 저열한 세력들을 꼽으라면 단연 스스로를 뉴이재명이라 참칭하는 무리들이다. 화자가 정확히 지적했듯, 이들 다수는 과거 이재명 대통령을 악마화하는 최전선에 섰던 인간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과거 이재명을 공격할 때 쓰던 혐오와 악마화의 공식 그대로, 이번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을 향해 화살을 돌리고 있다. 일명 '문조털레류'라는 저급한 조롱의 언어가 그렇게 탄생하고 확장된 것이다.
이들은 1배식 조롱을 기본 장착하고 있다. 논리와 비전으로 상대를 설득할 능력이 없으니, 오직 조롱과 멸시의 언어로 상대를 짓밟아야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종족들이다. 단톡방 등 음지의 공간에서 뉴이재명인 척 위장하며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증거들이 수없이 포착되고 있다. 심지어 '민티 2기(민티 07)' 같은 변종 세력들이 로고의 글자를 미묘하게 바꿔가며 끊임없이 부활하는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이들은 개혁의 동반자가 아니라 진보 진영을 내부에서부터 갉아먹는 암세포에 가깝다.
기존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러한 혐오와 조롱의 문화에 엄청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혐오의 정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이재명 세력들은 조롱 없이는 단 한 줄의 논리도 전개하지 못한다. 이들이 당의 주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수록, 민주당의 도덕성과 확장성은 동시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정권이 이들의 해로운 징후를 방관하거나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든다면, 그 대가는 당 전체의 공멸이 될 것이다.
혐오를 미러링의 방패 뒤에 숨기려는 비겁함
정치적 야만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러링이라는 단어가 남용되는 세태는 통탄스럽다. 뉴이재명 세력들이 뿌려대는 저열한 조롱은 결코 건강한 미러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약자에 대한 방어적 저항이 아니라, 권력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기득권을 차지하려는 야비한 패권 싸움의 부산물일 뿐이다. 상대를 악마화하여 고립시키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정치적 떡고물을 노리는 하이에나들의 몸짓에 불과하다.
이러한 세력들이 당내 헤게모니를 장악해 나가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현 정권의 정치적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튼튼한 철학과 정책적 비전으로 무장한 세력 대신, 상대에 대한 원색적 적대감과 조롱으로 무장한 무리들이 득세할 때 그 정권의 미래는 뻔하다. "이재명을 악마화했던 공식 그대로 문재인을 악마화하고, 그 공식 그대로 문조털레류로 확장시킨 거예요." 이 날카로운 통찰처럼, 파괴의 문법은 언제나 대상을 가리지 않고 돌변하기 마련이다.
결국 이들이 만들어내는 혐오의 바다 속에서 진정한 개혁의 목소리는 질식해 죽어간다. 청와대와 당 지도부가 이들의 실체를 직시하고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이들의 화력을 즐기거나 방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혐오를 방치하는 정권은 결국 그 혐오의 불길에 타 죽기 마련이다. 뉴이재명 세력의 1배식 조롱 문화가 당의 정체성을 잠식하도록 내버려 두는 한, 민주당에 실낱같은 희망조차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 내부의 적을 방치하는 대가
조롱과 혐오를 무기로 삼는 세력을 솎아내지 못하면, 그 정권은 결국 자중지란에 빠져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개혁을 자처하며 혐오를 전파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재명 정부의 파병 결정, 참모진의 침묵이 증명하는 진실
이동형의 침묵과 과학적 분석이라는 냉혹한 결론
파병 문제에 대한 홍익표의 태도는 가관이었다.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발뺌하면서도 안보 쪽에서 말이 새어나간 것 같다는 식의 덤덤한 멘트를 날렸다. 국가의 운명과 청년들의 생문이 걸린 중대한 사안을 두고, 마치 남의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흘리는 그 태도에서 청와대 기강이 완전히 해이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 덤덤함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이 내부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확신의 방증이라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파병을 결단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왜 그런가. 언론에 공개된 내용이 지나치게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어느 정도 교감이 이루어지고 실무적인 논리가 상당히 진척되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 시절처럼 국내의 거센 반대 여론을 정치적 지렛대 삼아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려 했다면, 구체적인 내용이 밀봉되기도 전에 언론에 의도적으로 흘러나와 국내에서부터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가. 이 지점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튀어나온다. 바로 이동영을 비롯한 친정권 유력 채널들의 반응이다. 만약 대통령이 반대 여론을 원했다면 이동영 같은 인물들이 방송에서 거품을 물고 파병 반대를 외쳤어야 했다. 그러나 이동영도, 뉴이재명 채널의 그 어떤 인간들도 파병에 대해 일절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이보다 더 확실하고 과학적인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이재명의 뜻이 곧 파병이라는 소리다.
참모진의 비겁한 함구와 청와대의 일방통행
대통령의 뜻이 파병으로 기울어 있으니, 그동안 거칠게 반전 평화의 가치를 부르짖던 이들마저 일제히 입을 닫아버린 것이다. 참모진과 유력 스피커들의 비겁한 침묵은 이재명 정부가 얼마나 제왕적이고 일방적으로 통치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동영이 거품 물고 반대했을 겁니다. 그런데요, 이동영도 뉴이재명 채널의 그 어떤 인간들도 파병에 대해서 언급을 안 합니다. 이보다 확실한 게 있어요? 이보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까?" 이 외침 속에는 권력의 눈치나 살피며 변절해 버린 스피커들에 대한 멸시와 씁쓸함이 동시에 담겨 있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핑계 삼아 명분을 저버리는 결정을 내리면서도, 지지층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동원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수법은 과거 보수 정권들이 쓰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진보 진영이 쌓아올린 평화의 가치가 이렇게 손쉽게 내팽개쳐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지지자들의 심정은 참담하기만 하다.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할 이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할 때, 민주주의는 서서히 숨통이 조여드는 것이다.
결국 이재명의 뜻이 곧 법이 되고, 참모들은 그 앞에서 한 마디 비판도 하지 못하는 해바라기로 전락했다. 파병이라는 거대한 결단 앞에서 철학과 명분은 실종되었고, 남은 것은 오직 권력의 정략적 계산뿐이다. 이 냉혹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정권에 품었던 마지막 희망의 끈마저 놓아버리게 된다. 과학적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처참한 진실은, 우리에게 더 이상 이 정권에 기댈 곳이 없음을 뼈저리게 일깨워 주고 있다.
💡 파병 결정의 과학적 증거
- 협상을 위한 여론 조성이라면 사전에 치열한 반대 논란이 일어났어야 마땅하다.
- 그러나 이동영을 비롯한 친정권 스피커들은 파병에 대해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다.
- 아무도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재명의 뜻이 파병에 있음을 증명한다.
해외로 떠난 대통령과 공소청 직제개헌 폭탄의 데자뷔
논란을 피하기 위한 해외 순방과 책임 회피의 기술
연임 문제나 국정 현안에 대해 김어준이 날카롭게 파고들었을 때도 홍익표는 어버버거리며 하나마나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프랑스에서 돌아오면 정리를 하려나 싶었더니, 9월은 외교 시즌이라며 유엔도 가야 하고 멕시코도 가야 한다는 핑계만 돌아왔다.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문득 겹쳐지는 얼굴이 있었다. 공소청 직제개헌 대통령령이라는 거대한 폭탄을 툭 던져놓고 본인은 해외로 떠나버리던 윤석열의 모습이 고스란히 겹쳐 보였던 것이다.
본인이 비판받을 일이나 거센 논란이 예상되는 사안은 폭탄처럼 던져두고, 뒷수습은 전부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긴 채 해외 순방 보따리를 싸 들고 나가는 꼴이다. 반대 목소리를 듣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조금이라도 쓴소리가 나오면 참지 못하는 이재명 스타일의 진면모가 여기서 드러난다. 논란이 수그어들 타이밍을 벌기 위해 일부러 해외로 돌아다니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거둘 수 없는 이유다. 이명박 때도 봤고, 박근혜 때도 지긋지긋하게 겪었으며, 윤석열 때 신물 나게 보았던 그 구태를 이재명 정부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반대 의견을 견디지 못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공소청 직제개헌 같은 예민한 사안을 본인의 결단으로 밀어붙인 뒤,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을 피해 해외로 도피성 순방을 떠나는 것이다. 참모들은 국내에서 매 맞으며 뒷수습에 진땀을 빼고, 대통령은 외교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 기형적인 풍경은 민주적 리더십의 실종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통을 자처하던 정권이 권력의 완장을 차자마자 불통의 성채로 숨어드는 모습은 허탈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뉴스공장 출연 금지령과 청와대 내부에 불어닥친 공포
홍익표가 청와대의 뉴스공장 출연 금지설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는 뉘앙스를 풍긴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장인수 기자가 공소취소 거래에 대해 폭로했을 때, 청와대 내부가 얼마나 아수라장이 되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뉴스공장을 그토록 불편해하고 싫어했던 이재명 대통령의 성품상, 봉욱을 비롯한 참모들은 엄청나게 '조인트 까였을' 것이다. 대통령이 격노하자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당분간 뉴스공장 출연 금지"라는 무언의 지침이 전당대회까지 철저하게 지켜졌던 것이다.
만만치 않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다들 숨죽이고 있던 차에,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치니 참모진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대통령이 부재한 틈을 타 홍익표를 내보낸 것이 이번 방송 출연의 진실일 터이다. 대통령이 한국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대통령이 자리에 없을 때 정무수석이 뉴스공장에 출연했다. 참모들이 어쩔 수 없이 결정했다고 본다"는 분석은 그래서 정확하다. 이재명은 뒤끝이 몹시 긴 사람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차단해 버리고, 조금만 거슬려도 참지 못하는 그의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스타일을 지지자들은 이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국 지지율이 바닥을 치며 꼬라박으니까 마지못해 청와대 내부의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 것뿐이지, 그들이 보여주는 인식의 바닥은 여전히 처참하다. 홍익표의 입에서 나온 발언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민주적 변화나 국정 기조의 대전환 같은 것은 애초에 글렀다는 사실만 재확인하게 된다.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면 이재명 대통령이 태도를 바꿀까? 아닐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변할 동력을 잃어버렸다.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패 같은 타의적 심판이 닥쳐오고 나서야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 권력의 사유화와 불통의 정치
대통령의 심기 경호를 위해 참모진이 입을 다물고,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 해외로 도피하는 모습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알리는 적신호다.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 정권은 결국 민심의 거센 심판이라는 타의적 종말을 맞이할 뿐이다.
탁현민의 발언이 남긴 씁쓸함과 희망 없는 정국의 종착지
바보가 되기를 거부한 참모들과 바보로 전락한 현재의 권력
문득 2024년 9월에 나왔던 탁현민의 발언이 뼈저리게 스쳐 지나간다. "누가 나의 대통령 물어뜯으면 나도 물어버리겠다. 나의 대통령은 내가 글을 알고 난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게 거짓말을 하도록 만들지 않았다.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는 그런 바보가 되도록 만들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하는 이유다." 탁현민의 이 당당한 고백은 지금 청와대 참모진의 비루한 현실과 너무나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오늘날 홍익표를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이 하나같이 묻는 말에 똑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리는 이유는 명백하다. 제대로 진실을 얘기하면 정권 차원에서 '좆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혹은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정된 바 없다"며 스스로 바보가 되는 길을 자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모들이 비겁한 바보가 되도록 방치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권력은 참모들을 철저한 예스맨이자 무능한 방관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나마 홍익표 정무수석이 지금의 처참한 청와대 라인업 중에서 유일하게 대의를 생각하며 뉴스공장이라도 나가야겠다고 결단 내린 정상적인 사람 중 하나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슬프다. 강유정이나 안기령 같은 이들을 보라. 뉴스공장을 통해 온갖 명성과 인지도를 다 얻어놓고는, 권력의 줄을 쥐자마자 뉴스공장 근처에도 가지 않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이들에 비하면 홍익표라도 카메라 앞에 기어 나와 변명이라도 늘어놓는 것이 그나마 나은 셈이다.
희망을 거두고 냉혹한 심판을 준비해야 할 시간
오늘 우리가 확인한 것은 청와대와 대통령의 구제불능인 인식 수준과, 그 밑에서 콩고물을 주워 먹으며 빌붙어 사는 참모들의 한심한 초상뿐이었다. 더 이상 이 정권에 기대를 걸거나 희망을 품을 여지는 남아있지 않다. 개혁의 동력은 이미 사그라들었고, 권력은 스스로를 성역화하며 불통의 장막 속으로 숨어버렸다. 지지율이 아무리 곤두박질치고 아우성이 터져 나와도 그들은 귀를 닫은 채 자신들만의 성채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환상을 버리는 것뿐이다. 스스로 반성하고 태도를 바꿀 기회를 수없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제나 변명과 남 탓으로 일관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하나, 다가오는 선거와 정치적 심판의 순간에 민심의 매서운 회초리를 정확하게 내리치는 것뿐이다. 자의에 의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면, 타의에 의한 거대한 심판만이 이 비정상적인 정국을 바로잡을 유일한 해법이 될 것이다. 희망을 접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
참담한 민낯을 마주한 오늘, 더 이상 기대할 것도 바랄 것도 없다는 씁쓸한 깨달음만 남는다. 침묵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권력이 마주할 종착지가 어디일지는 이미 역사와 상식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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