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지금 철근 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가 지배했던 20세기를 지나, 인공지능이 도시의 혈관을 설계하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거대 담론처럼 들리던 '자율주행'은 이제 단순히 운전자의 피로도를 덜어주는 보조 장치를 넘어, 국토 균형 개발의 물리적 판도를 뒤흔들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국토 균형 개발의 첫 단추는 자율주행 자동차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진단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도시의 구조가 앞으로 어떻게 재편될지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
자율주행이 바꾸는 도시의 물리적 풍경
차선 폭의 축소와 도시 공간의 재발견
현재 우리가 주행하는 도로의 폭은 마차 4대를 기준으로 삼던 고전적인 관습에서 유래했다. 말 엉덩이 네 짝이 나란히 서 있던 그 시절의 기준이 현대의 아스팔트 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자율주행이 보편화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공유 모빌리티로 대표되는 자율주행 자동차는 인간 운전자보다 훨씬 좁은 차선 내에서도 정밀한 주행이 가능하다. 이는 도로 폭 자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시 면적의 약 13%가 도로로 점유되어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로 폭을 절반으로만 줄여도 도시 면적의 6%라는 막대한 땅이 시민들에게 되돌아온다. 이 여유 공간은 녹지로 변할 수도, 풀뿌리 경제를 지탱할 상업 시설로 채워질 수도 있다. 자동차에 빼앗겼던 지상 공간을 보행자에게 되돌려주는 것, 그것이 자율주행이 가져올 가장 거대한 도시적 혜택이다.
이러한 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 국내 신차의 약 42%가 레벨 2 이상의 보조 시스템을 탑재하며 보편화 단계에 진입했다. 레벨 3 상용화에서 한국이 세계적으로 앞서나가는 상황은 고무적이지만, 단순히 기술적 우위를 점하는 것을 넘어 '인간 중심의 도시'를 설계하는 법적·제도적 프레임워크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컴팩트 시티가 만드는 인구 소멸의 해법
인구 소멸은 지방 도시만의 고민이 아니다. 인구가 줄어도 경찰서, 병원, 학교와 같은 필수 시설의 유지관리 비용은 고스란히 남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파편화된 주거 형태를 모아 '컴팩트 시티' 모델을 실험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구 밀도가 낮을수록 사람들을 더 밀도 있게 모아야 상업 시설이 유지되고 공공 서비스의 효율성이 살아난다.
자율주행 기술은 이러한 컴팩트 시티 구축의 강력한 촉매제다. 이동의 효율성이 극대화되면, 도시의 외곽으로 멀리 나가지 않고도 필요한 서비스를 15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근거리 보행 친화 도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멀리 이동하는 것은 곧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다. 도시의 존재 이유가 사람과의 접점을 늘리는 것이라면, 자율주행은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지상의 밀도를 높여 우리의 일상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다만, 국토연구원 등에서 지적하듯 자율주행이 오히려 이동성 격차에 따른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 혜택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공공 교통망과 결합한 로보택시 서비스의 보편적 도입이 동반되어야 한다. 기술이 도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한 도시 정책의 방향성이 인구 소멸 시대의 돌파구를 만든다.
부산, 고밀도 도시의 미완성 잠재력
렘 콜하스가 예찬한 복잡성의 매력
부산은 건축가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도시 중 하나다. 렘 콜하스가 『정신착란증의 뉴욕』에서 예찬했던 수직적 고밀도 도시의 전형을 부산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서울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확장적 구조라면, 부산은 바다와 산에 막혀 강제로 압축된 고밀도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불편함이 아니라, 엘리베이터라는 기계 장치로 서로 다른 기능들이 층층이 충돌하며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 컨디션이다.
하지만 정작 부산의 가치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취재 노트의 표현대로 "냉장고에 요리 재료는 엄청나게 쌓여 있는데 요리를 하지 않는 상태"와 같다. 세계적인 도시 설계 전문가들조차 자갈치 시장 일대의 밀도와 활기를 극찬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이를 방치된 자산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 놀라운 고밀도 자원을 자율주행과 결합해 재해석한다면, 부산은 세계 유례없는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단순히 해외 유명 도시의 풍경을 흉내 내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감천 문화 마을을 산토리니에 비유하거나, 해운대를 와이키키에 빗대는 것은 부산의 본질을 외면하는 일이다. 부산만의 좁은 골목과 가파른 지형, 그리고 밀도 높은 삶의 풍경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관광 자원이자 데이터의 보고가 되어야 한다.
방파제와 고가철도의 공간적 재해석
기능에만 함몰된 도시 시설은 시민의 삶을 단절시킨다. 부산의 방파제는 파도를 난반사하는 테트라포드의 기하학적 미학을 넘어, 납골당이나 박물관 같은 문화적 시설을 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보스턴의 과학 박물관이 찰스강의 기능을 살리며 시민을 끌어모으듯, 부산의 해안선도 단순한 방파제를 넘어 시민들이 머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고가철도 역시 마찬가지다. 소음 때문에 도심을 관통하는 철도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향후 통일을 대비한 물동량 증가를 고려하더라도, 수서역에서 파주로 우회하거나 철저한 지하화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도심 관통은 재앙이 될 것이다. 오히려 경의선 숲길처럼 철도 위를 덮어 선형 공원을 만들고 그 아래 풀뿌리 상권을 살리는 방식이 훨씬 경제적이다.
우리는 그동안 기능주의라는 미명 아래 자동차에 1층 공간을 몽땅 내주었다. 필로티 주차장이 1층을 점령한 도시에는 사람이 머물 자리가 없다. 건축가의 말처럼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자율주행은 자동차를 지하로 밀어 넣고, 지상에는 다시 사람이 머물고 걷고 대화할 수 있는 빈 공간을 찾아주는 위대한 청소부가 되어야 한다.
🔥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하나)
자율주행 로드맵이 경제적 수치와 기술적 진보에만 함몰되어 있다는 점은 뼈아픈 지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2027년 레벨4 완전자율주행 상용화 로드맵은 혁신적이지만, 2030년 자율주행 시대의 본격 개막을 앞두고 기술적 완성도만큼이나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 정작 그 기술을 받아들일 도시의 사회적 수용성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테슬라의 FSD 베타가 미국에서 32억 마일을 넘게 달렸어도, 여전히 원격 조종자가 개입해야 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기술은 완벽하지 않으며 도시의 골목은 교과서처럼 정돈되어 있지 않다. 안전이라는 가치를 단순히 보험 제도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사람이 걷는 속도와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를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도시 구조의 근본적인 수술이 병행되어야 한다.
건축 사진이 말하는 공간의 본질
비어 있는 공간과 수직선의 미학
건축 사진을 찍을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비어 있는 공간'이다. 웅장한 가구보다 벽과 바닥, 천장이 만드는 구도가 건물의 본질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수직선을 똑바로 세우고 2점 투시를 지향하는 것은 단순히 깔끔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건축가가 그 공간을 설계할 때 세웠던 고유한 규칙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다.
인스타 감성으로 포장된 사진들이 난무하지만, 전문가가 찍은 사진은 다르다. 공간의 의도를 정확히 짚어내고, 사람이 없는 순간의 적막을 통해 건물의 실체를 증명한다. 때로는 방문객들의 우연한 앵글이 전문가의 사진보다 훨씬 강력한 서사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간이라는 뼈대가 튼튼할 때 가능한 이야기다.
건축물의 저작권 문제도 중요한 지점이다. 법적으로는 개방된 장소의 건축물은 복제가 가능하지만,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광고 촬영에서 건축가의 저작권은 관행이라는 이름 뒤로 숨어버린다. 500만 원 정도의 대여료는 대형 광고 제작비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하지만, 창작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인정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더 좋은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다. 📷
사람이 없는 공간은 죽은 도시나 다름없다
건축 사진에 굳이 사람을 담는 이유는 그들이 공간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고창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노부부의 모습은 그 공간이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인구 소멸이니 스마트시티니 하는 거창한 단어들보다, 한 쌍의 노부부가 앉아 시간을 보내는 찰나의 장면이 도시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유럽의 에어컨 실외기 문제만 해도 그렇다. 파리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실외기 설치가 불법이거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과거엔 건기가 길어 그늘만 있으면 시원했지만, 이제는 제트기류의 변화로 40도 폭염이 일상이 되었다. 징크 지붕과 굴뚝 때문에 실외기를 놓을 곳이 없다는 물리적 제약은, 결국 'PS(Pipe Shaft)'와 같은 설비 배관을 구축하는 리모델링으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늘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파리의 굴뚝 사이에 실외기를 욱여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건물이 가진 역사적 가치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다. 결국 건축은 기술의 경연장이 아니라, 기술을 감싸 안은 삶의 그릇이 되어야 한다.
💭 개인적인 생각
자율주행 기술을 보며 처음 든 생각은 '얼마나 더 빨리 이동할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취재 노트를 정리하며 깨달은 것은, 미래의 도시는 '얼마나 덜 이동하고도 충분할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구 소멸 지역을 컴팩트 시티로 만들고, 지하에는 고속 철도를, 지상에는 보행자가 걷는 도시를 만드는 일. 이는 기술의 발전이 아닌 '철학의 전환'을 요구한다.
우리는 그동안 자동차를 위해 도시를 쪼개고, 철길을 따라 장벽을 세웠다. 속도는 경쟁력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속도는 더 빠르게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의 공간을 더 천천히 음미하게 만드는 속도다. 15분 내에 모든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곳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사는 삶. 그것이 미래의 자율주행 도시가 지향해야 할 본질이 아닐까? 자율주행이 차선 폭을 줄이고 주차장을 없애서 되돌려준 6%의 땅 위에서, 우리는 다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 자동차가 지나쳐버린 그 자리에, 사람의 온기가 채워지는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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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이 단순한 이동 수단의 혁신을 넘어, 우리 삶의 터전인 도시의 기본 문법을 다시 쓰고 있다. 우리는 과연 속도에 미친 도시를 버리고, 사람이 머무는 곳으로 되돌아갈 준비가 되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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