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를 논할 때마다 으레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참신함', '미래세대', '새로운 동력'.
하지만 실제로 청년들이 정치권의 문턱을 넘어 그 안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화려한 미사여구가 민망해질 때가 많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청년 정치의 현실적 진입 장벽은 단순히 나이가 젊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기성 정치권이 구축해 놓은 견고한 카르텔과,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년 스스로가 기득권의 복제품이 되어가는 슬픈 자화상을 마주해야 한다.

이세미 성남시 의원이 날카롭게 지적했듯, 우리네 정치는 지금 '일종의 가족놀이'에 가깝다. 소꿉놀이하듯 '형님'으로 불리는 유력 정치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민원 해결의 창구를 독점하는 것.
이것이 과연 우리가 꿈꾸던 정치의 모습이었을까? 오늘은 청년들이 왜 정치를 시작하기도 전에 낡은 관행의 늪에 빠지는지,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세대교체와 소통의 방식은 무엇인지 낱낱이 파헤쳐 보려 한다. 📉
청년 정치, 실력인가 줄 서기인가
형님 리더십이 지배하는 정치 생태계
현장에서 마주하는 청년 정치의 민낯은 참담하다. 이세미 의원은 이를 두고 "속꿉놀이"라고 꼬집었다.
주민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책적 해법이나 제도의 개선을 고민하기보다는, "내가 이 민원을 해결할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과 술자리를 몇 번 가졌으니, 형님이 다 해결해 줄 거야"라는 식의 어필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를 공적인 가치 실현의 장이 아니라, 사적인 인맥을 자랑하는 권력 과시의 장으로 전락시킨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청년들은 민주적인 토론이나 철저한 정책 검증을 배우기보다는, 기득권 정치인에게 예속되는 법부터 먼저 배운다. '형님'에게 잘 보여야 공천을 받고, '형님'의 라인을 타야 지역구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공식이 고착화되어 있다.
청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그들은 벌써부터 가장 낡고 구태의연한 정치 방식을 내면화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한두 명의 일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 자체가 한국 정치의 암세포다.
정치는 주민들의 삶을 바꾸는 대리인들의 경연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 정치는 자신의 독립성을 증명하는 대신, 누구의 사람인지 낙인을 찍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기성세대가 만든 벽을 넘을 수 없다. 오히려 그 벽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공범이 될 뿐이다.
육성 시스템의 부재와 선배로부터의 동원
김대호 기자가 인용한 사회조사 연구들은 우리가 마주한 또 다른 비극을 보여준다. 청년 정치인들이 진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전무하며, 오직 '선배로부터의 동원'에 의해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즉, 자기만의 서사와 삶의 경험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만 정치판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간택 문화'가 지배적이다.
이런 시스템하에서는 개성 있는 목소리가 나올 수 없다. 선배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만이 '기특한 후배'가 되어 정치권의 문을 통과한다.
정책적 전문성이나 지역에 대한 이해도는 뒷전이다. 오직 충성심의 순도가 곧 정치적 자산이 되는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과연 어떤 청년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이제는 정면으로 질문해야 한다. 왜 한국의 청년 정치인들은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정치를 시작하지 못하고, 반드시 중앙 정치인의 '픽'을 받아야 하는가?
이는 청년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정치권이 의도적으로 청년들의 자립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청년 정치인은 기득권에게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의 굴레를 끊어낼 용기가 필요하다.
🔥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하나)
청년 정치인들이 권력에 편승하는 것은 생존 전략일 수 있으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 '정치 행위'가 아니다. 이다. 지역의 작은 문제 하나를 스스로 해결해 본 경험이 없는 청년이, 어떻게 나라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겠는가?
덴마크의 상향식 공천과 한국의 현실
지역구 중심의 실질적 검증 시스템
김대호 기자가 언급한 덴마크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덴마크는 중앙 정치인이 청년의 손을 잡아 끌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구 당원들과 지지자들로부터 직접 표를 받는 상향식 공천이 철저히 작동한다.
이는 청년 후보가 기득권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오로지 지역 주민들을 향해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면 되는 구조다.
주민들이 직접 후보를 검증하고 선택하기 때문에, 청년들은 그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 자연스럽게 기득권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정치 활동이 가능해진다.
반면, 한국의 공천은 어떤가? 철저히 중앙 집중적이고 하향식이다. 공천권을 쥔 권력자 한 명의 판단에 따라 청년의 정치 생명이 좌우되는 현실에서, 지역 주민의 목소리가 들어설 틈은 좁다.
이것이 바로 한국 정치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다. 덴마크의 청년 정치인이 지역구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동안, 한국의 청년 정치인은 당의 대변인 노릇이나 하며 중앙 정치인의 메신저 역할에 안주한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젊은 피를 수혈해도 정치는 늙어갈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당의 부속품이 아닌, 지역에서 검증받은 진짜 정치인이다.
정치 교육의 부재가 낳은 세대 간 단절
청년들이 정치에 데뷔할 루트가 없다는 절망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바로 체계적인 정치 교육의 부재 때문이다.
선진적인 민주주의 국가들은 일찍부터 학교 교육 과정에 정치 교육을 포함해, 학생들이 스스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입시 위주의 교육 속에서 정치는 '금기어' 혹은 '먼 나라 이야기'로 취급받는다.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은 권력자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청년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고, 정치 참여를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가능한 영역으로 인식하는 것은 교육의 실패다.
학교에서부터 정책을 만들고, 토론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정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주입하고 있다.
정치는 단순히 투표장에 가는 행위가 아니다. 지역 의회의 '청소년 의회'를 활용해 아이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예산을 짜보는 경험이야말로, 청년 정치를 꽃피울 밑거름이다.
이미 시스템은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다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정치를 특권층의 전유물로 방치해 둔 대가는 결국 세대 간 소통의 단절과 정치 불신으로 돌아오고 있다.
📊 숫자로 보면
학교 현장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의회' 프로그램은 청년 정치인의 잠재적 요람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의회 체험을 통해 정치적 효능감을 맛본 아이들이 자라나 성인이 되었을 때, 과연 기존의 구태 정치를 용인할까?
숫자가 보여주는 통계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 교육을 통해 훈련받는 미래 세대의 성장이 우리 정치의 숨통을 틔울 유일한 돌파구라는 점이다.
소통인가 기만인가, 세대 간 시각 차이의 진실
수시 서버 마비 사태가 드러낸 현실 인식
정치권이 청년들과 소통한다며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종종 기만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수시 원서 접수 당시의 서버 마비 사태다.
어른들은 '한 시간 연장'이라는 행정적 조치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청년들의 시각은 전혀 달랐다.
그 한 시간 동안 공개된 경쟁률로 인해 정보의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사실, 그것이 청년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정치권은 왜 이런 차이를 인지하지 못할까? 기득권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문제 해결'이라는 행위 자체에 몰두할 뿐, 그 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이 무엇을 잃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청년들의 고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니, 내놓는 대책마다 겉돌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접근은 특혜를 주는 듯한 오만한 태도로 읽히며, 도리어 청년들에게 깊은 반감을 심어준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이벤트나 생색내기식 지원이 아니다. 자신들의 삶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이해하는 정치인이다.
정치를 '청년의 눈높이'에서 본다는 것은, 단순히 젊은 사람들의 언어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의 삶이 놓인 구조적 모순을 꿰뚫어 보고, 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소통이다.
경험 없는 대변자는 대변자가 아니다
단순히 나이가 젊다는 이유만으로 청년의 대변자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하수 처리 문제를 해결해 보고, 안전 신문고 앱을 통해 지역의 작은 안전망을 다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법 개정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은 책상에 앉아 쓴 보고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주민들과 부대끼며 민원을 해결한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지금의 청년 정치가 비판받는 지점은 바로 이 '현장성'의 결여다.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 청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회와 의회에 진입한다.
그들은 현실을 모르기에 기성세대의 논리에 쉽게 동화되고, 청년들의 절박함을 통계 숫자로만 이해하려 한다. 그들은 결코 청년들의 아픔을 대변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청년'이라는 나이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얼마나 젊은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삶의 궤적을 밟아왔는가가 중요하다.
지역의 작은 문제부터 해결해 본 청년, 기득권의 줄 세우기 관행에 저항하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청년, 그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정치의 모습이자, 세대교체의 본질이다. 💡
💭 개인적인 생각
개인적으로 이 취재 노트를 보며 가장 뼈아팠던 대목은 '줄 세우기' 문화에 대한 지적이었다. 나 역시 30대를 보내며, 성실함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견고한 벽을 수없이 목격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순히 똑똑한 청년을 뽑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유능한 인재가 들어와도 결국 '형님'을 모시는 조연으로 전락할 뿐이다. 😅
우리가 꿈꾸는 정치는 단순히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기득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현장에서 체득한 정책을 당당하게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의 하수도 문제부터 내 친구들의 취업 문제까지, 내 몸을 던져 해결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그런 청년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청년을 위한다면, 특혜를 준답시고 생색내지 말고 기성세대의 독점적 권력을 해체하는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할 것이다. ✊
📚 이 글이랑 같이 보면 좋은 글
정치는 생물과 같아서, 고여 있으면 반드시 썩기 마련이다. 기득권의 논리로 청년들을 길들이려 하는 지금의 정치 시스템은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낡은 관행과 결별하고, 지역과 일상에서부터 스스로의 정치적 토대를 만들어 나가는 용기다. 청년 정치는 누군가가 내어주는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정치적 유산을 물려줄 것인가?
#청년정치 #이세미의원 #성남시의회 #정치개혁 #세대교체 #기득권카르텔 #형님정치 #계파정치 #정치입문 #청년활동가 #정치생태계 #공천시스템 #덴마크정치 #상향식공천 #정치참여 #지역구정치 #민원해결 #정치교육 #세대간단절 #정치불신 #혁신정치 #민주주의 #시민정치 #정치현실 #사회문제 #정치발전 #청년의목소리 #정치적자립 #시스템개선 #현대정치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