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뇌과학자가 밝히는 게임 중독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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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미쳐봤던 뇌과학자가 화면 너머로 던지는 한마디는 무척이나 도발적이다. "만약에 게임을 그렇게 많이 해서 뇌가 녹았으면, 제 뇌는 이미 녹았을 겁니다!" 장동선 박사의 이 호기로운 일갈은 매번 청소년들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부수기 바쁜 어른들의 풍경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우리는 흔히 게임 화면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 아이들을 보며 전두엽이 파괴되고 뇌가 망가질 것이라 공포에 질리곤 한다. 하지만 막상 그 현장을 뼛속까지 겪어보고 뇌과학을 파고든 이들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게임이 정말 인류의 뇌를 녹이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진짜 본질은 따로 있는지 차분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

세상에는 여전히 게임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게임 이용 장애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못해 안달 난 시선들이 존재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ICD-11 개정판을 통해 질병코드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거듭해 왔다. 국회 왔다. 국회와 정부 부처가 참여한 민관협의체가 6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도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개점휴업 상태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복지부와 정신의학계는 1000편이 넘는 뇌 기능 연구와 장기 추적 조사를 근거로 보건의료체계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한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업계는 이것이 명백한 과잉 의료화이며 콘텐츠 수출액의 상당 부분을 지탱하는 산업에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격이라고 맞선다. 이 지독한 대립의 격전지 한복판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까?

게임 중독에 대한 편견과 뇌과학적 진실

게임 시간과 중독의 상관관계에 대한 오해

우리는 흔히 게임을 오래 하면 할수록 중독에 빠진다는 단순한 인과관계에 매몰되곤 한다. 하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행한 2024년 게임 이용자 패널 연구 결과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통념은 여지없이 깨진다. 아동·청소년 900여 명과 성인 700여 명을 대상으로 무려 5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는 놀랍게도 게임 과몰입군과 일반 이용자 간의 절대적인 이용 시간 차이가 유의미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데이터 구간에서는 오히려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는 일반 이용자의 플레이 타임이 과몰입군보다 더 길게 집계되기도 했다. 게임을 많이 한다는 것과 게임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결코 동의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음식을 아주 많이 먹는다고 해서 전부 섭식 장애 판정을 받지 않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치다. 누군가는 삼시 세끼 외에 야식까지 챙겨 먹으며 대식가로 살아가지만 건강에 이상이 없다면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여서, 일상생활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그것은 취미의 영역에 머문다. 실제로 5년 동안의 패널 연구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과몰입 상태를 유지한 사례는 단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았다.

삶의 특정 시기에 겪는 일시적 과열을 두고 곧바로 중독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는 것은 진단적 폭력에 가깝다.

그렇다면 세계보건기구가 정의하는 진짜 게임 중독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 가지 특성이 동시에 충족되어야만 성립한다. 첫째는 내 의지대로 플레이를 멈추거나 조절하지 못하는 통제력 상실이다. 둘째는 삶의 중심이 오로지 게임으로 재편되어 학업이나 대인관계 같은 다른 활동들이 완전히 무가치해지는 과도한 우선순위의 변화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부정적 타격이 명백히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1년 이상 지속되는 상태다. 단순히 주말 내내 방에 박혀 게임을 했다고 해서 중독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WHO 질병코드 등재를 둘러싼 팽팽한 갈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의학계가 ICD-11 게임이용장애 도입을 목놓아 외치는 배경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임상적 현장이 존재한다. 2000년대 전후로 한국을 비롯해 독일과 일본 등지에서 게임 과사용으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 사고들이 보고되었고, 디지털 기기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신체적·정신적 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이해국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50여 개의 장기 추적 연구와 1,000편이 넘는 뇌 기능 연구가 이미 도파민 회로의 이상과 기능 손상을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알코올 의존증이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듯 질병으로 등재되어야만 체계적인 공공 보건의 대응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반면 문체부와 게임 산업계는 이러한 움직임이 자칫 창의적인 문화 콘텐츠 생태계 전체를 위축시키고 젊은 세대에게 씻을 수 없는 낙인을 찍을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한다. 통계청 역시 2030년 국내 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 시기까지 결정을 미루며 민관협의체의 합의 결렬 속에서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이분법적 찬반 논쟁에서 벗어나 사행성 게임물과 일반 게임의 중독 이슈를 분리하는 별도의 특별법 제정을 제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률의 목적이 산업 육성과 규제 사이에서 길을 잃은 지금, 우리는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결국 이 지루한 공방전의 밑바닥에는 환자의 고통을 치유하려는 의료계의 절박함과, 한류 콘텐츠의 주역인 게임을 잠재적 범죄 온도로 몰아가는 것에 대한 산업계의 억울함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양측의 팽팽한 기싸움 속에서 진짜 길을 잃은 것은 치유가 필요한 소수의 실제 환자들과 억울하게 눈치를 보는 대다수의 평범한 게이머들이다.

맹목적인 규제나 무조건적인 방관 모두 답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이미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통해 증명되었다. 제도의 칼날을 겨누기 전에, 우리의 뇌 안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화학 작용과 사회적 결핍의 상관관계를 냉정하게 해부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제도를 둘러싼 소모적 갈등의 본질

보건복지부와 정신의학계가 질병코드를 사수하려는 태도나, 게임업계가 이를 무조건적인 규제로 매도하며 반발하는 모양새는 모두 대중의 실질적인 삶과 거리가 멀다. 중요한 것은 코드가 붙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일상 통제력을 잃고 파멸로 치닫는 이들을 어떻게 건져 올릴 것인가의 문제다.

탁상공론식 찬반 논쟁을 멈추고 실제 치유가 필요한 사각지대를 메우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야 한다.

게임이 뇌에 미치는 이중적 메커니즘

슈퍼마리오와 ABCD 연구가 증명한 뇌의 가소성

게임이 무조건 뇌를 망가뜨린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과학적 연구들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축적되어 왔다. 독일 연구진이 성인들을 대상으로 두 달 동안 매일 30분씩 《슈퍼마리오》 게임을 플레이하게 만든 일명 Kühn 연구(2014)는 게임이 뇌의 구조적 가소성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실험 결과 기억을 관장하는 우측 해마, 제어 능력을 담당하는 배외측 전두엽, 그리고 소뇌의 회백질 양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한 공간 지능의 향상뿐만 아니라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타자 중심적 사고로 인지적 전환이 관찰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지원한 대규모 청소년 뇌 발달 추적 연구인 ABCD 연구(Adolescent Brain Cognitive Development) 역시 비슷한 맥락의 결과를 증명한다. 2,000명이 넘는 청소년의 뇌를 MRI로 정밀 추적한 결과, 지속적으로 게임을 즐겨온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작업 기억(Working Memory)과 반응 억제 능력이 미세하게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게임은 순간적인 몰입, 집중, 스스로의 행동 통제,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단서를 조합해 문제를 돌파하는 고도의 인지 노동을 요구한다. 이러한 능력은 놀랍게도 학업이나 복잡한 업무를 수행할 때 동원되는 뇌 영역과 정확히 겹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임이 지능 개발의 도구라는 환상을 품을 필요는 없다. 전두엽 기능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게임의 장르와 개인의 성향에 따라 명백한 명암이 갈린다. 단순 자극을 무한 반복하는 일부 게임에 지나치게 매몰될 경우 전전두엽의 통제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게임을 많이 해서 전두엽이 망가진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전전두엽의 제어 능력이 약한 이들이 게임이라는 매체에 쉽게 빠져드는 것인지에 대한 인과관계의 방향이다.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해 과학계는 아직 완벽한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위험 요인과 Liking, Wanting의 치명적인 차이

게임 중독의 늪에 빠질 확률을 극적으로 높이는 대표적인 위험 요인 그룹들은 명확히 존재한다. ADHD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만성적인 우울감을 겪고 있거나, 태생적으로 충동 제어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세 가지 요소를 품고 있는 이들은 마우스 클릭 한 번, 화면의 화려한 이펙트 한 번에 뇌의 보상 회로가 비정상적으로 격렬하게 반응한다. 게임을 통해 얻는 즉각적인 자극이 현실의 고통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한번 진입하면 헤어나오기 극도로 어려운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다.

여기서 뇌 안의 메커니즘을 가르는 핵심 개념이 바로 Liking(쾌감)과 Wanting(욕망)의 괴리다. 진짜 무서운 중독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그 순간이 즐겁고 짜릿해서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을 할 때는 아무런 재미도 없고 감흥도 없는데, 화면을 끄는 순간 찾아오는 극심한 허전함과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 마우스와 패드를 집어 들게 되는 상태가 바로 Wanting 시스템이 폭주하는 순간이다. Liking은 사라졌는데 오직 Wanting만 남아서 뇌를 갉아먹는 것, 이것이 바로 게임 중독의 진짜 실체다.

이 상태에 접어들면 게이머의 뇌는 더 이상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지배당하는' 비참한 상태가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친구를 만나는 등 현실의 다른 즐거움들은 전부 빛이 바래고, 오직 화면 속 레벨업 숫자만이 삶의 유일한 산소호흡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장동선 박사가 KTX와 SRT 기차 안에서 18시간에서 20시간씩 잠도 자지 않고 몰입했던 기억을 회상하며 "삶이 너무 불행하고 행복할 수 있는 구석이 없었기에 게임으로 도피했다"고 고백한 것은 이 메커니즘의 가장 적나라한 방증이다. 뇌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가장 확실한 도파민 공장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셈이다.

📊 뇌의 보상 회로가 작동하는 방식

연구에 따르면 뇌의 도파민 분출은 확실하게 이길 때도, 무참히 패배할 때도 최고조에 달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승률이 정확히 50대 50으로 유지될 때 뇌는 가장 강력한 쾌감과 몰입을 느낀다.

게임 회사들은 이 뇌과학적 허점을 정확히 파고들어 매치메이킹 알고리즘을 설계하며, 이것이 바로 유저들로 하여금 "이번 판은 진짜 이길 수 있었는데!"를 외치며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드는 사악한 설계의 본질이다.

게임 회사의 사악한 설계와 멈출 수 없는 이유

승률 50%의 법칙과 근접 실패 효과

새벽 두 시,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끄려다가 무심코 "딱 한 판만 더!"를 외치며 다시 화면을 켜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게임 안에는 스스로 플레이를 멈추기에 최적화된 순간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레벨업 직전의 경험치 바, 내일이면 초기화되는 일일 퀘스트, 그리고 끊임없이 자극을 유도하는 랭킹 시스템까지 모든 인터페이스는 유저를 붙들어 매기 위해 정교하게 연출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장치가 바로 승률 50%를 기계적으로 맞추는 알고리즘과 근접 실패 효과(Near Miss Effect)다.

카지노의 슬롯머신 앞에서 그림자가 세 개 일치해야 하는데 두 개만 맞고 마지막 하나가 살짝 어긋났을 때 느끼는 그 찢어지는 아쉬움, 즉 "아, 정말 한 끗 차이로 놓쳤다!"는 감각은 인간의 도파민 회로를 미치게 만든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열심히 연습해서 실력이 늘어나면 시스템은 상대의 매칭 수준을 그만큼 끌어올려서 승률을 기가 막히게 반반으로 맞춘다. 이길 듯 말 듯 한 줄타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뇌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완벽하게 승리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 결국 밤을 새우는 참사로 이어진다.

이러한 설계 앞에서 인간의 의지력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나약하다. 아무리 평소에 이성적이고 자기 통제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세이렌의 유혹 앞에 선 영웅들과 다를 바 없다.

게임이라는 거대한 알고리즘 공장 안에서 홀로 정신을 차리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에 조각배를 띄우고 폭우를 피하겠다는 것만큼이나 오만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내부의 메커니즘을 비난하기보다, 이 강력한 자극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냉정하게 판을 짜야 한다.

오디세이의 기둥과 외부 통제 장치의 필요성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오디세우스는 영리하게도 세이렌의 치명적인 노랫소리를 듣고도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귀를 막고 선원들에게 명령해 자신을 배의 돛대에 꽁꽁 묶어두게 했다.

아무리 본인이 영웅이고 지혜가 뛰어난 인물이라도 세이렌의 마법 같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드는 순간 이성적인 판단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게임 중독을 극복하는 유일한 해법 역시 이 오디세이의 비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스스로 방 안의 컴퓨터 전원을 끄고 책을 펼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의지력의 문제를 떠나 생물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뇌 속의 Wanting 시스템이 이미 폭주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가 통제를 기대하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한 외부 통제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공유기 전원이 차단되도록 타이머를 설정하거나, 스마트폰의 앱 사용 제한 기능을 걸어두거나, 게임기를 거실 한복판에 두고 가족들과 함께 공유하는 물리적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상담센터를 찾는 직장인 E씨의 사례나 실제 임상 현장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회복에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자신의 의지력을 믿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들은 대신 트리거(Trigger), 즉 게임 생각이 불쑥 치솟게 만드는 감정적 도화선과 환경을 철저히 차단하는 법을 배웠다.

게임이 하고 싶어 손이 떨릴 때 5분 동안 동네 산책을 다녀온 뒤 일기를 쓰거나, 스마트폰의 알림을 전부 꺼버리는 식의 작은 행동 습관들이 모여 무너진 일상을 지탱한다. 외부에서 기둥을 세우고 자신을 묶어두는 지혜야말로, 사악하게 설계된 디지털 도파민 공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패다.

💭 에디터의 단상 : 돛대에 몸을 묶는 지혜에 대하여

우리는 흔히 자제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향해 "독한 마음을 먹으라"며 손가락질을 하곤 한다. 하지만 뇌과학을 들여다볼수록 깨닫는 진실은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허술하고 환경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게임 회사가 고도로 설계한 도파민의 미로 속에서 맨몸으로 버티려 들지 마라. 영웅 오디세우스조차 스스로의 귀를 막지 않고는 세이렌의 유혹을 견디지 못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내 삶을 지키고 싶다면 먼저 스마트폰을 멀리 치우고, 물리적으로 게임에 접근하기 힘들도록 방어벽을 세우는 것이 진짜 용기다.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영리한 생존 전략이다.

프로게이머와 중독자의 결정적 차이

뇌 촬영 결과가 보여준 통제력의 실체

그렇다면 하루에 열 시간 넘게 화면을 붙잡고 사는 프로게이머들과, 일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게임 중독자들의 뇌는 과연 무엇이 다를까. 2000년대 이후 뇌과학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게임에 과몰입한 이들의 뇌 내부를 들여다보는 다양한 임상 연구와 뇌 촬영 데이터들이 쌓여 가고 있다. 국내 중앙대학교에서 진행된 흥미로운 뇌 촬영 연구 케이스는 이 질문에 아주 명쾌한 해답을 던져준다.

연구진은 프로게이머 17명, 게임 중독자 20명, 그리고 일반 게임 이용자 18명을 모아놓고 MRI로 뇌를 정밀 촬영하여 비교 분석했다. 놀랍게도 이들이 지속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과 구조적 변화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게임 중독자의 경우 내가 화면을 멈춰야 한다는 것을 머로는 알면서도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는 통제 기능 상실과 보속 오류 현상이 지속적으로 관찰되었다. 특히 뇌의 깊은 곳에 위치한 시상 영역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포착되면서, 자극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반사적 반응이 굳어졌음이 드러났다. 반면에 프로게이머들의 경우에는 인지 능력, 주의력, 그리고 상황을 조율하는 통제 담당 영역에서 회백질의 긍정적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들은 게임이라는 도구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능력이 뇌에 강력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두 집단 모두 게임이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어마어마한 시간을 투자한다는 점에서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단 하나, 운전대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프로게이머들은 자신이 명백히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돌리고 가속기를 밟으며 게임을 통제의 대상이자 도구로 다룬다. 반면 게임 중독자는 운전석에서 튕겨 나와 트렁크에 쳐박혀 있고, 게임이라는 괴물이 혼자서 핸들을 거칠게 꺾으며 삶의 벼랑 끝으로 차를 몰고 가는 형국이다.

행복의 3대 조건과 삶을 게임으로 만들기

인간이 궁극적으로 행복을 느끼기 위해 반드시 채워져야 하는 세 가지 심리적 니즈가 존재한다. 첫째는 나의 의지대로 삶을 꾸려간다는 선택의 자율성, 둘째는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발전과 유능감에 대한 갈망, 셋째는 타인들과 깊이 교감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타인과의 연결성이다. 안타깝게도 입시 지옥과 취업난, 끝없는 경쟁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차가운 현실 속에서 이 세 가지 조건은 철저하게 박탈당하기 일쑤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접속하는 가상 세계, 즉 게임 안에는 이 세 가지 행복의 조건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다. 캐릭터의 직업부터 스킬까지 내가 온전히 선택하는 자율성이 있고, 사냥을 하고 퀘스트를 깨며 눈에 보이는 수치로 즉각적인 레벨업을 경험하는 유능감이 숨어 있으며, 길드원들과 파티를 맺고 소통하며 느끼는 강력한 연결성이 보장된다. 결국 게임 중독의 진짜 원인은 게임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 세계가 우리에게 안겨준 지독한 불행과 결핍이다.

장동선 박사가 어린 시절 홈스쿨링을 하며 주변과 단절되었던 불행한 시기에 머드 게임에 미치듯 빠져들었던 기억, 그리고 그때 PC 통신 속에서 만난 초기 인터넷 친구들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는 에피소드는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상 세계는 현실에서 도피처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결핍된 연결성을 채워주던 유일한 안식처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갈 길은 명확하다. 게임 안에서 가짜 행복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대신, 오히려 삶의 방식을 게임처럼 설계해 나가면 어떨까. 매일 아침 러닝 페이스를 조금씩 끌어올리는 것을 캐릭터의 스탯을 올리는 것처럼 여기고, 생소한 분야의 책을 읽거나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는 것을 게임 속 새로운 맵을 탐험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태도 말이다. 삶 자체를 거대한 플레이 그라운드로 바꾸어 나갈 때, 게임은 우리의 뇌를 녹이는 파괴자가 아니라 현실을 헤쳐 나가는 가장 짜릿한 은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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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게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조금 더 입체적이어야 마땅하다. 마냥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주범으로 몰아세우지도 말고, 현실의 결핍을 외면한 채 방치하는 무관심도 답이 될 수 없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 끊임없이 경계하며, 게임 속에서 얻던 성취감의 에너지를 현실의 삶으로 옮겨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미친 도파민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찾아야 밸런스가 아닐까 싶다.

모니터 앞의 불빛이 꺼진 뒤에도, 우리의 진짜 인생이라는 게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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