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팔고 40년 구옥 리모델링 도전한 교수님 부부의 집

서울 광진구의 한적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시간이 겹겹이 쌓인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1980년대 빨간 벽돌집부터 90년대, 그리고 최근에 지어진 건물까지 세대의 흔적들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다. 실제로 이 골목의 90년대 다가구 주택들은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임대 수익과 실거주 가치를 동시에 잡는 '효자 건물'로 변신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건축가 임형남의 말마따나 이 골목은 그 자체로 거대한 주거 박물관 같다. 그 골목 어딘가에 자리 잡은 서울 40년 구옥 리모델링 현장인 '여흔재(興欣齋)'는 그저 낡은 건물을 대충 뜯어고친 수준이 아니다. 대학 교수님 부부가 아파트까지 팔아가며 뼈대만 남긴 채 전면 개조에 나선 이 집은, 화려한 변신 뒤에 얼마나 치열한 고민과 현실적인 벽이 숨어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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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40년 구옥, 그 찬란하고도 험난한 변신

골목의 역사를 이어받은 '여흔재'의 탄생

여흔재라는 이름은 "벽돌 한 장에도 바람을 담아 함께 즐거워지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지어졌다. 이사 온 지 1년 4개월이 지난 이 집은 겉보기엔 세련된 현대식 주택이지만, 그 뿌리는 40년 세월을 품은 노후 구옥이다. 집주인 부부는 오래된 가옥의 틀 위에 모던한 감각을 얹기를 원했고, 그 결과 외부 철제 계단과 시멘트 블록 영롱벽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외관을 완성했다. 80년대 감성의 붉은 벽돌과 현대적인 회색 벽돌, 까만색 철 프레임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녹아드는 모습은 리모델링이 단순히 부수고 새로 짓는 것만이 아님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 멋진 외관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았다. 1층과 2층은 기존 공간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대수선으로 진행되었고, 3층은 아예 새로운 면적을 올리는 증축이 더해졌다. 건축 법적으로 85㎡(약 25평)를 넘는 규모의 증축이었기에 단순한 신고제가 아니라 건축사의 설계와 구조 기술사의 정밀한 구조 계산이 필수적인 허가제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대공사였던 셈이다.

구옥 리모델링의 진짜 무서움은 내장재를 뜯어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기초가 부실하거나 집 전체가 미세하게 틀어져 있어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고 화장실 변기 뚜껑이 저절로 내려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여흔재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건물의 베이스를 단단히 잡기 위해 H빔을 여러 개 심는 내진 구조 보강에 큰 공을 들여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가는 이런 막대한 기초 공사 비용이 사실상 전체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집어삼키는 주범이다.

치솟는 공사비와 대출 0원의 현실 벽

📊 숫자로 보는 리모델링의 무게: 공사비 4억 원과 대출의 벽

1층과 2층의 구조 변경, 내외부 전면 인테리어, 3층 수직 증축, 그리고 지하 임대 공간까지 더해진 이 집의 총 공사 비용은 무려 약 4억 원에 달했다. 아파트에 비해 단독주택은 담보 대출 규제와 지원 조건이 까다로워 막상 공사를 시작할 때 대출이 0원 나오는 황당한 상황에 부딪히기도 했다. 아내 이귀옥 씨의 회상처럼 영혼까지 끌어모아 자금을 조달해야 했던 이유는, 노후 주택 리모델링이 생각보다 훨씬 자본 집약적인 싸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건설 인건비와 자재비가 폭등하면서 리모델링 시장은 초보 건축주들에게 더욱 가혹해졌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억대로 예산을 잡았지만, 노후 배관 교체나 단열 보강, 예상치 못한 구조 결함 때문에 견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일이 허다하다.

계약서에 추가 비용 발생 기준을 명확히 두지 않으면 시공사와 건축주 사이에 소송전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흔재처럼 철저한 현금 확보와 예비비 편성이 동반되지 않으면, 꿈꾸던 드림 하우스는 완공 직전 허덕이는 부채의 상하탑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아파트 대신 이 구옥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아파트가 주는 편리함 대신 우리 가족만의 역사와 취향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대가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뼈저리게 체감했을 뿐이다. 예산을 짤 때 최소 10~20%의 예비비를 별도로 쥐고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간 분리의 미학, 가족이라는 이름의 거리 두기

아파트의 넓은 공간이 주었던 보이지 않는 숨막힘

여흔재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바로 철저한 세대 분리 구조다. 1층은 부부의 공간, 2층은 딸의 공간, 3층은 공용 연구실로 나뉘어 있다. 심지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실내가 아니라 과감하게 외부로 빼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밖으로 나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외부 계단을 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가족이라도 너무 붙어 살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는 뼈아픈 경험 때문이다.

과거 넓은 아파트에 살던 시절, 연세 드신 아버님이 새벽 일찍 기상하셨지만 늦은 밤까지 논문을 쓰며 일하다 늦잠을 자는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거실 나오기를 꺼렸던 일화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효도와 화목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의 생활 패턴을 무시한 채 한 공간에 억지로 구겨 넣는 방식은 결국 서로를 지치게 만든다.

"오랫동안 같이 살고 늘 즐겁게 가족을 보려면 공간 분리가 굉장히 필요하다"는 아내 이귀옥 씨의 고백은 그래서 무겁게 다가온다.

딸 박신영 씨 역시 이 집에 대해 "엄마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은 다 누리되 자취하면서 누릴 수 있는 좋은 점도 다 누릴 수 있는 공간"이라고 평한다. 아침에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깨지 않아도 되고, 각자의 리듬대로 살아가면서도 필요할 때는 SNS 메신저로 "엄마 뭐 해?"를 묻고 밥 한 끼를 같이 먹는 삶. 이게 바로 현대 가족이 찾아야 할 가장 이상적인 거리감 아닐까 싶다.

사선 동선과 디테일이 만든 100점짜리 실내 건축

🔥 공간이 작다고 효율까지 작아지진 않는다

2층에 마련된 욕실은 면적이 놀라울 정도로 아담하지만, 건축가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았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사선 동선'에 있다. 욕실 문을 사선으로 배치하여 좁은 복도와 방의 이동을 전혀 방해하지 않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공간의 크기가 부족할지라도 디테일한 설계와 동선 고려만으로 얼마나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에 인테리어를 관통하는 센스는 감탄을 자아낸다. 30만 원짜리 소파에 커버를 씌워 따뜻한 감성을 불어넣고, 지인에게 무료로 나눔 받은 고가구 탁자 위에는 아크릴 판을 얹어 세련된 커피 테이블로 재탄생시켰다. 유행이 지난 핑크빛 냉장고에 1만 원짜리 시트지를 직접 붙여 시크한 블랙 컬러로 리폼한 손길에서는 삶을 대하는 진득한 애정이 묻어난다.

돈을 바르기만 한 모델하우스 같은 인테리어보다, 살림하는 사람의 손때가 묻은 이런 디테일들이 진짜 집의 온도를 만들어낸다.

1층의 푸른빛 타일 주방과 2층의 화사한 레몬색 타일 주방은 각 층에 사는 이들의 개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딸을 위해 거실 한가운데에 툭 던져놓듯 배치한 독립된 드레스룸 박스 역시 공간의 쓰임새를 고민한 흔적이다.

작은 집을 넓게 쓰는 법은 화려한 자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사람의 동선에 공간을 맞추는 유연함에 있다는 것을 이 집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3층 수직 증축의 야망, 그리고 코로나가 바꾼 일상

건폐율과 용적률의 한계 속에서 피어올린 옥상

3층을 올리는 과정은 통장 잔고와의 싸움이자 법규와의 줄다리기였다. 비용 부담 때문에 수직 증축을 포기하려 했지만, "안 만들면 나중에 엄청나게 후회할 것 같다"는 직감 하나로 밀어붙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대지가 품을 수 있는 최대치를 계산해 건폐율 60%에 거의 육박하는 약 59.8%를 채워 넣었고, 여기에 넉넉한 주차 공간 규정까지 맞춰가며 합법적인 증축을 이뤄냈다.

건물이 땅을 얼마나 딛고 있는지 보여주는 건폐율과 연면적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완성한 3층은 이 집의 화룡점정이다. 증축 전 삭막했던 옥상은 도심의 바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멋진 전망대로 변모했다.

오래된 구옥을 고칠 때 흔히들 1, 2층 내부 고치기에만 급급하지만, 수직 증축이라는 카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집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선례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불법 증축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고, 구청의 까다로운 허가 절차와 구조 기술사의 안전 진단을 거치는 동안 건축주는 수없이 마음을 졸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광진구 골목의 풍경은 그 모든 스트레스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찬란하다. 도시의 맥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내 삶의 영역을 수직으로 확장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단독주택만이 줄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특권이다.

코로나 시대가 던진 화두, 집은 휴식과 일의 요새다

💭 3층 아틀리е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

3층에 마련된 부부의 연구실이자 화실인 아틀리에는 이 집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오며 우리는 집이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비대면 강의가 늘어나고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파트 거주 시절에는 작은 기침 소리 하나에도 가족 눈치를 봐야 했던 숨막힘이 이 공간을 통해 완전히 해소되었다. 3층 문을 닫고 올라서는 순간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나만의 성고가 만들어지고, 1층에서는 가족들이 마음 편히 TV를 보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에 집은 완벽한 방어벽이자 동시에 창의성의 요새여야 한다. 대학 교수인 부부가 퇴직을 앞두거나 혹은 새로운 인생의 챕터를 준비하며 이 집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이유는 명확하다.

나를 잃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과, 완전히 늘어져 쉴 수 있는 사적인 안식처가 한 지붕 아래 공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간이 분리될수록 오히려 관계는 단단해진다는 아이러니, 그것이 여흔재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통찰이다. 누군가는 4억 원이라는 돈과 수개월의 고생을 보며 "차라리 그 돈으로 신축 아파트를 가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골목의 세월을 품은 붉은 벽돌과 그 속에서 각자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가족의 뒷모습을 볼 때, 이 집의 가치는 단순히 평당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언가를 품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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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한 장에 바람을 담는다는 그 마음처럼, 낡은 것을 부수기보다 품어 안는 리모델링의 진짜 의미를 여흔재는 조용히 증명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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