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두 개의 단어를 가만히 씹어보았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개혁이란 '가죽을 벗겨내는 고통'이라며 강력한 저항을 정면 돌파하겠다던 목소리가 들려왔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국정의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르자, 어느새 목소리를 높이는 선명성보다는 실용과 실효라는 단어가 전면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단어의 선택 문제나 화법의 변화가 아니다.
권력의 정점에 선 국정 최고 책임자가 현실 정치의 거친 풍랑을 맞닥뜨리며 겪는 철학적 흔들림의 방증이자, 앞으로의 국정 동력이 어디로 흘러갈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징후다.
개혁적 실용인가, 아니면 실용적 개혁인가.
말장난처럼 보이는 이 어순의 변화 속에 뼈아픈 모순이 숨어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실용적인 수단을 쓰겠다는 것과, 실용을 챙기기 위해 개혁의 범위를 타협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국정 운영이 정치적 결단에서 행정적 공학으로 급격히 기울어갈 때, 우리가 그동안 개혁이라 믿었던 가치들은 한순간에 수치와 성과라는 명목 하에 마모되어 버릴 위험에 처한다.
지금 우리는 권력이 당초의 깃발을 내리고 타협의 그늘로 들어서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말의 온도차에서 읽히는 국정의 딜레마
가죽을 벗기는 아픔과 실효적인 설득 사이
개혁(改革)이라는 한자의 원 뜻을 되새겨본다.
몸에 붙은 가죽을 생으로 벗겨내는 일이다.
피가 흘러넘치고 뼈를 깎는 고통이 동반될 수밖에 없으며, 기득권의 저항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 거친 단어를 직접 입에 올렸을 때만 해도, 국정 운영의 방향성은 선명해 보였다.
저항이 무서워 머뭇거리기보다는 과감한 칼질을 통해 판을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6년 8월의 발언은 180도 달라진 온도차를 드러냈다.
목표를 너무 선명하게 내세우면 저항의 강도가 높아지고 결국 손실만 커진다는 논리다.
이해당사자를 설득하고 민주적 절차를 거치는 실용적 접근이 진짜 성과를 낸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의대 정원 문제나 교통 체계 통합 사례가 성공적인 예시로 언급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세련된 일처럼 보이지만, 과연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개혁의 본질일까 싶었다.
반발을 피하기 위해 목표의 선명성을 낮추는 순간, 개혁은 본래의 날카로움을 잃어버린다.
저항이 두려워 타협의 명분을 찾기 시작하면, 기득권은 권력의 조급함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고통 없는 개혁이라는 환상에 빠지는 순간, 권력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저항의 인질로 전락한다.
설득과 타협이라는 미사여구 뒤에 숨은 조용한 후퇴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행정 공학과 정치적 신념의 충돌
정치와 행정은 근본적으로 구동되는 원리가 다르다.
정치는 헌법과 공화정의 가치를 세우는 일이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는 철학의 영역이다.
반면 행정은 이미 만들어진 법과 틀 안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공학의 영역이다.
대통령은 이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외로운 이중적 지위를 지닌다.
문제는 행정 공학이 정치의 철학을 압도할 때 발생한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매일 도장을 찍고 수치를 확인해야 하는 위치에 서면, 정치적 신념은 거추장스러운 짐처럼 느껴질 수 있다.
반발을 부르는 선명한 구호보다는 갈등을 봉합하는 매끄러운 행정 처리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철학이 빠진 행정 공학은 그저 시스템을 유지하는 관료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정부의 모습에서 정치의 가치관은 사라지고 행정의 수치만 남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지도자가 행정가로서의 정체성에만 몰입할 때, 국가의 대의명분은 실종된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개혁 과제를 잘게 쪼개어 매끈하게 다듬는 것이 과연 국정 지도자의 덕목인가.
정치적 결단이 사라진 자리를 행정적 테크닉으로 채우려 할 때, 개혁은 동력을 잃고 멈춰 서게 된다.
우리가 바란 것은 유능한 행정관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 용기를 지닌 정치 지도자였다.
개혁적 실용인가, 실용적 개혁인가
실용이라는 미명 아래 사라지는 원칙들
개혁적 실용과 실용적 개혁은 언어유희가 아니다.
주어와 형용사의 위치가 바뀌는 순간, 국정 운영의 우위가 완전히 달라진다.
개혁적 실용은 '개혁'이라는 명확한 목적지를 향해 갈 때 '실용'이라는 유연한 수단을 쓰겠다는 뜻이다.
반면 실용적 개혁은 '실용'을 최우선에 두고 가능한 수준에서만 '개혁'을 하겠다는 소극적 태도다.
결국 후자는 원칙을 타협하기 위한 보기 좋은 핑계에 불과하다.
실용주의가 무원칙과 동의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손에 잡히는 성과, 당장 눈에 보이는 실리를 챙기다 보면 개혁의 본래 취지는 손상될 수밖에 없다.
과거의 낡은 틀을 깨부수지 않고 그 안에서 약간의 편의를 개선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단순한 '수선'이다.
우리는 지금 수선을 개혁이라고 착각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용이라는 달콤한 단어가 원칙의 후퇴를 정당화하는 방패로 쓰이고 있다.
원칙이 사라진 실용은 결국 보수화로 귀결된다.
기존 질서를 건드리지 않고 잡음을 최소화하는 길만 찾다 보면, 결국 현상 유지에 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개혁 없는 실용은 과거로의 회귀이자, 현실 타협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진정한 실용은 개혁의 과감함 속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과주의 덫에 걸린 개혁의 본질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는 국정 운영은 필연적으로 조급함을 낳는다.
지지도 방어와 정권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당장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가시적 지표에 목을 매게 된다.
그러나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체질을 바꾸는 진짜 개혁은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초기에는 엄청난 혼란과 비용,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 개혁의 불행한 본질이다.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개혁의 강도를 낮추는 순간, 근본적인 구조 개혁은 불가능해진다.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을 완벽히 피하면서 추진할 수 있는 대대적인 구조 개혁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개혁은 결국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어정쩡한 결과로 귀결된다.
성과주의의 덫에 걸려 진짜 거대한 싸움을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진정한 성과는 표피적인 만족도 조사가 아니라, 10년 뒤 사회의 체질이 어떻게 변했는가로 평가받는다.
당장의 비난이 두려워 과감한 칼질을 주저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미래 세대의 몫으로 돌아간다.
지도자는 당장의 칭찬에 목말라하는 행정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진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
📊 숫자로 보면
국정 수행 과정에서 개혁의 선명성이 후퇴할 때마다 지지도 지표는 일시적 반등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핵심 지지층의 이탈과 정책적 선명성의 상실은 장기적으로 국정 동력을 40% 이상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데이터가 존재한다. 단기적 안정을 위해 장기적 동력을 교환하는 정치적 착시를 경계해야 한다.
사람은 불렀으나 세력은 모이지 않은 인선
스펙트럼의 안배가 준 착시현상
최근 발표된 8월 30일 개각과 청와대 인선안을 보면 참으로 다채롭다.
경제, 국방, 국토 분야에는 보수적인 관료와 군 출신 인사들을 채워 안정감을 꾀했다.
반면 성평등가족, 중소벤처기업, AI 분야에는 진보적 색채가 짙은 야당 출신 정치인과 청년, 여성 인사들을 전면 배치했다.
화려한 무지개빛 인사 스펙트럼이다.
누가 보아도 전문성과 상징성, 연령과 성별의 균형을 맞춘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외양 뒤에는 깊은 정치적 맹점이 숨어있다.
개별적인 인물을 픽업해 쓰는 것과, 그 인물이 속한 정치적 세력과 연대를 맺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체스판 위에 화려한 말들을 배치해 놓았지만, 그 말들이 하나의 전략으로 움직이지 않는 모양새다.
결국 개별 인사들의 영입은 착시현상을 일으켜 국정이 탕평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착각을 주지만,
실제 국정 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각자 플레이하는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만 모아놓는다고 우승하는 팀이 되지 않는다.
하나의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지 않는 인선은 단지 보여주기식 인사 쇼에 그칠 위험이 크다.
사람을 불러 모았다고 해서 정치적 세력이 결집했다는 착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지금의 인선은 연대가 아니라 단지 개인 차원의 영입일 뿐이다.
개별 영입과 정치적 연대의 확연한 온도차
조국혁신당 측에서 나온 "민생은 협력, 개혁은 경쟁"이라는 선언은 현 정부 인선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당의 유능한 의원이 수석으로 발탁되었음에도, 그것이 정당 간의 공식적인 정치 연대가 아니라고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이는 매우 서늘하고도 냉정한 정치적 현실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개혁 연합을 이루었다고 생색내고 싶었겠지만, 당사자들은 개별 입각일 뿐이라며 칩을 거두어들였다.
명확한 국정 철학과 가치의 공유 없는 인사 영입은 정치적 부채만 남긴다.
정당 대 정당의 공식적 협약과 가치 공유가 결여된 인선은, 위기가 찾아왔을 때 아무런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한다.
개별적으로 들어온 인사는 여론의 포화가 쏟아지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외로운 섬과 같다.
지지층 입장에서도 왜 저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지 설득되지 않으니 결집력이 약화된다.
정치는 세력 싸움이고, 개혁은 연대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개별 인재의 뛰어난 역량에만 의존하는 국정 운영은 한계가 명확하다.
정치적 연합이라는 단단한 기반 없이 진행되는 인사 정책은 모래 위에 쌓아 올린 성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 개혁의 거대한 파도를 넘기엔 너무나 허약한 뗏목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 짚고 넘어가야 할 인사 정책의 모순
개별 인재 발탁을 정치적 연대와 동일시하는 착각은 국정 동력을 급격히 약화시킨다.
정당 간 공식적 연합과 철학적 공감대 없이 이루어진 인사 배치는 위기 상황에서 지지층의 내분과 추진력 상실을 야기하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보여주기식 스펙트럼 안배를 넘어 진짜 정치적 우군을 확보해야 한다.
권력은 집단의 약속에서 나온다
마키아벨리와 한나 아렌트가 던지는 경고
정치 철학자들의 고전적 통찰은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관통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모호한 중립을 지키거나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편을 들어 진정한 적과 친구를 구별할 때 군주가 존경받는다고 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하고, 모든 세력을 안으려 하는 어설픈 포용주의는 결국 누구에게도 신뢰받지 못하는 고립을 초래한다는 뜻이다.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명확한 색깔을 지우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해준다.
한편 한나 아렌트는 권력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권력은 어떤 한 개인이 독점하거나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사람들이 특정한 가치와 목적을 위해 함께 뭉치고, 상호 간의 약속을 이행할 때 비로소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생명체가 바로 권력이다.
따라서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적 연대가 빠진 정권은 겉으로 권력기관을 쥐고 있어도 실제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무능 상태에 빠진다.
두 철학자의 경고는 하나의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
개혁의 고통을 견뎌내고 기득권의 저항을 뚫어내는 힘은, 개혁 대상의 어설픈 동의나 관료적 실용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가치를 공유하는 정치적 주체들의 단단한 집단적 약속과 결의 속에서만 진짜 권력이 창출된다.
우리는 지금 그 권력의 원천을 스스로 허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
가치 공유 없는 실용주의의 비극적 종말
역사적으로 가치가 빠진 실용주의는 늘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명확한 이념적 지향이나 개혁적 비전 없이 매일의 현안을 처리하는 데 급급했던 정권들은 예외 없이 보수화되었거나, 내부 분열로 무너졌다.
실용이라는 명목으로 원칙을 하나씩 양보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권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명분이 사라진 권력에 남는 것은 오직 자리싸움과 비열한 정치 공작뿐이다.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적 개혁'이 정말 성공하려면, 실용이라는 수단이 개혁이라는 가치를 압도해서는 안 된다.
불필요한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의도는 좋으나, 그것이 개혁의 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치가 전제되지 않은 실용은 현실에서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능한 타협일 뿐이다.
진정한 실용주의자는 목적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찾는 사람이지, 수단을 위해 목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국정의 중심추를 바로잡아야 한다.
사람을 모으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그 사람들과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정치적 약속을 다시 세워야 한다.
연대 없는 영입, 철학 없는 실용주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가 꿈꿨던 거대한 개혁의 시대는 그저 수사적 수식어로만 기억될 것이다. 💡
💭 에디터의 생각
정준희 교수의 논설과 이번 인선 과정을 지켜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과 실효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거대한 저항에 부딪혀 국정이 마비되는 것보다,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쩌면 더 스마트한 전략처럼 보일 수 있다. 나 역시 한때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정치의 역사에서 과감한 결단과 단단한 정치적 연대 없이 이루어진 구조 개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개혁을 당하는 기득권층이 아무런 고통 없이, 웃는 얼굴로 순순히 권력을 내려놓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불필요한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미명 하에 개혁의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순간, 기득권은 그것을 타협의 신호로 해석하고 더욱 거세게 반발할 것이다.
개별적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는 자만에 빠져 정작 그들을 뒷받침할 정치적 집단 연대를 소홀히 한 점도 아쉽다. 결국 개혁은 외로운 개인들이 해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신념을 가진 세력이 함께 깃발을 들고 나아갈 때 이루어지는 법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끄러운 행정 공학도가 아니라, 판을 흔들고 세력을 모아 정면 돌파할 수 있는 진짜 정치가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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