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꽤 매섭게 불어오던 2026년 10월 초, 문득 텔레비전 화면 속 국군의 날 행사를 보다가 쓴웃음이 터져 나왔다. 📉 2년 전 이맘때, 우리는 윤석열 정권의 비상성이 극에 달해 기괴한 시가 행진까지 벌이던 그 서슬 퍼런 광경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 오만한 권력의 행진 뒤에 숨겨진 그림자가 결국 무엇이었던가. 바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려 했던 12·3 비상계엄이었다.
불과 1년 전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대체 불가 대한민국'을 외치며 주권자 앞에 섰을 때만 해도, 우리는 이제 정말 망각의 강을 건너 상식의 대지로 접어들 줄 알았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쉽게 지난날의 과오를 묻어주지 않는 모양이다. 헛된 망각의 강을 건너기도 전에, 우리 사회는 또다시 정체 모를 시커먼 물결이 밀려오는 기괴한 광경을 마주하고 있다.
폭력을 독점한 국가 권력을 과연 시민의 공화국 안에서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 이 무겁고도 아픈 질문을 들고 오늘, 삼전 바둑판처럼 복잡하게 얽힌 시사 이슈의 판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들여다보려 한다. 👀

망각의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자들
방통위 '2인 체제'의 주역들이 국회로 돌아온 이유
대구 달성군의 이진숙과 울산 남구갑의 김태규. 지난 6월 보궐선거를 통해 나란히 여의도 국회 입성에 성공한 이 두 사람의 이력을 살펴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 시절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방통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온갖 위법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이다. 위원장 이진숙은 국회 탄핵 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도 법원에서 '2인 체제' 결정의 위법성 판결을 수차례 받았다.
그럼에도 반성은커녕, 버젓이 국민의힘의 간판을 달고 금뱃지를 달았다.
권력의 어두운 그늘에서 공공의 자산을 갉아먹던 이들이 이제는 입법부의 일원이 되어 당당히 마이크를 잡고 있다. 법의 심판대 위에 서야 할 이들이 법을 만드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나라 사법 정의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방증이다.
빗나간 권력의 욕망이 만들어낸 가장 추한 흉터가 바로 이들의 국회 입성이다. 상식의 눈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사이동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라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이 밀려든다. 😅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 과오를 반성하기는커녕, 국회라는 제도적 방패 뒤에 숨어 새로운 정치적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방통위 시절 보여준 그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식 행태가 이제는 국회 안에서 어떻게 변주될지 불 보듯 뻔하다. 우리는 매 순간 이들의 행보를 통해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5·18을 난도질하는 뉴라이트의 뻔뻔한 부활
지난 8월, 이진숙 의원은 국회에서 '5·18 민주화 운동의 재조명'이라는 황당한 포럼을 개최했다. 그 자리의 면면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발제자로는 대표적인 뉴라이트 역사관의 주창자 전 서울대 교수 이영훈이 나섰고, 12·12 쿠데타 당시 전두환의 비서실장이자 시민 학살의 주역인 허화평이 참석했다. 이진숙은 환영사에서 "5·18을 특정 진영의 소유물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으로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이미 우리 민주공화정의 숭고한 역사적 자산인 5·18을 두고, 역사적 부정을 일삼는 자들이 성역 운운하는 꼴이라니.
발제자로 나선 이영훈은 "5·18이 문화 권력이 되도록 방치하지 말라"고 핏을 세웠다. 생각해보면 참 기가 찬 노릇이다.
일생 동안 학계의 지위 권력을 등대 삼아 악의적 망상과 역사 부정을 선동해 온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의 기생충들이 아니던가. 허화평은 한 술 더 떠 유튜브에 출연해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의 토대를 닦았다"는 망언을 늘어놓았다.
💡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의 토대를 닦았다는 주장은,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민국 독립의 토대를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식민 착취가 있었기에 독립이 가능했다는 해괴망측한 식민지 근대화론의 연장선상일 뿐이다.
결국 이들은 동족이자 같은 종자들이다. 5·18기념재단이 지난해 AI 모니터링을 진행한 결과, 온라인상 역사 왜곡 게시물은 무려 5,1희여 건으로 전년도보다 3배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현의 양상도 단순한 허위 사실 유포를 넘어 '유공자 혜택'이나 '성역화' 같은 조롱과 냉소, 희화화된 형태로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다. 현행 5·18 특별법이 허위 사실 유포 처벌에만 갇혀 있어, 이 같은 악질적인 조롱과 모욕 행위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다.
법적 미비점을 틈타 역사를 능멸하는 이 파렴치한 세력에 대해, 우리는 이제 더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법적 단죄의 칼을 빼들어야만 한다.
성공한 쿠데타는 없다, 사법 정의를 무너뜨리는 망언들
김태규의 대법원 판결 부정과 역사 왜곡의 민낯
이진숙의 단짝이라 할 수 있는 김태규 의원의 행태는 한술 더 뜬다. 그는 최근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윤석열은 내란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심지어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린 전두환 내란죄 판결에 대해서도 "역사적 평가와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대놓고 부정하는 망언을 내뱉었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사 출신이라는 자가, 민주화 이후 정상적인 수사와 재판, 그리고 수많은 학술적 검토를 거쳐 확립된 사법적 단죄를 전면으로 뒤엎고 나선 것이다.
그가 이런 뻔뻔한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뻔하다. 자신들의 유일무이한 정치적 고향인 독재 정권의 과오를 덮고, 최근 논란이 되는 영화 속 역사적 사실들을 '정치적 음모론'으로 매도하기 위한 저열한 술수다.
박정희 독재 시절의 어설픈 수사와 서슬 퍼런 재판,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사형 집행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비판도 하지 않으면서, 정작 민주적 절차를 거친 사법부의 판단은 짓밟고 있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대법원 판결조차 무용지물로 만들겠다는 태도야말로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명백한 내란 동조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법의 공정성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지켜야 할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 사법 질서를 부정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은 우리 사회의 법치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 이상 이들의 입을 통해 민주공화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추경호 특검 징역 20년 구형, 그리고 계엄 해제 방해의 진실
국민의힘 소속 대구시장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운명도 풍전등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조은석 특검은 추경호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의 요청에 따라 국회의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한 혐의, 즉 '내란 주요 임무 종사'의 죄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검이 제시한 정황 증거는 차고 넘친다.
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과의 통화 기록,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무려 90명이 표결에 불참한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추경호 측은 직접적인 물리적 저지가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당사 집결 문자를 수차례 바꾸고 예결위 회의장으로 장소를 혼선시킨 행위들에 대해 단순한 지시 불일치였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밤 10시 28분 계엄 선포 이후 불과 몇 시간 동안 집결 장소를 중앙당사와 국회 예결위 사이를 번갈아 가며 바꾼 행태는, 의원들의 표결 참여를 차단하기 위한 명백한 '알리바이용 교란 작전'에 불과했다.
직접적인 물리적 충돌을 피하면서 소극적으로 표결을 무산시키려던 그 비겁한 꼼수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법에서 처벌하는 것은 물리력의 행사만이 아니라 그 행위 이면에 도사린 '의도'다. 설령 물리적 바리케이트를 치지 않았더라도,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조직적인 행동을 지휘했다면 그 법적 책임을 결코 면할 수 없다.
이번 재판은 단순한 개인의 처벌을 넘어, 국가 비상사태 속에서 정당의 수장이 국가와 국민을 배신하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을 때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심판대가 되어야 한다.
💡 12·3 비상계엄과 내란 동조의 핵심 요약
- 전두환 정권의 내란죄 판결을 부정하는 세력의 발언은 헌정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위험한 시도이다.
-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잦은 집결 장소 변경은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하려는 명백한 의도적 행위였다.
- 역사적 과오를 망각하고 독재를 미화하는 세력에 대해 사법부와 시민사회의 단호한 공조가 필수적이다.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수청 출범, 80년 검찰 시대의 종말
수사·기소 분리의 거대한 실험, 빛과 그림자
드디어 10월 2일, 대한민국 형사 사법 체계의 대지진이라 할 수 있는 공소청과 중수청이 공식 출범한다. 지난 70여 년간 검찰청이라는 이름으로 군림해 온 권력의 거성이 막을 내리고 이제 가을의 문턱에서 새로운 제도적 틀이 열리는 것이다.
지난 80여 년간 권력의 칼자루를 휘두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왔던 검찰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수사는 경찰과 중수청이, 기소는 공소청이 담당하는 '수사·기소 분리'의 제도적 실험이 본격적인 막을 올리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 검찰이 남용해 온 직접 수사 기능이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형사 사법 체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방대해진 경찰 조직에 대한 불신과 함께, 새로 출범하는 공수처와 중수청으로 오히려 권력이 집중되거나 검찰의 옛 그림자가 그대로 이식되는 것은 아니냐는 합당한 의구심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혁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민주화 세력이 피와 땀으로 일궈낸 눈물겨운 성과의 결정체다. 양쪽의 우려를 씻어내고 이 제도가 본래의 취지대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철저한 시민적 감시와 끊임없는 제도적 보완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새롭게 출범하는 조직들의 수장 인선은 이 개혁의 성패를 가를 가늠자다. 특히 막강한 수사권을 거머쥔 중수청장 자리는 검찰 개혁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할 가장 상징적인 자리다.
그러나 이 중요 시점에 거론되는 김지용 후보자를 둘러싼 '친윤 검사' 논란은 개혁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청와대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의혹을 부인하고 국회 청문 절차를 통한 신속한 임명을 촉구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의 진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모양새다.
김지용 중수처장 후보자 지명과 대통령의 딜레마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김지용 후보자가 신임 중수청장으로서 적합한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깊은 회의감이 든다. 우리가 따져봐야 할 것은 그가 지닌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 이 거대한 검찰 개혁의 판을 밀고 나갈 확고한 개혁 의지와 비전이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행보는 온건파적 접근과 눈치보기의 연속이었다. 개혁 반대 세력의 눈치를 살피며 하나마나한 말들만 늘어놓는 인물이, 과연 무소불위의 검찰 기득권을 깨부수고 새로운 수사 체계를 뿌리내릴 수 있을지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직접 방어에 나서며 "거짓에 기반한 억지 주장은 국정 방해"라고 선을 그은 것은, 흔들리는 정국의 방향을 바로잡으려는 인사권자의 의지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인사 실패에 대한 모든 정치적 리스크를 대통령 자신이 온전히 떠안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친윤'이라는 규정은 객관적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평가의 영역이기에, 이를 단순한 '거짓'이나 '허위 주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떨어진다. 중수청장 후보자에 대한 정당한 우려와 비판을 '복수와 파괴의 의도'로 매도하는 것 역시 자칫 '허수아비 때리기'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최종 임명권자의 결단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대통령의 이번 선택은 정권 전체의 개혁 진정성을 시험대에 올렸다. 만약 초기 수장의 개혁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80년 만에 어렵게 쟁취한 검찰 개혁의 성과물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도 있다. 인사는 만사라 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수도 있는 법이다.
철저한 청문 절차 속에서 그 진면모가 드러나겠지만, 진정으로 개혁을 원한다면 더 단호하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형사 사법 개혁과 중수청 출범의 지표
80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검찰청 체제가 막을 내리고,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는 새로운 사법 정의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5·18 역사 왜곡 게시물이 전년 대비 3배 이상 폭증하는 현실 속에서, 법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권력 기관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우리 시대가 완수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공화국의 시민과 애국심, 그리고 우리가 건너야 할 진짜 강
프랑스 혁명과 공화국 군대의 교훈
역사로 눈을 돌려보면, 오늘의 난국을 헤쳐갈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직후, 왕을 단두대에 처형한 신생 공화국을 향해 주변의 왕국들은 연합하여 총공격을 감행했다.
그 배후에는 왕을 잃은 공포와 함께 공화국의 부상을 막고 프랑스를 찢어 나눠 가지려는 검은 속셈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예상을 깨고 공화국 프랑스는 놀라운 저력을 발휘했다.
그 중심에는 영웅 나폴레옹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 나라를 내 손으로 지키겠다'는 시민들의 진심 어린 애국심이 있었다.
왕국의 군대가 왕에 대한 공포나 맹목적 충성으로 움직였다면, 공화국의 군대는 시민 스스로의 삶과 권리를 지키는 방패였다. 그렇기 때문에 공화국에서의 내란은 국가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을 넘어 시민의 삶 자체를 파괴하는 최고의 중죄로 다스려졌다.
나의 나라를 지키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키워준 군대가, 그리고 정의를 지키라고 위임해 준 권력 기관들이 오히려 시민의 목을 겨누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면, 그것은 최악의 매국 행위이자 반애국주의로 엄벌해야 마땅하다.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피를 흘릴 각오로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공화국의 민주적 통제였다. 권력 기관이 시민의 머리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뜯어고치고, 다시는 독재의 망령이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붙들어야 할 유일한 애국심의 형태다. 권력을 쥔 자들이 이를 망각하고 다시 사적인 이익을 위해 제도를 농락하려 든다면, 주권자인 시민들은 언제든 다시 분노의 불길을 지펴 그들을 심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망각의 강을 건너 새로운 내란의 물결을 막아내는 법
우리는 지금 두 개의 거대한 강을 건너고 있다. 하나는 저들이 멋대로 왜곡하려 드는 내란의 강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잊고 편안함에 안주하려 드는 망각의 강이다.
이 두 개의 강을 건너는 와중에, 또다시 우리 사회 밑바닥에서는 청산하지 못한 새로운 내란의 물결이 스멀스멀 밀려오고 있다. 내란을 부정함으로써 내란에 동조하고, 사법 정의를 조롱함으로써 또다른 독재의 길을 예비하는 저 시커먼 물결 말이다.
정치의 무기력함에 절망하고, 개혁의 지지부진함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걸음을 멈추거나 주저앉을 수는 없다.
역사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며, 오직 깨어 있는 시민들의 집요한 시선과 행동만이 역사의 바퀴를 올바른 방향으로 굴릴 수 있다. 과거의 아픔을 지우려는 자들과 맞서 싸우고, 권력의 사유화를 시도하는 모든 세력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이 모든 혼란을 끝내는 힘은 제도의 완벽함에만 있지 않다. 제도를 운영하는 이들의 도덕성과, 그것을 끊임없이 감시하는 주권자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결합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완성된다.
80년 검찰 시대의 종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다가오는 불안한 첫 단추를 바로 채우고, 망각의 강을 넘어 우리가 진정으로 도달해야 할 곳은 상식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진짜 민주주의의 대지다. 우리는 결코 물러설 수도 없고, 물러서서도 안 된다.
💭 에디터의 단상 : 기억하지 않는 역사와 반복되는 비극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 문득 아득한 무력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판결이 나고 증거가 쏟아져도 뻔뻔하게 고개를 쳐드는 이들을 보며 '우리가 과연 제대로 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라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역사는 단 한 번도 거저 이루어진 적이 없다. 5·18의 아픔도, 12·3 비상계엄의 공포도, 그리고 80년 만의 검찰 개혁도 모두 우리 시민들이 피 흘리며 버텨낸 시간의 기록이다.
망각의 강에 몸을 씻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가 겪었던 그 모든 비극은 반드시 더 잔인한 모습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절망이나 냉소가 아니라, 끝까지 기억하고 기록하며 감시하는 매서운 눈빛이다.
역사의 주인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아니라, 이 땅에서 묵묵히 삶을 일궈가는 평범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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