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앞두고 넷플릭스만 보기엔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들 이번 연휴에는 책도 좀 읽고 전시회도 가보자고 결심하지만, 막상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몰라 헤매기 일쑤다. 때마침 유튜브에서 흥미로운 문화예술 코너가 열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진행자의 유쾌한 농담으로 문을 연 이 자리에는 수필가 양다솔, 미술관장 이안, 음악평론가 이대화가 모여 각자의 영역에서 뼈를 때리는 트렌드와 작품을 풀어놓았다. 공장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일일공장장이 이끌었다는 이 특별한 코너는, 단순한 가십을 넘어 요즘 우리가 왜 문화예술을 소비해야 하는지 그 본질을 짚어내고 있었다.
세 명의 전문가가 쏟아낸 날것 그대로의 추천 목록 속에는 지금 이 시대의 결핍과 위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추석 연휴, 넷플릭스를 끄고 책을 집어 들어야 하는 이유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
양다솔 작가는 첫 번째 추천 도서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가치 발행)을 꺼내 들었다. "워낙 유명한 제목이고 아마 이거는 서점에 가실 필요도 없이 책장에 이미 있으실 수도 있다."라는 말처럼, 이 책은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하지만 고전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다들 책장에 묵혀두기만 하는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양다솔 작가 역시 "제가 진짜 어려워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책장에 이렇게 묵혀 놓고 있다가 정말 우연하게 어 첫 번째 제목이 비밀 노트네 하면서 사실 비밀 노트 하면 다 훔쳐보고 싶잖아요."라며 특유의 솔직한 고백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쓴 일기장 형식으로 소설화되어 있어 겉보기엔 읽기 쉽고 재미있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과 북파 문제 같은 묵직한 주제가 겹쳐지면서 숨이 턱 막히게 만든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묘한 매력을 품고 있는 것이다. 연휴의 한가운데서 가벼운 자극을 밀어내고 인간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고 싶다면, 책장에 먼지가 쌓인 이 삼부작을 펼쳐볼 타이밍이다.정지아 작가의 『쇳돌』이 증명하는 거대한 서사의 힘
두 번째로 소개된 책은 정지아 작가의 『쇳돌』(동녘 발행)이다. 전작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즐겁게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지나칠 수 없다. 유시민 작가가 강력하게 추천했던 그 흐름을 이어받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수필을 쓰는 작가로서 양다솔은 이 책이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온몸으로 보여준다고 평했다. "강줄기가 바다로 이어지듯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가 얼마나 큰 서사와 이어질 수 있는지를 현연히 잘 보여준다."라는 평가는 단순한 찬사를 넘어선 경외감에 가깝다. 이 책은 작가의 아버지가 광산 노동자였다는 아주 사소하고도 거친 삶의 단면에서 출발한다. 비록 지금은 광산과 쇳돌이 우리의 일상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그곳에 깃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거대한 역사적 서사로 펼쳐진다.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를 둘러싼 평범한 일상의 모든 이야기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저마다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기록인지 깊게 깨닫게 된다.
세계가 주목하는 미술계, 그리고 묵직한 명화의 울림
프리즈 서울과 서도호 작가의 'Nest/s'전이 보여주는 한국 미술의 힘
미술 담당 이안 관장이 풀어놓은 전시 이야기는 스케일이 남달랐다. 그는 먼저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양한 공간에서 진행되는 서도호 작가의 개인전(‘Do Ho Suh: Nest/s’)과 최근 미술계의 지각변동을 짚었다. "세계적인 메가갤러리들도 한국에 지점을 많이 내고 있는데, 그게 서울 프리즈가 생겨나면서 영국의 화이트큐브, 타데우스 로팍, 페로탕 같은…"이라며 말을 잇다 "아 너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멋쩍게 웃는 모습에서 오히려 전문성의 깊이가 느껴졌다. 바젤과 함께 세계 미술 시장의 두 가지 거대한 축인 프리즈가 한국에 안착한 것은 우리 미술계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거대한 사건이다. 인천공항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서도호 작가는 비엔날레 참여를 넘어 대중성까지 거머쥔 명실상부한 세계적 작가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 등에서 열리는 그의 대규모 전시는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일 정도로 핫하다. 세계적인 메가 아트페어와 거장의 만남이 동시에 일어나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생각해보면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행운이다.엘 그레코의 <성가족>이 전하는 독창적인 매너리즘의 미학
이안 관장이 추천한 또 하나의 굵직한 행사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스페인 미술 500년: 바실리에서 소로야까지' 전시다. 이 전산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작품은 바로 엘 그레코(El Greco)의 <성가족>이다. 르네상스 말기 그리스 태생이었던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를 거쳐 스페인 궁정화가가 되려 했다. 하지만 왕은 그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궁정 진입에 실패하고 만다. 대신 그를 알아본 것은 보수적인 가톨릭교회의 톨레도 교구였다. 거기서 엄청난 주문을 받으며 평생의 컬렉터를 얻게 된 그의 삶은 예술가가 어디서 피어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인체를 기괴할 정도로 길게 늘어뜨리고 비틀며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듯한 그의 독특한 매너리즘 양식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압도한다. 왕의 눈에는 이상해 보였던 그 혁신적인 화풍이 결국 시대를 관통하는 걸작이 되었다는 사실은, 예술이든 삶이든 남의 기준에 맞추기보다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일깨워준다.밤을 떠난 클럽과 성수동의 서라운드 시스템
소규모 카페에서 성수동까지, 부활하는 리스닝 파티의 풍경
음악평론가 이대화가 가져온 트렌드 이야기는 우리의 청취 문화가 얼마나 입체적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예전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다음 카페나 소모임 동호회에 모여 홍대 앞이나 이대 앞의 허름한 소규모 카페에서 음감회를 열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름이 조금 멋지게 '리스닝 파티', '리스닝 세션' 이렇게 열립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제는 성수동의 수십 채널 서라운드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웅장한 공간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시대가 되었다. 굳이 집에서 이어폰을 꽂고 혼자 듣는 대신, 고성능 스피커가 뿜어내는 공간감을 공유하며 음악적 취향을 과시하고 교류하는 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늘 듣던 음악을 와서 굳이 들으라고 하면 조금 티켓팅이 떨어지는 것 같다. 특별하게 내가 이 음악에 심취해 있고 멋지다 이런 걸 같이 사람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라는 분석은 정확하다. 음악은 이제 귀로만 소비하는 소스가 아니라, 내 취향과 정체성을 증명하는 소셜 커뮤니티의 언어로 작동하고 있다.오전 7시의 클럽, 웰니스와 레이브가 만난 '모닝 레이브'
이대화 평론가의 설명에 이어 이안 관장이 툭 던진 '모닝 레이브(Morning Rave)' 이야기는 이번 코너의 가장 신선한 충격이었다. 클럽 파티라면 당연히 자정이 넘은 시각, 시끄러운 음악과 알코올이 뒤섞인 공간에서 밤새도록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더 이상 밤새워 노는 걸 반기지 않는다. 밤늦게 클럽에 가려면 술도 마셔야 하고, 끝나고 택시를 잡기도 지옥 같으며, 무엇보다 다음 날 일상에 치명적인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아침 7시에 시작되는 모닝 레이브다. 디제이 장비가 번쩍이는 공간에 논알콜 음료를 두고, 런닝화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찾아와 미친 듯이 춤을 추며 땀을 흘린 뒤 상쾌하게 출근을 한다. 웰니스 트렌드와 클럽 문화가 기괴하면서도 완벽하게 결합한 이 신풍경은, 현대인들이 어떻게든 자신만의 해방구를 찾으려 발버둥 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밤을 포기하지 않고는 즐길 수 없었던 문화가 이제는 아침의 활력을 채우는 도구로 진화한 것이다.우리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진짜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닐까.
#문화예술 #추석연휴 #책추천 #넷플릭스대신 #양다솔 #존재의세가지거짓말 #정지아 #쇳돌 #미술전시 #프리즈서울 #서도호 #엘그레코 #성가족 #리스닝파티 #모닝레이브 #이안관장 #이대화평론가 #유튜브추천 #책스타그램 #전시추천 #문화트렌드 #힐링도서 #독서기록 #예술가이드 #북스타그램 #음악평론 #신간소개 #연휴계획 #취미생활 #감성충전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