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시내를 걷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빽빽한 아파트 숲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녹지들이 과연 우리 아이들의 미래까지 버텨줄 수 있을까?
최근 서울에 공원을 없애는 것 뒤에 감춰진 진실들을 파헤치며, 도시의 생태적 기반인 도시공원 일몰제와 그에 따른 난개발 논란을 마주하게 되었다. 단순히 나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건물을 올리는 행위가 아니다.
이것은 백 년 뒤 우리 후손이 누려야 할 자연 자산인 '종자'를 당장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어치우는, 지극히 근시안적인 행태이다.
도시가 숨을 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를 돈으로 환산하려는 이 안타까운 상황, 과연 우리 도시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인류 역사 속 도시와 공원: 생존의 문제
산업화가 남긴 죽음의 기록
인류는 수백만 년간 자연의 일부로 살았지만, 농업 혁명과 산업 혁명을 거치며 급격히 '인공 환경' 속에 갇히게 되었다. 특히 19세기는 도시 노동자들에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1840년 맨체스터에 거주하는 가난한 아이들의 57%가 5세 이전에 사망했습니다. 리버풀의 공장 노동자의 평균 수명은 15세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도시 계획이 부재했을 때 인류가 치러야 했던 끔찍한 대가였다. 런던의 하이드 파크가 왕의 사냥터에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단순한 자비가 아니라, 도시라는 인공 공간에 자연이라는 생명줄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도시의 기능을 재정의해야 한다. 공원은 미관을 위한 사치가 아니라, 하수도나 전기망처럼 도시가 살아남기 위한 필수 인프라스트럭처인 것이다.센트럴 파크가 증명한 미래 가치
하이드 파크의 철학을 계승한 뉴욕의 센트럴 파크는 15년이라는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탄생했다. 당시 시 의회는 "지금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정신병원을 더 많이 지어야 할 것"이라는 통찰을 남겼다. 이들은 자연이 없는 도시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병들고 무너지는지 알았던 것이다. 센트럴 파크가 단순히 예쁜 잔디밭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아래에는 도로를 숨겨 보행자의 시야를 보호하는 공학적 설계가 숨어 있고, 이는 맨해튼이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로 도약할 수 있는 심리적, 물리적 안식처가 되었다. 만약 그때 공원을 포기하고 주택을 지었다면, 오늘날의 뉴욕은 그저 삭막한 콘크리트 정글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숫자로 보는 우리 현실
2020년 도시공원 일몰제로 해제된 국공유지 면적만 전국적으로 15.08㎢에 달한다. 공시지가 기준으로만 3조 원이 넘는 규모며, 토지 보상가를 포함하면 실제 재정 부담은 9조 원을 훌쩍 넘긴다.
특히 서울은 그 재정 부담의 중심에 서 있다. 미래 세대의 건강을 위해 지켜야 할 녹지가 '개발 가능 토지'로 전락하는 순간, 우리는 그만큼의 생태적 대출을 미래 세대에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용산공원과 생태 인프라의 미래
한국이 마주한 역설적인 기회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도시 계획의 선제적 투자가 부족했다. 하이드 파크처럼 왕이 땅을 내놓은 적도, 센트럴 파크처럼 150년 전 미리 터를 닦아둔 지혜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기구한 역사가 남긴 기회가 있다. 몽골군부터 일제, 미군으로 이어지는 외세의 주둔지였던 용산이 드디어 우리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90만 평 규모의 이 땅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도시의 열섬 현상을 줄이고 바람길을 만들어줄 핵심 생태 기반이다. 이를 두고 '주택 공급'을 논하는 것은 다시금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근린공원과 거대 녹지의 공존
최재천 교수님과의 대담에서도 강조했듯, 공원은 두 종류가 필요하다. 언제든 15분 내에 달려갈 수 있는 '작은 근린공원'이 우리 삶의 모세혈관이라면, 용산공원처럼 거대한 녹지는 도시의 폐와 같다. 백만 권을 갖춘 도서관 하나보다 만 권을 갖춘 도서관 백 개가 중요할 수 있다는 분포의 논리는 맞다. 하지만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 그 분포를 지탱하는 거대한 중심 녹지 또한 필수적이다. 정부가 예산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공원 땅을 상업 용지로 변경해 1,000억 원의 수익을 올리려는 것은, 마치 집안의 가구를 내다 팔아 당장의 저녁을 때우는 것과 같다. 미래를 위한 저축을 파괴하고 얻은 흑자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래를 먹어치우는 행정의 모순
SH공사나 지자체가 학교 부지 마련 등을 이유로 공원 용지를 상업지로 용도 변경하는 행위는 이율배반적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편의를 넘어, 시민들의 휴식권을 훼손하고 도시의 기후 대응력을 낮추는 반사회적 도시계획이다.
절차가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협한다면, 우리는 그 절차를 즉시 멈추고 공론화해야 한다.
JYP 사옥과 고덕동의 사례: 소탐대실의 전형
생태계가 사라진 도시의 공허함
JYP 사옥 예정지 앞 공원 부지가 상업지로 바뀌면서 벌어진 일은 참담하다. 본래 그 사옥은 중정을 통해 시민과 소통하고, 자연 채광과 통풍을 고려해 설계된 친환경 복합 공간이었다. 사옥이 들어서면 그 지역은 'K-팝의 성지'로서 수많은 연관 산업을 끌어들이는 앵커 테넌트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먼 행정으로 인해 그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제 고덕동은 그저 베드타운으로 남거나, 창의적 에너지가 거세된 공간이 될 확률이 높다.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한 지역의 미래 생태계를 파괴한 셈이다.기업 유치보다 중요한 것은 철학
많은 분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기업만 들어오면 도시가 살아난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그 기업이 뿌리내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JYP가 설계하려 했던 건물은 아이돌들이 훈련하고 마당에서 버스킹을 하는 등 시민과 호흡하는 공간이었다. 그 조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앞의 공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정 당국이 '절충안'을 거부하고 강경하게 고층 상업 개발을 밀어붙인 결과, 결국 프로젝트는 좌초 위기다. 서울시는 건축가를 유튜버로 대하며 사진 찍을 기회만 엿볼 게 아니라, 한국 건축가들이 제대로 된 철학을 펼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요약해보면
- 공원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도시 생존을 위한 필수 인프라이다.
- 단기적인 주택 공급과 수익 창출을 위해 미래 세대의 녹지를 훼손하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 기업과 창의적인 인재를 불러모으는 것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 환경이다.
- 정부 주도의 일방적 행정보다는 민간 자본과 소액 자본가가 참여하는 건강한 소셜 믹스가 필요하다.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민간의 힘
정부 만능주의의 한계와 민간 자본의 역할
정부가 도시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예산 확보를 위해 부지를 쪼개 파는 것은 과거 계획경제의 잔재와 닮아 있다. 오히려 성숙한 사회는 수많은 소액 민간 자본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여 공간의 가치를 높여가는 구조다. 정부가 억지로 소셜 믹스를 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어울려 살고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공원과 같은 공공재로 마련해 주는 것이 진정한 도시 행정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하향식 계획은 언제나 효율성이 떨어지고 부작용을 낳는다.우리가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
우리는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당장의 집값, 당장의 예산 부족은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백 년 뒤의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정치인의 비겁한 책임 회피일 뿐이다. 진정으로 성숙한 시민이라면 눈앞의 성과보다 미래 세대의 환경을 내다봐야 한다. 우리가 공원을 보존하는 것은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건네줄 최소한의 사회적 저축이다. 그 저축이 없다면, 우리 다음 세대는 더 삭막하고 더 메마른 도시에서 더 많은 돈을 정신과 치료비로 쓰게 될 것이다.우리는 정말 다음 세대에게 녹지 없는 삭막한 콘크리트 도시를 물려주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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